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
‘누구세요?’
현관너머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레.. 대답했다.
“저에요..”
문을 빠끔히 연 그는 잠시 나를 훑어보더니 이내 환하게 미소 지었다.
“너구나.. 넌 굳이 문을 두들기지 않아도 됐는데 허허..”
언제나 그랬듯, 그는 벗겨진 머리를 한 손으로 훑어 넘기며 대답했다. 참을 수 없는 가식에 속에서 욕지기가 올라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것이 내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그래 나다. 성냥팔이 소녀.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쫓기듯 서울로 올라왔다. 아버지의 지긋지긋한 폭력과 끔찍한 가난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인력사무소를 통해 꾸역꾸역 처음 소개받은 곳이 바로 이 성냥 가게였다. 언젠가 열심히 하다보면 노력이 인정받겠지 생각하며 동상에도 아랑곳 않고 성냥을 팔았다. 그리고 한 달이 흘러 월급을 받던 날.
“어디보자. 고생했어. 시급이 6030원인데 지금은 수습기간이니깐 2000원 빼고.. 그런데 재고가 좀 비네? 나머지는 차감하면.. 여기 월급 28만 3천원.”
방값이 20만원이었다. 한 달을 죽어라 노력한 게 고작 8만원 이라니. 울고 싶었다. 눈물을 꾹 참고 물었다.
“저 사장님.. 저 동상 치료비라도..어떻게 안 될까요?”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에이. 원래 알바는 산재 적용 안 돼.”
첫 월급으로 산건 구제 파카였다. 그걸 둘러메고 다시금 성냥을 팔았다. 4차선 왕복도로 새벽 두 시. 숱한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역시나 성냥을 사가는 손님은 없었다.
다시금 월급으로 성냥 값을 메울 각오를 하며 하나 둘 성냥을 태워나갔다. 그때 그 천사가 나타났다.
“왜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나와 함께 갑시다. 더 좋은 조건에서 본인의 기량을 뽐내보는 겁니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 지긋지긋한 지옥에서 나를 꺼내줄 구세주였다. 그러나 너무 추워서였을까? 그때는 몰랐다. 눈처럼 흰 양복을 입은 그의 뒷모습은 새까맸다는 것을.
“자.. 네 일은 그냥 여기 앉아서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된단다. 더우니 이 낡은 파카는 벗고.. 청바지보단 여기 반바지가 더 어울리네. 이 블라우스를 입어볼래? 이게 서울에서 유행한다는 시스루란다.”
돈은 훨씬 많았다. 기뻤다. 하지만 점차 그들의 요구는 강해졌다. 어느 기업의 회장님이라는 사람은
“네 키스 때문에 두 번했다”며 팁을 던졌다.
유명한 기자라는 할아버지는 자기와 함께 크루즈 여행을 떠나자고 꼬드겼다. 내가 생각했던 행복한 삶은 이게 아니었다. 난 그저 내 힘으로 번 돈으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싶을 따름이었다.
어느 날 아주 높으신 검사님들이 모인 방에 들어갔을 때, 그 악마같은 양복쟁이들에게 머리채를 휘어 잡힌 채 끔찍한 꼴을 당한 날 밤.. 나는 그 소굴을 나왔다.
눈이 펑펑 내리는 오늘 밤. 아무래도 갈 데가 없었다. 1년간 몇 천 만원에 다다라는 돈을 벌었지만 화장품과 옷값으로 다 써버렸다.
내가 원한 게 아니었다. 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다시금 그때 산 두터운 파카를 둘러메고 거리를 헤맸다. 새벽 내내 거리를 쏘다니다 결국 다시금 가게의 대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나를 반기던 사장은 이내 계산기를 들고 와 내게 말했다.
“어디보자... 경력이 단절됐으니깐 다시 수습부터 시작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소녀의 품삯과 몸값이 정확히 반비례하는 곳. 여기는 안데르센의 고향 덴마크보다 훨씬 춥고도 냉혹한 대한민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