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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수누나 Apr 05. 2023

싱글맘, 악의 없던 구 시댁

없었을 거예요. 아마도요?

나에게 딸보다 더 딸 같다 하시던 구 시어머니. 시댁 친척들이 모이던 어느 명절, 용기 내어 수줍게 ‘엄마’라고 불렀을 때 돌아온 것은 새빨갛게 상기된 그녀의 굳은 얼굴뿐이었다.


‘좋다’라는 것은 상대적인 표현이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시댁은 여느 며느리에게나 있을 수 있겠지. 나에게도 좋은 시댁이 있었다. 아니, ’좋았던‘ 시댁이었다고 해야 되려나?


난 한쌍 60만 원짜리 결혼반지와 다이소에서 산 생활용품으로 신혼을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육아용품마저도 닳아 너덜 해진 헐값의 중고였거나, 거쳐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나눔 물건도 있었다.


그런 어려운 형편에도 구 남편은 살면서 취미 하나쯤은 있어야 숨이 트인다며 고비용이 드는 취미생활을 해댔다.


구 시부모님은 자기 아들의 철없음은 못 본 체하고, 살아보고자 아등바등거리는 나를 두고 ‘네가 우리 아들과 다르게 참 알뜰하다’라며 칭찬할 뿐이었다.


그땐 며느리를 예뻐해 주신다는 마음에 ‘좋은 시댁‘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안다. 그분들에게 있어 난 그저 본인의 아들을 대신 키워주고, 대를 이어주고, 돈까지 벌어오는 가성비 며느리였을 뿐이라는 걸.


그럼에도 그분들에게 악의는 없었다고 생각한다.(물론 자기 위안 한 스푼이 첨가되긴 했지만) 정말 나쁜 의도가 있었다면 2년여의 짧은 결혼생활조차 견딜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SSUL 6.

구 시댁은 순수했다. 그래서 가난했다. 게다가 장손집안이었다. 쥐뿔 가진 것도 없이 의미 없는 긍지만 남은, 굶주리고 아쉬워도 고개는 빳빳하게 엣헴- 해야 하는 그런 집안이었다.


구 시아버지는 본인 아버지가 하시던 농사를 내팽개칠 수 없다는 이유로 생업을 모두 접고 가업을 잇겠다며 귀향을 하셨더랬다. 홀로 타지에서 생활하니 외로워 돈으로 여자를 샀다는 말을 본인 아들에게 자랑스레 했다고 들었다.


구 시어머니는 촌에선 도저히 못살겠다며 결국 남편을 따라가지 않으셨단다. 대신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꽃집을 하셨는데 알게 모르게 스쳐간 남자들이 꽤 있었다고 들었다.


이런 사연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땐, 우리 집도 딱히 이상적인 집안은 아니지만 저쪽도 만만찮구나 정도였을 뿐. 그 이상의 별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아이 때문이라는 핑계로도 경혼생활을 연명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 끝낼 궁리를 하던 무렵의 명절이었다.


바쁘게 전을 뒤집고 있던 내 옆으로 시어머니가 오시더니만 ‘결혼을 한 게 내 인생 최고 잘한 일’이라던지, ‘결혼은 곧 삶의 안정’이라던지 같은 말을 결혼의 장점이라며 갑작스레 쏟아내셨다.


그러곤 이내 본인은 다시 태어나도 결혼은 꼭 할 것이며 그게 늬 시아버지가 아니어도 괜찮지만 이왕이면 또 부부의 연을 맺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난 진즉 시댁의 집안 히스토리를 뻔히 알고 있던 터였다. 헛웃음과 함께 반박 사유가 백가지는 떠올랐지만 굳이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그냥 아 예... 하고 대화주제를 넘기려 했다.


그런 나의 반응이 못마땅하셨던 건지 아님 결혼생활을 끝내려는 당시의 내 의중을 눈치채셨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답정너’처럼 집요하게 나의 공감을 원하셨다.


평소라면 원하시는 대로 해드렸을 테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결혼생활을 끝내겠다는 마음을 먹은 마당에 두려울 것도 없었다.


“저는 다시 태어나도 결혼은 절대 안 해요. 다시라는 기회가 있다면 결혼도, OO(구 남편)이를 만나는 일도 없을 거예요.”


거름망 없이 시원하게 쏟고 나니 마음이 이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엄마’라고 불렀을 때의 표정을 똑같이 지으셨음에도 내가 느끼는 감정은 전혀 반대의 모양새인 것도 신기했다.


그렇게 드디어 불편했던 대화가 끊겼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말을 정정해야겠단 생각이 들어 한마디 더 거들기는 했다.


“근데 어머니, 생각해 보니 OO(구 남편)이를 만나긴 해야겠어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금세 미소를 띠는 시어머니를 보자니 일말의 미안함이 몰려와 더 이상 말을 잇지는 않았다. 그게 악의 없던 구 시댁에 대한 나의 마지막 배려쯤으로 생각한다.


대신 지금, 그때 잇지 못한 마지막 말을 여기 대나무숲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조용히 남겨봅니다.


내가 내 아들을 만나려면,

어머님 아들을 꼭 만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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