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남자의 손은 생각보다 거북했다. 춤을 배우겠다고 결심하고 설렜던 것 중 하나가 그것이었는데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혼자 설렌 시간이 너무 길었나? 라틴소셜댄스인 살사(salsa)에 입문하면서 가장 어렵게 느낀 것은 스텝도 패턴도 아닌 손잡기, 다짜고짜 손잡기였다. 홀딩이라고 하는 이 과정이 내겐 참으로 난제였다.
살사에 완전히 입문하기까지 3년 여가 걸렸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젊고 역동적이고 섹시하기까지 한 살사를 배우고 싶어 찾아보니 소셜(social) 살사 클럽이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나이 때 별로 요일을 달리하고 있었는데 일단 중년 살사 왕초보 반에 등록을 했다. 용기를 내어 찾아간 첫날 우선 그 규모에 놀랐다. 200여 평의 살사 바에 5~6개의 수준별 강습이 이뤄지고 있었고 100여 명의 강습생을 포함해 하루 입장객이 평균 250~300여 명에 이른다고 했다. 바 중앙의 소셜 무대에선 살사 커플들이 현란한 동작으로 흥겹게 살사를 즐기고 있었다. 생초보인 나의 눈엔 모두가 고수처럼 보였다. 기가 팍 죽었다. 아는 사람 없이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간 터라 누구도 반겨주거나 이끌어 주지 않았고 등록한 강습 교실에 혼자 찾아가야 했다. 나의 살사 첫 도전은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왕초보 강습에 두 번 참석하고 결국 나가지 않았으니까.
첫 번째 이유는 땀 냄새 후끈한 지하실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고, 두 번째는 낯선 남자의 손을 잡아야 하는 일에 실패했다. 하지만 살사에 대한 로망은 포기하지 않았다. 일 년여 후 나는 지하실의 그 생경함과 땀냄새를 피해 개인강습을 선택했다. 일주일에 한 번 강사를 초빙해 다시 도전했다. 강사 선생님과 한 시간 홀딩하고 나면 땀으로 흠뻑 젖을 만큼 운동이 되었다. 기실 운동이 너무 하기 싫어 춤으로 운동량을 소화하려는 의도였기에 강습은 만족스러웠다. 살사, 참 쉬웠다. 개인강습을 받으니 금방 배울 것 같았다. 진작 이렇게 할 걸 싶었다. 10회 강습으로 나는 살사를 다 배웠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가당찮은 착각이었다. 개인강습 열 번으로 살사가 만만해진 나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겠다 싶어 의기양양했다. 일 년여쯤 지났을 무렵 일에서 은퇴도 해서 시간이 자유로워졌기에 나는 보무도 당당하게 다시 소셜클럽 강습에 등록했다.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었고 바의 분위기도 알고 간 터라 처음 갔을 때 보단 많이 나을 거란 나의 자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아직도 여전한 왕초보였던 것이다. 파트너가 있는 춤은 리드 파트너의 숙련도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개인 강습 때는 노련한 강사 선생님과의 홀딩이었기에 따라만 가면 됐고 그래서 나는 내가 잘 춘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단체 강습에서 같은 초보 수강생들끼리 홀딩해보니 기본적인 것도 쉽지가 않았다. 더욱이 낯선 이와 손잡기는 여전히 내게 난제였다. 참 이상한 노릇이었다. 언론인으로 이십 년, 대학교수 십 년 동안 첫인사는 무조건 악수로 시작한 나였고 악수만 해봐도 그 사람의 성격이나 나에 대한 호감도까지 단박에 파악할 만큼 손잡기에 일가견이 있다고 믿고 있던 터다. 성격도 적극적인 편에 속했다. 그런 내가 홀딩에 이토록 어려움을 느낀다는 게 참 납득이 안 됐다. 대체 왜 그럴까? 익명성, 내게 홀딩이 그토록 어려웠던 이유가 익명성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한 참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살사의 사회는 완전한 익명성으로 교류한다. 내가 누군지, 어떤 일을 하며 살아왔는지 현재 어떤 직함을 가지고 있는지 서로 모른다. 묻지 않는다. 이름도 닉네임만을 사용해 그저 보여지는 모습과 그것으로 가늠되는 나이와 춤 실력만이 평가의 전부일뿐이다. 살사의 사회에서 나의 포지션은 왕초보 실력에 나이 든 아줌마에 불과했다. 그것도 최고령 축에 속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소셜클럽에는 육십 세 까지만가입이 가능한 규정이 있어 나는 막차에 겨우 올라탄 셈이었으니까.
그동안 사회에서 나는 명함 하나로 당당하게 손 내밀어 악수를 했고, 환영받았고, 인정받았고, 대우받았다. 실제 나의 인격보다 나의 명함이 내 인품의 이미지를 만들었고 존경받는다고까지 생각했던 내게서 소셜 포지션(social position)을 떼어내니 나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초로의 여인에 불과했다. 아무도 나를 몰라주는 사회에서 스텝이 꼬이고 버벅대는 대책 없는 여자였던 것이다. 늘 리더의 입장에 있었고 존중받는 데에 익숙한 내게 스스로도 어색한 급조한 닉네임 스티커 하나 달랑 가슴에 붙인 채 젊은이들 속에서 엇박자 스텝을 밟고 있는 내가 너무도 못마땅했던 것이다. 더 이상 나는 젊지도 않고 주목받지도 못한다는 사실에 당황스럽고 위축되었던 모양이었다.
춤을 배우는 첫 단계는 익명성에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직함을 떼어내고군중 속의 일개가 되는 일이었다. 계급장을 떼고 나니 사람이 보였다. 내가 배려해야 할 사람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나와 같은 심정으로 쭈뼛거리고 낯설어하고 있는 모습들이 그제야 보였다. 더욱이 춤을 리드해야 하는 살세로의 입장에서는 살세라에게 늘 주눅이 들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자기 스텝도 잘 안되는데 리드까지 해야 하니 말이다. 그들이 어떤 계급장을 달고 있는지 나도 모른다. 처음부터 달고 오지 않거나 떼어내는 일은 각자의 몫일 수밖에 없겠지만 조금 도와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생각을 바꾸자 손잡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어색하고 뻣뻣하기만 하던 손이 부드러워졌고 적극적으로 패턴을 받아주게 되었다. 거기까지가 육 개월이 훨씬 더 걸렸던 것 같다.
살사로 시작해 바차타(Bachata) 강습까지 중복 수강하며 춤에 대해 좀 더 뜨겁게 다가갔다. 그렇게 쉬지 않고 일 년, 동기들과도 친해지니 처음의 어색함은 많이 줄었다. 홀딩도 내가 먼저 손 내밀 정도로 거침이 없어졌고 소셜에서도 홀딩 신청을 즐길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몸도 많이 부드러워졌고 균형감도 좋아져 한 바퀴 턴에도 비틀거리던 것이 지금은 두 세 바퀴 턴도 거뜬하다. 음악이 나오면 저절로 몸이 그루브를 탄다. 다리에도 근육이 생기고 군살도 줄어 몸이 많이 건강해졌다는 느낌이다. 내게 살사는 운동 대신 선택한 몸 쓰기의 일상이다. 강습은 일주일에 한 번 가지만 집에서는 매일 운동을 대신한다. 우선 즐겁다. 살사에의 입문은 은퇴 후 지금 큰 즐거움 중의 하나가 됐다.
살사댄스는 아름답고 섹시하다. 건강한 춤이다. 파트너가 있는 춤은 치매예방에도 도움이 된다는 뇌과학자의 추천도 있다. 육십,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다. 도발하라. 낯선 이의 향내에 좀 설레면 어떠랴. 좀 뜨거우면 어떠랴. 섹시함 만큼 건강한 것이 어디 있는가? 나는 꿈꾼다. 불타는 석양의 크루즈 선상에서 백발을 휘날리며 날렵하게 스텝을 밟는 섹시한 할머니 살세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