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와서 제일 놀랐던 것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질서, 다른 하나는 환대이다. 먼저 질서는 전 세계 사람들이 일본인을 특정할 때 빠지지 않고 떠올리는 키워드일 것이다. 그것은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방법에서 알 수 있다. 일본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왼쪽으로는 서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걸어 오르내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확실하고 당연하듯 나란히 움직인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출근길이 바쁘고 개찰구로 가기까지 보폭이 좀체 넓어지지 않아도 일본인들은 반대 방향으로 오는 사람들을 위해 한 줄은 꼭 비우고 이동한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장착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저절로 배려심이 느껴지는 한 장면이다.
한국은 방향이 정해져 있다기보다 에스컬레이터에 맨 처음 오른 사람의 위치와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또 에스컬레이터는 다소 위험한 수단이라서일까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그렇게 방향을 신경 쓰지 않아 화살표 스티커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암묵적인 무언가가 느껴진다.
얼마 전 한국에 잠깐 갔을 때 제일 큰 사이즈의 캐리어를 끄느라 집으로 가는 길이 불편했던 적이 있다. 그중에서도 지하철에서 내릴 때였다. 나는 사람들이 내리기까지 기다렸다가 타는 것에 익숙해져서인지 당연하듯 생각했다. 하지만 역 플랫폼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마자 타 버리는 사람들이 있어 캐리어가 다리에 부딪히면서 발이 꼬여버렸다. 에스컬레이터에서도 오르자마자 두 줄로 막혀 있던 건 예삿일이라 생각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기도 하지. 그 순간 '배려심이 없는 거야?'라는 생각이 저절로 났다. 마치 나의 지난 행동들을 합리화해 버리는 것 같았다.
사실 일본에도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공간이 있다. 그곳은 바로 전철 안이다. 전철 안에 사람이 꽉 차 있어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해도 꾸역꾸역 들어가 어떻게든 자기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던 나는 숨통이 막혀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를 때도 있지만 어쩔 땐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그리고 주변의 자리가 비면 아무리 건장한 남자라도 무조건 앉고 보는 편인 것 같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출근길의 전철은 늘 고역인가 보다.
일본의 문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환대'는 편의점에서 느낄 수 있다. 물론 점포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가 본 편의점에서는 휴대전화를 만지고 있는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도시락 코너, 음료 코너, 컵라면 코너 등 내가 가는 길마다 분주히 움직이면서도 인사를 꼭 해 주신다. 그 밖에도 도시락을 계산하려고 놓으면 "데워드릴까요?"라는 말을 먼저 해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포인트 적립을 위해 어플을 켜고 바코드를 내밀어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수고스럽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기까지 한다. 아, 이건 좀 부담이다.
일본 취업을 준비할 때 찾아본 기업들의 이념 중, 가장 많이 등장한 문구는 '우리의 서비스로 인해 상대방이 행복해한다면 (또는 미소를 짓는다면) 우리 또한 행복하다.'라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이런저런 경험으로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어느샌가 거울이 되어 내 행동도 변화되고 있음을 느낀다. 별거 아닌 것에도 사과를 하게 된 건 자제하고 싶지만 좋게 생각하면 상대방의 마음을 세세하게 신경 쓸 수 있게 된 것 같다.
사실 신경 쓴다는 건 깨나 머리 아픈 일이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팀 내의 사람들과 공과 사를 나눌 때는 이 방법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세세하다'라는 장점은 업무에도 당연 적용이 되었다. 질문을 할 때 상대방의 공수를 한 번이라도 덜기 위한 생각으로 상대방이 얻고 싶어 할 정보를 자세히 전달한다거나, 되물을 일이 없도록 내가 가진 정보를 알맞게 필터링하여 논리적으로 답변했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취업 준비를 하며 '꼼꼼한 성격이다'라는 추상적이기 그지없는 내 장점이 늘 보잘것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나의 모습이 이런 점에서 발휘되고 있었구나 하며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나 또한 누군가의 거울이 되기 위해 질서와 환대의 문화가 자리 잡은 이곳에서 착해 빠진 사람이 되기보다 적당히 배려심 있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