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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효진 Jul 25. 2024

무심코 던진 돌.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어?"

 "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 괴로웠을 때가 기억에 남네."


내 대답에 친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왜 하필 괴로운 순간이냐 물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하고 '그냥'이라는 힘 빠지는 대답을 해주었다. 살아오는 과정에서 여러 일과 감정들을 경험했지만, 이상하게도 치가 떨리던 그 기억들이 여전히 눈에 선했다.


 "헐... 그냥이라니, 그럼 언제가 그렇게 괴로웠는데?"

 "그게 언제 적이냐.. 벌써 20년이 지났네."

 "20년이면... 13살?"

 "응,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넘어갈 무렵이었어."


나는 순식간에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어제 있었던 일인 마냥 이야기를 시작했다.


 "옆 동네에 외할머니 채소가게가 있었는데, 우리 엄마는 나를 그 근방에 있는 학원에 보내셨어. 내 또래 중에는 우리 학교 친구들이 한 명도 없었고, 온통 다른 학교 친구들 뿐이었지.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처음 보는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기가 어려웠어. 그래서 수업에만 열중하면서 간혹 주변에 앉은 친구들이랑 소소한 얘기 나누고 그랬지 뭐. 근데 몇 주나 흘렀을까, 분명 평소랑 다름없는 날이었는데 은근하게 나를 조롱하는 행동들이 느껴지는 거야."

 

조롱이라는 단어에 친구가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피식 웃으며 괜찮다는 눈짓을 보내고 말을 이었다.


 "평소 인사해 주던 친구들이 눈을 쓱 피해버리고, 사방에서 곁눈질로 수군거렸어. 의자도 툭 치고, 책상도 툭 치고. 실수인 줄 알았던 행동들이 갈수록 빈도가 늘더라고. 하루는 학원 앞에 있는 분식집에서 컵 떡볶이를 사 먹으려고 줄을 섰는데, 뒤에서 대놓고 나를 비난하면서 키득대는 거야. 대체 이게 뭔 일인가 싶더라. 어느새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되어있었어.. 알고 보니까 그 모든 조롱이 한 여자아이의 주도하에 일어난 거였어. 너 혹시 버디버디 기억나?"


 "버디버디? 당연히 기억하지. 학교 끝나면 무조건 자동 로그인이었잖아. 그건 왜?"


친구는 옛 추억에 잠시 들떴다가 이내 심각한 얼굴로 되물었다.


 "학원에서는 은근하게 괴롭히던 행동이 온라인상에서 폭발했어. 여느 때처럼 집에서 버디버디로 학교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갑자기 단체 대화방에 내가 초대가 된 거야. 닉네임도 전부 처음 보는 것들이었어. 그리고 시작됐어. 온갖 욕설이.. 읽을 새도 없이 빠르게 올라왔어. XXX, XXXX, XX, XXXXXXX, XXXXXXXXXXXXXX, XXXXX, XXXXXXXX, XXXXXXXXXXXX, XXXXXXXXXXX, XXXXXXXXXX, XXXXXX. 아니 너무 빨라서 읽기도 힘들더라고. 하하하"


이제는 괜찮다며 무심하게 내뱉던 지난 괴로움이, 곱씹을수록 숨이 가빠져오듯 불편했다. 친구는 감정이입을 한껏 했는지 눈이 벌게져서는 씩씩대기 바빴다.


 "내가 반박을 안 한 건 아니었어. 대체 왜 그러느냐고 따지기도 해보고, 대화창을 몇 번씩 나가기도 했는데 무한 반복이었어 피할 수 없는 끈질김이었지. 컴퓨터 화면 보면서 꼼짝도 못 하고 하염없이 울었어. 참 한심하지? 사실 버디버디 로그인을 안 하면 그만인데, 그때의 나는 날 미워하는 이유를 찾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어. 지금 같았으면 뭔 미친년이 다 있네 하면서 개무시했을 텐데 말이야."


 "야.. 괴롭히는 것들이 나쁜 거지, 당하는 사람이 한심할게 뭐가 있어."


 ".. 그래 너 말이 맞아. 그 애가 참 나빴었어. 웃긴 건 막상 학원에서 마주치면 아무 말도 안 했다? 어이없지 않아? 학원에서는 조용히 괴롭히고 온라인에서는 미친 듯이 괴롭히고 애가 영~ 한결같지가 않더라고. 결국 학원을 그만뒀어. 그만두고도 한동안은 무서워서 그만뒀네 어쩌네 별 욕을 다 들었는데, 악몽 같던 시간도 사그라들긴 하더라.


후유증은 진하게 남았어. 그때 이후로 친구들을 대할 때 끊임없이 눈치를 봤거든. 조금이라도 친구 말투가 이상하면 혹시 얘가 날 싫어하나? 내가 뭐 잘못했나? 여러 명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있으면, 혹시 내 욕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친구 관계가 참 어려웠어. 어영부영 그렇게 고등학교에 입학했지. 예쁜 교복도 입고 설레는 마음으로 딱 반에 들어갔는데 누가 있었게?"


 "에이... 설마."


친구는 설마 그건 아니길 바란다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안타깝지만 맞아. 날 괴롭힌 주동자였던 그 여자애가 있었어. 일단은 모른척했어. 다시 떠올리기도 싫었거든. 근데 반학기 정도 지났을까? 그 애가 너무 해맑게 웃으면서 자꾸 친근하게 구는 거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을 건네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겠더라고."


이야기를 듣던 친구는 황당하다는 눈빛을 잔뜩 보내주었다. 아마 다음 나오는 내 말을 듣는다면 저 표정은 한 층 더 심각해지겠지..


 "그래서 물어봤어. [나 기억 안 나? 네가 나 엄청 괴롭혔었잖아, 나 진짜 힘들었는데.] 되돌아오는 대답이 진짜 가관이었어. [내가!? 너를 괴롭혔어? 기억도 안 난다 하하하. 어렸잖아 그땐.]"


 "미친 거 아니야..? 그걸 기억을 못 한다고? 개소리를 해맑게도 했네..?"


 "하하 하하. 그니까. 근데 이상하게 화도 안 나는 거야. 아마 그 애는 날 괴롭혔던 그때가 언제였어도, 어렸다는 어쭙잖은 얘기를 했을 거야. 확신해 나는."


 "기억에 안 남을 수가 없었네... 맞아, 생각해 보면 괴로움만큼 강한 자극도 없지. 힝.. 나 너~무 속상하다. 고생 많았어. 그 나쁜 년은 뭐 하고 살려나."


 "글쎄, 궁금하지도 않다."


궁금하지 않다고 했던 나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내 안에 여전히 불쾌하게 자리 잡아있는 그 아이가 성장하지도, 성숙하지도 못한 채 그저 철없는 어린아이로 살아가기를 바라고 또 바라고 있다. 



[생각이 흐르는 시간- 초 단편‘무심코 던진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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