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예쁜 딸, 이제 일어나야지."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태양에 눈살이 찌푸려지던 찰나, 엄마가 태양을 막아서며 내 볼을 어루만진다. 볼을 타고 전해오는 익숙한 향기와 보드라운 손길에 나는 한순간 평온해지고, 그로써 힘차게 하루가 시작된다.
"으음.. 안녕히 주무셨어요. 엄마."
엄마는 눈 비비며 인사하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아유 예뻐라. 어쩜 이렇게 예쁠까."
눈곱이 엉겨 붙어 엉망인 내 모습이 뭐가 그리 예쁜지 하트 눈빛을 잔뜩 발사시킨다. 그 눈빛에 나는 쑥스러워 엄마를 쓰윽 밀어내면서도, 기분 좋은 미소를 숨기지 않는다.
한편 거실에서는 고소한 치즈냄새가 나를 부른다. 포실포실한 계란 속에 숨어 기다렸다는 듯 마구 냄새를 퍼뜨리고 나는 이끌려 식탁에 앉는다.
"와! 치즈 계란말이!"
"딸 좋아하는 거 먹고 든든하게 학교 가야지~ 초등학생 됐으니 더 잘 먹어야 해."
"엄마 케첩은?"
"어머! 내정신 좀 봐. 얼른 꺼내줄게."
다급히 냉장고 문을 열어 케첩을 꺼내온 엄마는 기다란 계란말이에 빨간 글씨로 세 글자를 적어낸다.
'사랑해♥'
공간이 모자라 찌그러진 하트에 웃음이 터진 우리는 깔깔거리고, 웃음소리를 들은 아빠가 방에서 기지개를 켜며 거실로 나온다.
"나만 빼고 뭐가 그렇게 재미있을까~ 잘 잤어 우리 딸?"
으레 그렇듯 내 머리를 흐트러뜨리고는 눈을 맞추는 아빠. 나는 그 커다랗고 따뜻한 손길이 참 좋다.
"아빠, 엄마가 그린 하트 좀 봐바. 찌그러졌어!"
내 작은 손가락짓에 아빠는 날 보던 시선을 찌그러진 하트로 옮기고, 이내 엄마를 바라보며 기분 좋게 웃어 보인다.
"하하하하, 당신 하트 그리는 법을 다시 배워야겠는데?"
"꺄르르르- 맞아! 엄마, 다시 배워야겠는데요?"
앵무새 마냥 아빠를 따라 복창하면, 엄마는 두 손으로 내 볼을 꼬집는 시늉을 한다. 간지러울 정도로 살짝 잡아내던 엄마의 집게손가락. 아침부터 웃음꽃이 만개하던, 그때 그날의 우리. 가슴 가득히 차오르는 행복을 느꼈던 그 순간이...
...
나는 너무 보고 싶었다.
삐 삐 삐삐삐삐 덜컥-
"딸, 왜 또 불을 다 끄고 있어.."
현관 불이 환하게 켜지자 더욱 대비되어 보이는 짙은 어둠의 거실. 그 속에서 나는 쪼그려 앉아 집에 들어온 아빠를 향해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아빠.. 오셨어요?"
달빛에 비춰 푹 젖은 내 눈망울을 봤는지, 다급히 가방을 손에서 놓치듯 던져버리고 내게로 오는 아빠. 걱정스러운 눈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 앞에 놓인 장난감 집과 세명의 마론인형을 덩그러니 쳐다본다.
그리고 나를 힘껏 끌어안는다.
"우리 딸. 인형놀이 하고 있었구나.. 배고프지? 아빠가 계란 말이 해줄까? 우리 딸이 제일 좋아하잖아.."
아빠는 당장이라도 목놓아 울 것 같은 목소리를 애써 삼키고 있었다. 나는 들고 있던 가장 예쁜 인형을 내려놓고, 위로는 될까 싶은 작은 손으로 아빠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치즈도 넣어주세요 아빠.."
몇 달 전 교통사고로 하늘나라에 간 예쁜 엄마. 그립고 그리운 마음. 나와 아빠는 각자의 방법으로 매일을 참아내고 있었다.
아빠의 계란말이에는 하얀 눈이 내렸다. 엄마처럼 계란 속에 치즈를 쏙 숨기는 게 어려웠는지 하얗고 작은 치즈들을 위에 뿌린 모양이 꼭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같았다.
"아! 케첩도 해줘야지 우리 딸."
엄마를 놀려대며 웃었던 아빠는 삐뚤빼뚤 빨간 글씨로 하얀 눈을 물들였다. 사랑해라는 글씨에 찌그러지다 못해 동그라미가 되어버린 하트와 별 하나를 그려주며 뿌듯해하는 아빠.
"이건 뭐예요?"
"그건 별이야. 엄마는 항상 우리 곁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테니까."
아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별이 된 엄마를 상상했다. 그리고 동그라미의 윗부분을 손으로 콕 찍어 핥아먹고는 케첩을 옅게 이어서 예쁜 하트를 완성시켰다. 포실한 계란 속에 숨겨진 고소한 치즈는 더 이상 볼 수 없었지만, 하얀 눈이 내리고 예쁜 별이 그려진 또 다른 계란말이가 눈앞에 있었다.
"하트랑 별이니까... 사 랑 해 엄 마."
“맞네. 우리 딸 역시 똑똑하네! 아빠는?”
“아빠도... 사랑해요.”
쑥스러워 기어들어가는 나의 고백에, 아빠는 내 머리를 흐트러뜨리고 눈을 맞춘다.
“아빠도 사랑해 우리 딸."
[생각이 흐르는 시간- 초 단편‘엄마는 나의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