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년준비생 Sep 29. 2023

나는 너의 초라한 우주




 

그동안 인생을 돌아보며 나를 보여줄 수 있는 단어를 하나 고르라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뒷북’이다. 이상하게 그랬다. 나는 거의 모든 유행의 끝물에 항상 발을 내미는 요상한 성미를 가지고 있었다. SNS도 남들은 쓸 대로 쓰고 나서 약간의 지루함이 몰려와 시들시들해지는 때가 왔을 때 새 계정을 만들어 혼자 신나게 들락날락거리는 뒷북. 패션도 왜 너도나도 저렇게 입고 다니는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강경 패션 보수처럼 받아들이질 않다가 끝물에 스멀스멀 조금씩 예뻐 보이기 시작하는 뒷북. 뭐 이런 것들이야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일은 없으니 그럴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것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대학도 한 번에 가지 못했다. 따라주지 않는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욕심은 컸고 결국 채워지지 못한 욕심은 일 년을 더 공부하는 것으로 보태보려 했다. 내 신분은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아닌 그냥 성인이었고 또 성인이지만 생활은 고등학생이랑 다를 바가 없었다. 모두 다 공부하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친구들에게 ‘교실’은 ‘강의실’이 되었고 ‘숙제’는 ‘과제’가 되고 ‘선생님’은 ‘교수님’이 되었다. 단어 몇 개에서 오는 거리감은 꽤나 컸고 대학생이 된 친구들 사이에서 난 수능 뒷북 중이었다. 그렇게 일 년을 늦게 들어간 대학에서도 나는 전공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방황했다. 이런 공부를 4학년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멀미가 밀려왔고 결국 나는 전공을 다시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현재 내가 있는 과에서의 전출 인원 안에 들어야 하고 가고 싶은 과의 전입 인원 안에도 들어가야 하는 꽤 까다로운 일이었지만 이 길이 아니라는 마음이 들면서부터는 바꿔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도 이런 뒷북들이 후회되지는 않았다. 결국에는 바랬던 대로 어느 정도 이뤄냈고 잠시 늦어지는 것일 뿐 발전적인 쪽으로 잘 가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잔잔바리 뒷북들이 다 모여서 이렇게 대왕 뒷북을 치는 나를 만든 것일까. 취업마저도 너무나 늦어져버렸고 과연 이것이 잘하고 있는 것인지도 의심스러웠다. 어릴 때 사춘기 한 번 없이 지나 부모님 속을 크게 썩여본 적도 없었는데 이젠 불효도 뒷북으로 치고 있는 극강의 컨셉러가 따로 없었다.






이런 나 자신을 사랑하기란 어려웠다. 그때의 나는 자기혐오와 자기 연민으로 얼룩져 괜찮은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몇 년간 똑같이 반복된 수험생활은 정신도 나약하게 만들었다. 잠들기 전 누워있을 때 천장을 보면서 매일 이렇게 생각했다. ‘내일 아침 눈 뜨기 정말 싫다…’ 이대로 깨어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편할 것 같았다. 아니 죽을 용기는 없으니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증발해 버리는 게 남은 가족들을 위해서도 좋은 방법이겠다 싶은, 해서는 안될 생각들도 이어 해 나갔다. 그렇게 위태한 순간 그래도 이런 나를 버티게 해 준 존재가 강아지였다.


나는 원래 모든 동물을 겁내했고 아무리 귀여운 동물이래도 살짝 만지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그냥 사람은 사람이고 동물은 동물이라는 무미건조한 정의 정도만 가지고 있었다. 반대로 내 동생은 어릴 때부터 동물을 너무 사랑했다. 강아지를 키우는 게 평생의 소원이었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포기를 못하니 가족들이 두 손 두 발 다 들고 들어주기로 하게 되면서 식구가 하나 더 늘게 되었다. 그 조그마한 털뭉치가 가져다주는 변화는 결코 자그맣지 않았다. 뽈뽈거리고 집 안을 휘젓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하루 순삭이었고 그 아이 하나로 인해 가족끼리 대화는 더 풍성해졌다. 똥도 귀엽다는 말이 온전히 납득이 갔다. 그렇게 강아지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우리는 둘째를 들이게 되었고 결국에는 강아지 셋과 함께하는 삶이 되어버렸다.






수험기간 동안 다양한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쌓고 누군가의 경조사를 챙기는 등의 이런 사회적 동물로서의 해야 할 일들은 거의 못했지만 그 대신 얻은 것이 있다면 털친구들과의 추억이었다. 흔한 멘트 중에 하나인 ‘시간 되면 밥이나 먹으러 와.‘ 조차 안 오는 것이 수험생이었다.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지기도 해서 애매한 사이가 된 데다가 청첩장까지 주기에는 나한테 미안했던 걸까. 줄 필요가 없는 사이와 미안함 중 어느 쪽이 더 큰 건지 생각해 보다가도 아무 의미 없는 고민이다 싶었다. 이 모습으로 결혼식을 참석할 것도 아니고 안 간다고 해도 계좌로 보낼 마음의 머니도 없기 때문에 뭐가 됐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프로필 사진으로 결혼 소식을 알게 되어도 먼저 연락하는 일 또한 하지 못했다. 그렇게 안으로 안으로만 들어갈 때 내 옆에 항상 있어준 강아지들이 내겐 더더욱 소중해졌다.


이렇게 무리에서 점점 뒤처지는 기분이 들 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치렀던 시험에서 또 떨어졌을 때 모든 순간에 아이들은 곁에 있었다. 격려하지도 않고 타이르지도 않고 평가하지도 않고 그냥 있어주는 것이다. 그냥. 부들부들한 털을 쓰다듬고 있으면 안정이 되었고 끌어안고 온기를 나누면 무언가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그냥 동물이 아니게 된 것이다. 나 자신이 너무 싫은 날에도 오로지 나만 바라보는 이유 없는 눈빛에 눈물이 왈칵 쏟아진 적도 있었다. 강아지에게 주인은 온 우주라던데 이렇게 작고 소중한 내 강아지의 우주가 너무 형편없는 것 같아서, 지금의 초라한 나보다도 이런 나를 우주라 믿는 그 맑은 눈이 너무 가엾어서. 마음이 아팠다. 좀 더 근사한 우주가 되어주고 싶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최종 데뷔조에서 탈락하셨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