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사랑을 시작한 친구가 말했다. 멀리 살지만 매일이다시피 전화로 톡으로 수다를 떠는 어릴 적 친구다. 우리는 늘 사랑을 꿈꾸지만 상대가 섹스하자고 할까 봐 겁나서 연애 못한다는 것으로 낄낄대며 수다를 마무리하곤 했다. 그런 그녀가 바다를 보았단다. 바다를….
“돼?”
나의 호기심은 단호했다. 우리는 너무 오래 혼자였고 몸의 신호에 관심을 끈 지 오래였고 더러 입으로 해소했다.(그렇다고 오럴을 했단 얘기는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연애세포는 죽지 않아서 늘 낭만적인 연애를 갈망하며 이런 남자라면 한 번쯤, 하고 공허한 희망을 하릴없이 날리곤 했다. 우리의 로망은 심플했다.
대화가 되는 남자.
근데 그게 결코 말처럼 간단하지는 않았다. ‘대화’라는 그 낱말에는 모든 조건이 녹아있었다. 지성, 감성, 코드, 매너, 외적 호감도, 건강,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경제력 등등. 우리가 바라는 것이 그럴 진데 상대방 또한 그렇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드라마 속에 나오는 이상형이나 보며 상처 안 받을 짝사랑이나 실컷 하자고 낄낄댔었다.
“되더냐구?”
재차 묻는 내 성화에 친구가 까르르 웃었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저 웃음소리인가. 저렇게 꾀꼬리처럼 낭랑하게 웃던 친구의 어릴 적 모습이 기억에서 소환됐다.
나는 까닭 모르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질투일까? 진짜 사랑에 빠진 친구에게서 느끼는 묘한 마음이었다.
남편과 사별한 지 10년도 넘은 친구는 혼자 딸아이를 건사하며 흔들리지 않고 자기 삶을 꾸려왔다. 딸도 잘 자라 결혼해 독립하고 친구도 나도 일에서 은퇴를 한 후여서 우리는 가족보다 더 많은 얘기를 나누며 지내는 중이었다.
그런 친구가 몇 개월 전에 사랑에 빠진 것 같다고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는 친구였다. 어릴 적 자신의 첫사랑이 그랬기에.
그런 그녀가 첫눈에 반했던 그 첫사랑을 다시 만난 것이다. 운명이란 게 이런 걸까? 이 첫사랑들이 둘 다 혼자가 되어 다시 만나진 것이었다. 운명의 여신은 짓궂게 마련인지 첫사랑에 대한 마음이 커갈수록 친구의 고민도 깊어갔다.
“자자고 하면 어쩌지?
친구의 걱정은 태산 같았다.
“너네가 청소년이니? 당연히 자자고 하지!”
“될까?”
“될 거야!
사랑하잖아. 여자는 뇌로 섹스를 한다고 하니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될 거야!”
걱정 가득한 친구를 위로했지만 사실 나도 반신반의였다. 그러나 친구가 몸과 영혼이 하나가 되는 진정한 축복의 사랑을 누릴 수 있길 나는 진심으로 바랐다.
스킨십이 없는 사랑이 가능할까?
어느 날 우리의 수다 주제는 그것이었다. 우리는 된다고 했다가, 에이! 남녀 간에 그게 어떻게 가능해? 했다가, 아니 늙으면 손만 잡고도 오르가슴을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곤 낄낄댔었다. 여자가 나이 들면 필요한 것은 남자가 아니라 친구, 돈, 자식이라든가, 가끔 딜도도 필요할 거라고 했다가 이젠 감촉이 리얼한 로봇 인형도 나온다니 적금을 붓자고 말하며 또 낄낄 댔었다.
“되더라고!”
친구의 그 말에 나는 왜 눈물이 났을까?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친구가 목소리를 더 밝게 과장하며 우리가 그동안 쓸데없는 걱정을 너무 한 거 같다며 나한테도 용기를 내라고 격려까지 했다.
우리는 왜 안 된다고, 안 될 거라고 생각했을까? 신포도 같은 것이었을까?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 버리기 같은. 친구는 육십에 바다를 보았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젊어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몸의 즐거움을 이제야 알았다고 했다. 몸의 언어가 이토록 따뜻한 것인지, 이토록 위로가 되는 것인지, 이토록 건강한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몸의 언어가 결코 힘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돼 앞으로의 삶이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고 했다. 어깨에 카디건을 얹어주는 그의 진심 어린 손길에서도 온몸의 세포가 낱낱이 돌기 된다며 이런 사랑을 나도 꼭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자는 뇌로 섹스한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며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내게 단단히 당부까지 했다.
온몸의 세포가 낱낱이 돌기를 곧추세우며 와와 소리치는 사랑이라...
나이가 들면 시드는 것이 아니라 완숙되어 간다는 말이 이들의 사랑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성숙한 사랑은 연기가 없는 알불 같아서 더욱 뜨거운가 보다.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고 부러웠다.
친구의 사랑 얘기를 듣고 있노라니 오래 잠자고 있던 나의 뇌가 저 혼자 깨어뻐근하게 돌기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