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의 시간은 26년의 세월 앞에 무너졌다.
아주 오랜만에, 몇 시간을 울었다. 우는 법을 까먹어서 우는 방법을 몰라 한참을 먹먹하게 눈물만 흘리고 있다가 갑작스레 터진 눈물은 봇물 터지듯 솟아올랐고, 하염없이 울다 보니 머리가 아팠다. 가슴에서 뛰어야 할 심장이 머릿속으로 이동한 것처럼 내 머릿속은 쾅쾅 울렸고,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꽤나 뜨거웠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하염없이 울고 나니 속은 시원했다. 스치기만 해도 예민해진 나는 옆지기와 말다툼이 시작되었고, 결국 열어서는 안 될 판도라의 상자까지 열게 했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듯한 느낌이었다. 잊으려고 잊으려고.. 몇 년을 쌓은 공든 탑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을 멍하니 초점 없는 눈빛으로 허공만 바라보다 난도질된 마음을 추스리기 바빴다.
예민하기 짝이 없는 내 마음은 나이가 들어도 쉽사리 무뎌지지 않는다. 조금은 무뎌져서 둔해지면 좋으련만. 어쩌면 예민한 기질은 없어질 기미조차 보이질 않는 건지. 나에겐 고질병이 있다. 고치기 어려우니 이젠 ‘팔자’라는 말이 더 맞으려나
그 고질병은 어떤 날엔 밉다가 또 어떤 날엔 아프다가 어떤 날엔 원망스럽다가 가엽고 슬프고 참으로 지독한 애증의 관계다. 지켜볼 수밖에 없는 고질병은 약도 없고 방법도 없다. 잘 숨겼다 싶으면 튀어나와 허파를 뒤집어 놓기 일쑤이다.
잘 숨겨두고 나오지 말라고 고사를 지낸 지 5년 만에 26년의 시간은 갑작스레 튀어나와서는 나를 일주일째 몸져눕게 만들었다. 이 놈의 고질병은 나올 때마다 아주 나를 시험에 들게 하다 못해 망상장애까지 불러일으킨다. 그날의 기억처럼 나는 나를 학대했다. 순간 위험함을 감지했는지, 다행히도 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은 멈췄고, 다시 나를 일으켰다. 참 다행이다. 더 나를 미워하지 못하게 막아서.. 참는 방법만 터득했다면 더 위험했을지도 모르겠다. 모두 토해내고 이겨내는 방법을 터득해 놓으니 내 자신을 사지로 몰진 않더라.
기억은 완벽하지 않다. 기억이라는 놈은 왜곡되기 마련이고, 예기불안이라는 놈은 나를 화형 시키듯 고통을 주지만, 인정하고 들여다보고 토해내고 다시 삼키며 멀리서 바라보고 늦더라도 천천히 해결책을 찾았던 나의 5년의 시간은 배신하지 않았다.
부처의 가르침에선 화가 나면 화를 참는 무기로 화를 이겨내고, 감정 쓰레기통이 필요하면 내 안에 쓰레기통을 만들어 그 안에 버리는 무기를 사용해 떨쳐내면 되며, 부정적인 마음이 들면 긍정적인 마음의 무기로 이겨내라지만 아직 거기까진 못 간 듯하다. 26년의 트라우마를 5년의 시간으로 덮기엔 터무니없이 짧고 얕지만, 그래도 5년의 시간은 적지만 강했다.
공든 탑이 무너지긴 했지만, 금방 보수 공사에 들어갈
수 있는 힘이 생긴것이다. 참 다행이지..
지금 당장 해결할 방법이 없다면 그건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아직 못 찾았을 뿐이라더라. 누군가를 그만 좀 미워하고 싶다. 모두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일부러라도 잊고 지워버리도록 해야겠다. 당장 눈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 내 과거를 기억해 내고 왜곡하고 사로잡혀 전전긍긍하는 게 아니라, 내 아이와 웃고 노는 것을 하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소중히 대하고 조심히 대하자. 그렇게 하도록 하자. 그래야 내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