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 내가 새가 된 건지, 나비가 된 건지, 천사라도 되어버린 건지 알 길은 없었다. 그냥 발을 굴렀을 뿐인데 날고 있었다. 혹여나 떨어질까 힘차게 날갯짓도 하며 날아냈다. 머리카락 사이로 흩어지는 바람에 자유는 없었다. 두려움뿐이었다. 손과 발에 힘이 빠질까 무서워서, 건물에 부딪칠까 무서워서, 대체 나는 얼마나 날아서 어디에 떨어질까 하는 막연함에.
꿈에서 깬 나는 울고 있었다. 스치는 바람이 시렸기 때문일까? 막연함에 두려웠기 때문일까. 그것 또한 알 길은 없었다.
"눈은 또 왜 그래? 배가 됐어, 못생김이.. 아주 그냥 퉁퉁해."
아침부터 욕 해달라 아우성치는 저 동생 놈은, 언제인지 자연스레 들어와서 아예 눌러앉아버렸다.
"좋은 말 할 때 갈 길 가라... 아니다, 잠깐 들어봐. 내가 꿈을 하나 꿨거든?"
"무슨 꿈?"
"하늘을 나는 꿈을 꿨는데, 기분이 영 별로야. 막 자유자재로 나는데 무서워 너무."
".. 뭐 그런 꿈을 꿨어. 그 꿈 나한테 팔아. 천 원?"
"아 됐어 꺼져. 나 진지해."
"어허, 누나!! 내 말 지나치면 큰 화를 불러올 것이야."
"그냥 꺼지지 않으면 너는 내 화를 면치 못할 것이야."
"어이구, 웬일로 힘이 넘치시네. 자 자 주먹에 힘을 푸시고, 오늘 병원 치료 날인 거 알지? 10시야. 지난번처럼 피했다가는 나 진짜 화낼 거야."
나는 3개월째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2년 전 끔찍한 사고를 우연하게 목격 후, 채 얼마 되지도 않아 엄마까지 돌아가셨다. 심지어 6년을 함께 한 남자 친구는 나를 떠났다.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집 안에만 처박혀 살아가는 나를, 동생은 기어코 끄집어 병원 문 앞에 세웠다.
똑똑-
"안녕하세요. 오늘 컨디션은 좀 어때요?"
"나쁘지 않아요. 동생이 오늘도 치료 안 받으면 가만 안 둔다고 잔소리를 엄청 하는 거 있죠?"
".. 동생분이요? 그러셨구나.. 은하 씨. 이번 주에 처방 나간 약 또 안 챙겨드셨죠?"
"엇, 어떻게 아셨어요? 아~ 선생님, 저 약한 약으로 좀 바꿔주시면 안 돼요?"
약을 먹으면 정신이 온전해지기에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약을 찾지 않으니 결국엔 나도 찾을 수 없었다.
"그건 안 돼요. 잘 챙겨 먹고 얼른 낫기로 하셨잖아요. 동생분이랑은 무슨 얘기를 나누셨어요?"
"음.. 제가 오늘 꿈을 꿨는데요. 일어나니까 울고 있더라구요. 왜 울었는진 모르겠고.. 어쨌든 동생이 아침부터 제 눈이 퉁퉁 부었다면서 놀려대고, 자기한테 꿈을 천 원에 팔라고 하더라구요. 진짜 웃겨요. 그게 어떤 꿈일지 알고 겨우 천 원에 산다고. 하하"
"아침부터 대화를 많이 나누셨네요. 동생분은 어떤 모습이었죠?"
"음.. 동생은.. 그냥 동생이었어요. 아..! 지난번에 제가 붙여준 밴드를 아직도 하고 있더라구요."
"그러셨군요. 동생한테 밴드는 왜 붙여주셨을까요?"
"동생.. 동생.. 동생!!!!! 제 동생은 왜 자꾸 물어보시는 거예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나는 두 눈이 벌겋게 되도록 노려보았고, 선생님은 한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날 보는 검은색의 진한 동공이 무서우리만치 단호했다.
"약 잘 챙겨드셨으면 이렇게 흥분할 일도 없겠죠. 숨 깊게 들이마시고, 다시 생각해 볼까요?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요. 우리 벌써 3개월째 잘 이겨내고 있어요. 자, 은하님은 동생분께 밴드를 왜 붙여줬을까요?"
"하... 네 선생님.. 동생은.. 후.. 여기저기 피가 났어요 찢기고 꺾이고.. 온전치가 않아요. 너무 아파 보여서.. 그래서 밴드를 붙여줬어요."
"잘했어요. 동생이 많이 아파 보였군요... 그럼 동생은 어쩌다 다쳤을까요?"
".. 흡.. 아... 아.. 선생님.. 말할 수가 없어요. 저는 말할 수가 없어요."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나는 절대 말하지 않겠노라 입을 틀어막았다. 선생님은 우악스럽게 막아낸 내 손을 천천히 내려 따뜻하게 잡아주었다. 더 이상 막을 것이 없어지자 나는 파르르 떨며 울분을 토해냈다.
"제 동생은.. 차에 치었어요.. 흡.. 순식간이었어요. 저한테 건너오려고 횡단보도에서 발을 내디뎠을 뿐인데.. 하늘로 날았어요. 아아.. 저 멀리 날아서 떨어졌어요. 선생님..! 제 동생이.. 우리 은호가 얼마나..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흡.."
나는 가슴께를 부여잡고 소리 내어 울었다. 어찌나 잡아 뜯었는지, 두둑 소리와 함께 환자복이 뜯어져 버렸다. 선생님은 간호사에게 받은 담요를 덮어주며 묵묵히 나를 지켜봐 주었다. 괜찮다고. 잘 해내고 있다고.. 반쯤 나간 정신으로 혼자 병원 문 앞에 섰던 그 순간을 기억하며, 내 스스로 이겨내길 기다려 주었다.
"마지막으로 물어볼게요. 여기가 어디죠?"
"내 집.. 아니, 병실이네요.."
"좋아요. 동생분은 여전히 여기에 있나요?"
"... 아니요. 제 동생은.. 죽었어요.."
"오늘도 이겨내줘서 고마워요 은하 씨. 현실 마주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네요. 곧 퇴원하실 수 있겠는데요? 김 간호사님, 은하 씨 약 드시는 거 확인하고 침대로 눕혀주세요."
끼익- 탁
"아- 벌리시면 약 넣어드릴게요."
"네 선생님.. 아-"
"꿀 떡 삼키시고, 다시 아- 혀 위로 올려보세요. 네 좋아요."
끼익- 탁
"우욱, 우욱.. 하.. 뱉었다.. 헤헤"
간호사 선생님까지 모두 나간 뒤, 내 집에는 정적이 흘렀다.
2년 전 여름. 오랜만에 누나를 보겠다며 장장 4시간에 걸쳐 서울까지 올라온 동생은, 눈앞에서 나를 향해 걸어오다 트럭에 치여 죽어버렸다. 스물여덟의 우리 은호는 언제든, 어디로든 훨훨 날 수 있는 커다란 날개를 가진 무궁무진한 사람이었다. 그리 고통스럽게 하늘로 날아 피로 물들어 꺾여버릴 날개가 결단코 아니었다.
동생을 잃은 충격에 시름시름 앓던 엄마는 끝내 목숨을 저버리시고, 나는 정신을 놓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급작스레 찾아온 동생의 환시 증상은 6년의 남자친구마저 못 견디겠다며 떠나버리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내 곁에는 동생뿐이었다.
내 동생 은호는 정말 내 곁에 있었다. 불과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은호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저 선생이 문제였다. 자꾸만 내게 약을 먹이고, 극한으로 몰아붙이고, 은호와 나를 떼어놓는다. 은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왔지만, 나는 은호와 영원히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헤헤. 사실 그래서 오늘 꿈도 동생에게 팔지 않았다.
퇴원만 한다면 은호의 꺾여버린 날개 대신 내가 더 멋진 날개를 펴서 저 멀리, 더 멀리 날아오를 것이다. 두렵지만, 힘차게 날갯짓을 해서 은호와 엄마의 곁으로 떨어지지 않고 닿을 원대한 포부를 남몰래 품고 있다.
"쉿"
[생각이 흐르는 시간- 초 단편 ‘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