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효진 Jul 11. 2024

Subway of Love (1)

 

 우리 동네에는 특별한 지하철이 운행된다. 서울 중심가에서 두 시간은 족히 떨어진 외각 지역, 그럴싸한 상업시설도 크게 없는 베드타운 그 자체. 바로 그곳에서, 획기적인 이색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울 한복판에 직장을 두고 퇴직한 부모님을 따라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어언 5년, 스물여덟의 뜨거웠던 연애가 끝나고 솔로생활에 들어선 세월도 얼추 비슷할 것이다. 어째서 자취를 선택하지 않고 이 나이에 부모님을 따라 변두리로 왔느냐 묻는다면, 그건 전부 빌어먹을 연애 때문이었다.


 대학교 1학년 시절. 우연이 만난 한 남자와 운명같이 빠져들었던 사랑은 이십 대 후반까지 어찌어찌 이어졌었다. 어느 날, 그지 깽깽이 같은 소리를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정아, 내가 오래도록 생각해 봤는데, 너랑 결혼까지는 아닌 거 같아. 우리 그만 만나자." 

 "참, 오래도록? 그럼 저번주엔 아니 바로 어제 까지 여전히 좋아 죽겠다면서 물고 빨고 잠자리는 왜 가진 건데? 대체 네가 생각하는 결혼까지 갈 수 있는 여자가 뭔데?"

 "미안해."]


절절했던 우리의 사랑은 내가 아닌 어느 여자와도 가능한 흔해 빠진 감정이었고, 나는 그렇게 서울을 떴다.


비록 일터는 벗어날 수 없었지만, 한 순간도 그 사람과 같은 도시 같은 공간에 남아있고 싶지 않았달까... 하루하루 지쳐가는 몸뚱어리를 달고 있자니, 그 선택은 한참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매일 아침 2시간 거리의 출근 여정을 떠나고, 하루종일 일에 시달리며 퇴근 또는 야근... 사람 만날 시간은 더더욱 없고, 야금야금 나이만 먹는다. 만 나이 제도로 서류는 분명 어려졌지만, 내 신체는 영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했다. 보통 서른이 넘은 우리 나이에 썸이라도 타보려면 취미를 바탕으로 하는 동호회 활동을 해보라 권장하는데, 그것도 제대로 하려면 또 다른 나의 분신이 필요할 정도이다. 


 이런 나에게, 나와 같은 다른 이들에게 구원이 되어준 이름하여 [사랑의 지하철]. 그 열차가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 사랑의 지하철은, 오로지 탑승객들을 위해 이색적으로 만들어졌다. 1-1부터 8-4까지 모든 승강장의 첫 번째 칸이 임산부를 위한 공간이고, 탑승 후 임산부 배지를 좌석에 QR로 인식해야만 착석이 가능하다. 넉넉한 자리와 차별화된 의자로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편히 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아이들의 이동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힘들지 않도록, 사실은 부모의 평안을 위해 준비된 키즈 공간에는 동화구연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한 선생님이 배치된다. 이 시스템은 역사 내에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교육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어 일자리 창출은 덤이다.


시니어 공간도 당연히 존재한다. 지하철을 타는 어르신들은 대게 짐이 많거나 삼삼오오 모여 등산 다니시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래서인지 다른 칸에 비해 좌석이 길고 넓어 짐을 올려놓기 수월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목소리 큰 분들이 많아 유독 방음이 잘 된다는 가설 또한 돌고 있는 곳이다.


그 외에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을 위한 수면 공간과(경쟁자가 많아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다.) 간단한 업무 및 공부, 독서를 하기 위한 1인 일체형 테이블도 준비되어 있다.


 중에 가장 인기 있는 이색 공간은 바로 MBTI소개팅 칸이다. 총 16가지의 MBTI유형을 월요일부터 목요일 주 4일로 진행하고, 지원자는 공격형과 수비형으로 나뉜다. 수비형은 자신의 MBTI로 미리 지원을 하며, 이상형 등 간단한 자기소개를 기입한다. 그 후 공격형이 자기와 잘 맞을 것 같은 성격유형의 날, 원하는 이성에게 예약을 하고 탑승을 한다.


다만 서로의 용모 및 자세한 신상은 미리 알 수 없고, 여러 가지 위험 요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만남은 출근 시간에 이루어진다.


 서울로 하는 기나긴 출퇴근에 만날 시간도, 취미를 즐기기도 힘든 미혼의 젊은 현대인들을 안타까워하며 만들었다는 소개팅. 처음에는 다들 쭈뼛쭈뼛하더니 지금은 혈기가 왕성하다. 한번 경험해 본 친구 말에 의하면 새벽시간이라 직장인을 가장한 이상한 사람이 나올 일도 없고, 정거장 사이의 소요시간이 꽤나 멀어 서로 알아갈 시간이 충분하다는 결론이었다.


 “근데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나오면 어떡해? 상대가 날 싫어할 수도 있잖아!"

 ”하정아, 너 소개팅 안 해봤어?”

 ”야, 무조건 해봤지! 근데 지하철 안이잖아. 내릴 수가 없는데? 다음 지하철 배차거리도 길고!"

 “아니.. 당연히 문 열렸을 때 내뺄 순 없지 미쳤냐? 보통 차 한잔하고 일어나거나, 밥만 먹고 일어나잖아! 열차 소개팅도 똑같다고 보면 돼. 혹시 첫인상이 몇 분 안에 결정되는지 알아?"

 ”글쎄, 1분?”

 “겨우 3초야. 그 시간 안에 모든 감각을 이용해서 파악하고 뇌로 전달하는데, 상대방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나랑 잘 어울리는 사람인지까지 판단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공식적인 소개팅은 다음 정거장 도착 할 동안만 진행해 딱 10분."

 “뭐? 10분!!? 대박인데?"

 “장난 아니지? 심지어 다음정거장 도착하면 직원이 들어와서 테이블까지 정리해. 계속 진행하길 원하는 사람은 다른 칸으로 이동해서 나란히 앉아 대화하는 거고, 싫다면 각자 갈길 가는 거고! 어느 한쪽은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장시간 불편하게 갈 순 없잖아?"

 “오... 굉장히 깔끔한 시스템이네.”


[지금 들어오는 사랑열차, 오늘의 소개팅은 외향, 감각, 사고, 인식 ESTP입니다. 지원자가 많은 관계로 열차 칸은 4-2 / 4-3 / 4-4 총 세 칸으로 진행됩니다. 활기찬 하루 보내시길 소망합니다.]

 

 ”너 열차 들어오나 보네! 하정아, 이제 그만 솔로탈출 하자..!! 우리 다음 주에 만나는 거 알지?"

 “알지, 알지! 귀한 연차 날에 전화받아줘서 고맙다... 다음 주에 좋은 소식 들고 갈게!"


다음 주 Subway of Love(2) 편이 연재됩니다.

[생각이 흐르는 시간- 초 단편‘Subway of Love(1)’]


이전 03화 당신의 이름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