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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크가드너 Aug 27. 2024

정원이라는 작은 우주, 카렐 차페크와 함께 떠나는 1년

<정원가의 열두 달>을  읽고



이 책을 안 읽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는 정원사는 없을 것이다. 정원이 있거나 정원을 만들고 싶은 사람, 정원에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가 읽게 되는 카렐 차페크의 <정원가의 열두 달>은 세계 많은 정원가들이 첫 손에 꼽는 책이다. 읽는 동안 내내 웃을 수 있는 책이 많지는 않다. 이 책을 읽은 동안 내내  웃었다. 공감이 돼서도 그렇고 카렐 차페크가 워낙 유머러스하게 표현을 해서 그렇다. 


정원가의 열두 달은 1929년 출간된 책이다. 백 년 전에 나온  책임에도 공감을 격하게 하고 정원관리에 도움을 주고 있어서  놀랍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원일은 비슷한가? 카렐 차페크의 형 요제프 차페크의 삽화도 웃음을 자아내 다시 보게 된다. 이 두 형제는 정원 가꾸기에 진심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원사로서 지난 1년을 되돌아본다. 



1월



정원 가는 1월에 뭘 해야 할까? 부지런한 분들은 실내에서 화분에 씨앗을 심겠지만 게으른 정원사인 난 아무것도 안 했다. 그저 정원을 쳐다보며 시들거나 생명을 마감한 식물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만 했다. 예를 들어 갈색으로 변한 수크렁이나 억새를 그대로 두어야 하나? 이 상태로 두면 새 싹들이 못 올라오면 어떡하지? 등등 경험이 없는 초보정원사는 걱정만 가득했다.









2월


2월이 되면 날씨를 살피게 된다. 언제 노지에 뭔가를 심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다. 겉으론 땅이 다 녹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빨리 노지에 심고 싶지만 기다려야 한다. 2월엔 흙의 상태를 살펴보고 흙을 윤택하게 할 방법을 생각하고 행동을 해야 하는 때이다. 흙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거름이나 퇴비를 뿌리 근처나 텃밭 만들 자리나 빈 공간에 뿌려서 준비를 하는 시기이다. 그리고 한두 종류씩 새싹이 눈에 보여 기대감으로 들뜨기 시작한다. 


정원가는 3월부터 바빠지기 시작한다. 뭘 심어도 된다고 생각을 하지만 때로 뒤늦게 찾아온 동장군이 와 정원사들을 슬프게 하기도 한다. 꽃샘추위가 없게 해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한다. 방심을 하면 바로 식물들을 죽이고 만다. 겨울 내내 실내에서 화사한 꽃으로 기분 좋게 해 줬던 카랑코에 줄기에 뿌리가 나온 게 보여 밖에 심었다. 수경 재배한 히아신스도 함께. 아뿔싸  이틀 뒤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카랑코에는 바로 얼어버렸다. 히아신스도 상태는 안 좋지만 다행히 잘 버텨주었다. 3월에도 방심은 금물이다. 새싹이 서로 경재이나 하듯이 마구마구 올라오고 꽃도 피기 시작한다. 매일 정원에 나가 새로운 변화를 찾는 재미가 있다. 관심을 갖고 잘 들여다볼수록 많은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노지에 씨앗을 심어도 된다. 



4월

4월엔 뭘 할까?  묘목이나 모종 쇼핑을 하는 때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자꾸 꽃집이나 이웃집을 기웃거려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어떻게든 가져온다. 그걸 심다가 땅속에 있는 구근들을 밟기도 하고 나무를 꺾어버려 한 해동안 꽃을 볼 수 없어 일 년 내내 아파하기도 한다. 조심하지만 내 발자국 때문에 새싹들이 뭉개져 속이 상한다. 3월에 이어 잡초제거 속도가 빨라져야 한다. 보이는 대로 뽑아야지 게으름을 피우면 조만간 잡초에게 정원이 점령당한다. 텃밭에  상추, 고추, 토마토, 가지, 호박등 각종 야채 모종을 심는 시기이기도 하다.







5월

화려한 꽃들로 정원이 채워지는 5월이다. 눈만 들어도 여기저기 꽃들이 피고 열매도 자라기 시작하고 바람이 불면 코끝에 향이 느껴지기 시작한 때이다. 철쭉처럼 꽃이 피었다가 지는 식물들은 가지지기를 해줘야 내년에 예쁜 형태의 꽃을 볼 수 있다. 가치치기 처음 할 때 나무 앞에서 '어떡하지? 내가 잘못 잘라서 내년에 꽃이 안 피면?' 쉽게 자를 수가 없다. 지금은 과감하게 자른다. 더 자를 게 없나 찾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엔 전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통풍이다. 꽃들이 화려한 만큼 풀들도 성장속도를 높이기에 풀 제거 속도도 빨리해야 한다. 





6월엔 봄에 예쁘게 꽃을 피웠던 구근들을 캐서 저장해야 하는 시기이고 비가 많이 와 화초들이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잔디를 자주 깎아줘야 하고, 잔디 사이사이에 있는 잡초도 뽑아야 한다. 5월보다 더 많은 꽃들이 선을 보인다. 가끔은 비를 맞고 풀을 뽑는 똘아이 짓을 하기도 한다. 외출했다가 날씨를 보고서 '오늘은 풀 뽑기에 너무 좋은 날이야' 생각하고 '집에 빨리 가야지'라는 맘에 조급해진다.


 


7월

정원가가 7월에 해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물 주기이다. 날이 더워 아침이나 저녁에 물을 준다. 부부가 누가 언제 물을 줄지 소통을 잘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화분에 물 주는 것하고 많은 차이가 있다. 물 주기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일명 물주기 명상을 한다. 화초들이 잘 자라듯 옆에 있는 잡초들이 쑥쑥 자라 드디어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어릴 꽃과 구분이 안되 때까지 기다려하는 경우도 있다.








8월



책에서 8월에 정원가들은 맘은 무겁지만 휴가를 떠난다. 우리 부부도 여행을 갔다가  물을 줘야 한다는 남편의 성화로 원래 예상보다 하루빨리 집에 돌아온 적이 있다. 도착하자마자 짐도 안 풀고 물부터 주기 시작했다. 풀을 뽑아야 하지만 모기 공격으로 쉽지 않다. 모기 때문에 비 오는 날 정원일을 즐겨한다.






9월은 봄과는 다른 꽃들로 채워지고, 열매들도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시기이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거름을 해줘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여기저기서 국화향들이 진동한다. 가을의 냄새다. 5월과 9월은 꽃을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선물을 많이 할 수 있는 시기라 좋다.




10월엔 히아신스, 튤립 수선화 같은 춘식구근을 심어야 하는 시기이다, 종묘사 쇼핑을 많이 하는 때이기도 하다. 어떤 종들은 식물들을 정리하기도 하고 겨울이 되기 전 가지치기를 해줘야 하는 종도 있다. 식물에 따라 맞춤 가지치기를 해줘야 한다. 정원가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일이다.





11월




11월은 다시 흑의 상태를 살피고 내년을 위해 거름을 주거나 이미 죽어버린 가지들을 정리를 하고 겨울을 준비하는 때이다. 

못심은 구근을 심어 다음해 정원 모습을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카렐 차페크는 12월엔 정원을 바라보는 시기라고 했다. 꽃이 많은 시기에 감상을 해야지 이 시기에 뭘 보라는 거지?  12월에도 새로운 식물을 사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한다. 책에 의하면 100년 전에 정원사들은 카탈로그를 보고 구매를 했다. 유럽은 오래전부터 정원문화가 발달이 되었나 보다.


 숨 가쁘게 정원가의 1년을 살펴보았다.  정원 가꾸기는 몸은 고되나 맘은 즐거운 일이다. 정원을 통해서 나눔을 많이 한다. 자연과 나눔, 사람과의 나눔이 가능한  기분 좋은 일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원관리는 식물을 키우기보다 흙을 가꾸는 일이라고 한 카펠 차페크의 말이 이해가 간다. 흙을 통해서 식물과 그 안에 살고 있는 각종 동물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귀한 일을 하는 게 정원가이다.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반려동물처럼 반려 식물도 커다란 기쁨을 준다.




<정원가의 열두 달>은 단순한 정원 가꾸기 지침서를 넘어, 정원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선물한다. 정원을 가꾸는 것은 단순히 식물을 키우는 것을 넘어, 자연과 소통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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