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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효진 Aug 08. 2024

제게 파시겠습니까?


 "당신의 피곤을 제게 파시겠습니까?"

 "네?"


 입사 1년 차. 일이 손에 익기 시작하자 내게 쏟아지는 업무들은 상상을 초월했다. 매일 찌들어 사느라 행색이 엉망이긴 했어도, 이런 허무맹랑한 제안을 받을 줄이야.


30도가 육박하는 날씨에 하얀색 슈트를 쫙 빼입은 남자는, 얼이 빠진 나를 보며 태연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말했다.


 "말 그대로입니다. 당신의 피곤을 제가 사겠습니다."

 "저기요, 출근하느라 바쁜 사람 붙잡고 뭐 하자는 거예요."

 "팔겠다고 대답만 하신다면, 값은 바로 지불하겠습니다."


 '돈을 준다고?'

값을 지불한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버린 나는 얼마를 줄 거냐 물었고, 그는 '얼마든지'라며 어깨를 으쓱 올렸다.


개소리를 너~무나 정성스럽게 해서였을까? 장단이나 한번 맞춰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개인정보가 팔리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저렇게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피곤을 사 가겠다니 죄책감이 들 필요도 없어 보였다.


 "크흠.. 그래요 뭐, 사 가세요. 팔게요."

 "감사합니다. 돈 입금됐으니 확인해 보시면 됩니다."

 "아, 이렇게 빨리.. 감사합니다... 네? 입금이요?"


돈을 입금했다는 남자의 말에 '거참 일 처리 빠르네'하며 핸드폰을 확인하려던 나는 계좌를 알려준 적이 없다는 생각이 스쳐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뭐야..? 어디 갔어? 무슨 입금을 했다는 거야? 어... 잠깐만... 진짜??!?"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그 짧은 새에 남자는 사라지고, 투덜대며 계좌를 확인 한 나는 말 문이 턱 막혔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 천? 공이 7개, 정확히 천만 원이 입금되어 있었다.


월요일 오전 8시 출근길. 말 한마디 했을 뿐인데 통장에 천만 원이 꽂혔다.


 그날 이후로 나는 승승장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일을 해도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기에 신속 정확한 업무처리가 가능했고, 덕분에 퇴근 후 다양한 여가시간을 보내며 다채로운 하루를 보냈다.


주변에서는 에너자이저 혹은 긍정맨, 예스맨으로 불렸다. 일을 잘하고 사회생활에도 활력이 있으니 초고속 승진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돈이 절로 따랐고, 예쁜 여자도 원하는 대로 붙었다. 피곤이 사라졌을 뿐인데, 세상이 전부 내 것이었다.


 하지만 1년 여가 흘렀을 때, 내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넘치는 에너지로 늘어가던 인간관계는 많은 이들과 감정을 공유하게 하였고, 결국 머리와 마음이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았다.


모든 것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내게 값을 지불하고 피곤을 사갔던, 하얀 슈트의 남자가 절실했다. 나는 그와 마주치기 위해 걷고 또 걸었다.


 "어..! 저기요..!!"

어느 금요일, 드디어 그 남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 저를 기억하세요? 지난번 제 피곤을 사주셨던..."

 "그럼요. 기억합니다. 덕분에 피곤을 알게 되었죠. 감사합니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마치, 내게 엄청난 보물을 얻었다는 표정이었다.


 "아.. 그러셨군요. 그건 그렇고.. 혹시.."

 "편히 말씀하셔도 됩니다. 혹시, 제게 또 팔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 예.. 이번에는 제 스트레스를 팔고 싶습니다."

 "스트레스라.. 그것 또한 값지군요. 좋습니다. 입금되었습니다."

 

 '값지다고..?' 내가 그의 말에 의아해할 새도 없이, 다시 입금되었단 말을 끝으로 홀연히 떠나버렸다.


피곤에 스트레스마저 사라진 내 삶은 천국이 따로 없었다. 사람들은 날로 나를 칭송했다.


 "김대리는 프로젝트도 똑 부러지고, 회사 생활도 잘하는 게 아주 마음에 들어. 어제도 박 차장이랑 새벽까지 한잔했다며? 피곤하지도 않나 봐?"

 "자기는 정말 날 사랑하나 봐! 화도 한번 안 내고, 낮에도 밤에도 에너지가 넘친다니까~♡"

 "어머! 또 선물사 왔어? 우리 아들 요즘 잘 나가네!"

 

 "아.. 이 자식이 좀 달라졌는데.. 나빠진 건진 좋아진 건지를 모르겠네.."

게 중에 친한 친구들은 예전과 달라진 성격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잘 먹고 잘 사는 번듯한 내 모습에 술잔을 기울이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한 날은, 텅 빈 집에 들어와 혼자 앉아 있을 때였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흘렀다. 입은 분명 웃고 있는데, 자꾸만 슬픔이 차올랐다. 방구석에 앉아 하염없이 울고 있는 내가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 남자를 또 한 번 기다렸고 눈물을, 슬픔을 팔겠다고 말했다. 그는 왜인지 전보다 훨씬 생기가 도는 얼굴을 하고서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슬픔이라.. 정말 진귀하군요!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제발 제 슬픔을 사주세요. 더 이상 혼자 울고 싶지 않아요."

 "감사합니다. 입금되었습니다."


비로소 완벽했다. 피곤하지 않았고, 어떤 일에도 스트레스받지 않았으며, 더 이상 슬프지도 눈물이 흐르지도 않았다.


 근데 조금 이상했다. 나는 너무 즐겁고 활력이 넘치는데, 날 칭송하며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기괴하다는 눈빛으로 변해갔다.


일이 어그러져도 스트레스받지 않아서일까. 내게 똑 부러진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던 부장님은 일이 늘지가 않는다며, 지금이 웃을 때냐며 눈치 없다고 핀잔주기 일쑤였다.


애인과 주변 지인들은 입을 모아 불평을 쏟아냈다.

 “내 얘기 진지하게 듣고 있는 거 맞아?”


가장 친한 친구는 내 어깨를 꽉 붙잡고 응시했다.

 “정신 차려. 너 요즘 너무 이상해. 사람 같지가 않아."

 

이곳저곳에서 전부 손가락질을 해댔고, 날 찾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에너지를 풀 곳조차 없었다. 어딘가 어긋나고 있다는 걸 머리로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즐거웠다. 화가 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나는 속 빈 강정이었다.


마냥 기뻤다.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하기 위해 무작정 걸었다.


 걷고 걷던 어느 날, 멀리서 그 남자를 보게 되었다. 그는 하얀 슈트 차림이 아닌, 여느 사람처럼 평범한 옷을 입고 활짝 웃으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의 이질감은 온데간데없이 자연스레 거리에 녹아들어 있었다.


난 곧장 달려가 내가 판 피곤과 스트레스를 도로 사겠다 말했고, 그를 둘러싼 주위 사람들은 나를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하며 수군대기 바빴다.


 "뭐야? 저 사람 뭘 사겠다는 거야?"

 "왜 저래? 미쳤나 봐."


비난하는 목소리에도 웃는 나를 빤히 보던 그는 내 귓가에 다가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희-로-애-락. 이제야 인간의 모든 감정을 얻었는데, 내가 왜? 겨우 그 돈 받고 팔아넘긴 게 자기 인생인 줄도 모르고.. 대체 이 귀중한 걸 어찌 값을 매겨서 팔으라는 거야? 나는 절대 팔지 않아. 그 어떤 돈을 준다 해도."


그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비웃으며 단호하게 속삭이고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그대로 사람들 사이로, 거리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하하하 그렇구나. 히히 나는 어쩌지. 이히히히"


머리에서 툭 하며 무언가 끊어진 기분이 들었다. 이제 내게 남은 건 치아도, 혀도, 목젖도 없이 텅 하니 비어버린 채 위로 쫙 찢어진 웃는 입뿐이었다.


 나는 주어진 다양한 감정들로 때에 맞게 발산하며 살아갔어야 했다. 때론 과하게, 때론 과하지 않게. 그렇게 성장하며 완성되어 가는 인생을 귀히 여기고 지켰어야 했다.

 


[생각이 흐르는 시간- 초 단편 ‘제게 파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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