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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랑 May 17. 2024

Letter to me.

그러니 너는 오늘을 눈이 부시게 살아가도 된다.


Dear, me.

주희야, 안녕.


요즘 잘 지내는 것 같아 기분이 좋구나. 언젠간 꼭 오늘의 날들은 지나갈 거라고 믿고 있는 거 맞지? 부모의 부재가 너에게 남긴 건 결핍이었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 네가 너와 화해를 하기까지 잘 커줘서 너무 고맙다.

아직 용서할 수 없는 것들이 아직 있다는 거 알아. 그래도 좋은 사람 만나서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랑하는 아들 키워가면서 완벽해지고 있다는 거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지금부터 현재를 살아가 보는 거야.



왜 있잖아, 예전엔 상대의 눈치를 살피고 너무 지나친 배려로 너의 자존감이 떨어진다고 느꼈을 때 기억나? 그때는 정말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만 가득했는데, 요즘은 그러지 않아서 좋다. 남들과 비교하기 바빴던 삶에 부재와 결핍투성이들이었다면, 요즘의 너는 비어 있는 곳에 꽃도 채웠다가 바람도 지나다니게 했다가 비도 셀 수 있게 만들었다가 무너지면 허허 웃으며 또 쌓아 올리는 돌담 같은 너의 시간이 너무 좋다.


강해 보이려고, 능력이 많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똑똑해 보이려고, 너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은 요즘의 너도 너무 좋고. 중요한 것은 스스로 내 삶의 기준을 정해가면서 너의 품위를 지켜주는 스스로의 판단이 너무 멋지다.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삶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도 정말 보기 좋구나. 다른 사람의 기준과 요구에 내 행복을 걸지 않는 삶을 살아보니 어때? 무엇이든 스스로 결정하고 너 자신을 존중할 수 있느냐의 문제점, 내면의 힘과 독립성을 키워나가는 모습도 정말 칭찬한다. 네가 가진 보폭과 너의 속도대로 지금처럼만 걸어가길 바랄게.


요즘의 너는 생각과 실행의 차이의 격차를 좁혀가며 바로바로 실천하고 지난 시간 얽매이지 않으려고 하려는 노력들도 좋다. 결국 사람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 마련이지. 너 또한 너의 지난 시간에서도 많이 상처받아서 아팠을지언정. 상처 많은 꽃은 향기가 더 짙다는 말처럼 짙은 너로 살아 하는 모습이 너무 대견하구나. 봄에 태어난 너는 끝없이 너 자신을 미워하는 시간 속에서 봄날은 초라해지기 가장 쉬운 시간이었던것도 안다. 봄은 죄가 없는데도. 죄책감으로 시달렸을 너의 결핍에 이제는 너라는 꽃을 가장 아름답게 피울 시기임이 분명함을 알려주고 싶구나.


지난 시간, 빛나던 너는 없고 끝이 바래고 눈물로 어두워진 낯만 있을 뿐. 봄은 종종 그런 불행으로 얼룩졌는데도 너는 여전히 봄을 미화하려는 시도 안에 있었다는 것, 그러나 영원이라는 말이 그렇듯 봄은 어떤 것도 약속해 주지 않았었지. 하지만 그게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걸 알기까지 참으로 애썼다.


아직 네가 가야 할 시간 속에 많은 장애물들이 있지만, 그 안에서 입은 상처들이 영영 회복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의 허들을 잘 넘어왔으니,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잘할 것이다. 아직 무언가를 속단하기엔 경험이 부족하지만, 그 시간들로 인해 이제 너의 시간은 온전의 네 것이니 걱정하지 말도록 하자. 자연재해처럼 피할 틈 없이, 보호할 틈 없이 널 덮친 상처들에 대해서도. 이 세상이 마냥 아름답진 않아도. 같은 아픔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그것부터 시작해 보자. 얻은 조각들이 커, 패인 상처엔 금방 살이 차오르기 마련이다. 살이 차올라도 흉터는 남겠지만 상처 입은 것을 후회하고 돌아보진 말도록 하자.


지나간 너의 시간들을 미워했다면 이제는 약도 발라주고 입김으로 '호~'도 불어주며 비어있는 중간중간 틈 바위에 바람도 꽃도 향기도 채워주자. 결국 그 아이는 자라 네가 되겠지 하며 내가 나를 키워 너라는 꽃을 피울 거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눈치를 많이 보던 오감이 발달한 너는 상대의 기분을 잘 살피며 긍정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에너자이저가 되어 갈 것이고, (꼭 그렇지 않더라 하더라도 괜찮다.) 트라우마 때문에 사람을 무서워하는 너는 조금 더 조심스럽고 천천히 다가가고 다가오는 귀인들을 만날 기회와 눈을 가지게 될 것이고, 많은 재주가 있는 너는 어떤 곳에 가더라도 물들 수 있는 도화지 같은 사람이 될 것이며, 낭만을 찾아 헤매던 너는 섬세하고 세련된 낭만가가 되리라 믿는다. (네가 그토록 바라던 한량과 낭만가) 표류하던 삶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음을 안다. 표류의 경험으로 너는 의연해지고 유연해졌단다. 급하게 갈 길을 천천히 가는 법도 알았다. 말하는 화법에 자신감이 없는 게 아니라 세심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는 너였기에 너의 자존감을 높이기에도 충분하다. 그러니 너는 오늘을 눈이 부시게 살아가도 된다.


너의 동반자 옆 지기와 너를 매일 성장시켜주는 아들과 인생을 살아가다 꽃도 보고 개미도 보고 바람도 느끼며. 오늘은 분명 지나간다. 눈부신 너의 시간들을 흘려보내고 그러다가 다시 힘들어질 땐 흘려보낸 시간을 뒤돌아보는 여유도 가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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