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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닭비둘 Sep 19. 2023

“할머니가 돌아가셨단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단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조퇴를 한 초등학생은 생전 처음 혼자 마을버스를 타고 병원에 내렸다.


특실 2호. 

몇 개의 화환 너머로 할머니가 있었다. 


내게 박하사탕을 쥐어주던 며칠 전처럼, 허리춤에서 꼬깃꼬깃 접힌 만 원 짜리 한 장을 꺼내 엄마 몰래 주머니에 넣어주던 그 때처럼, 할머니는 환하게 웃고 계셨다. 


영원히 웃고 있는 할머니의 사진 양 옆으론 흰색 꽃이 가득했다.


엄마는 흰 한복을 입었고 아빠는 검은 양복을 입었다. 


엄마는 앉아있었고 아빠는 서있었다. 


엄마는 울고 있었지만 노란색 띠를 찬 아빠는 울지 않았다. 

영화 '봄날' 중 한 장면

사람들은 끊임없이 몰려왔다. 아버지는 그들과 하나하나 안부를 물으며 맞절을 했다. 악수와 함께 미소도 잃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죽으면 밥도 안 먹고 많이 울 것 같은데...’ 


초등학생은 아빠가 미웠다. 슬퍼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읽었던 동화책이 생각났다. 뭐든지 엄마 말에 반대로 하던 청개구리도 엄마가 돌아가신 후엔 무덤이 떠내려 갈까봐 개굴개굴 울었다고 했다. 


개구리보다 못한 아버지가 많이 미웠다. 아빠를 미워한 초등학생은 가방 속 장난감을 만지작대다 잠이 들었다. 


새벽녘 찬 기운에 눈을 떴다. 술병이 만개하던 식당은 정돈됐고, 사람들이 북적대던 장례식장은 모두 불이 꺼졌다. 엄마도, 고모도 한쪽 귀퉁이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불 꺼진 식당 한 귀퉁이엔 육개장과 소주를 앞에 둔 아빠가 앉아있었다.


밥상을 앞에 둔 채, 그는 그릇을 긁다가 두어 번 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제야, 그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모두가 떠나고 잠든 밤이었다. 


하지만 흐느낌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빠는 우리가 잠든 쪽을 잠시 쳐다보더니, 자리를 떴다. 입도 대지 않은 육개장을 둔 채, 아빠는 한참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30분쯤 지났을까. 눈이 벌개 진 아빠가 돌아왔다. 그리곤 자리에 앉아서 후루룩 후루룩 다 식어버린 육개장을 들이켰다. 


설거지통에 그릇을 둔 아빠는 벽에 기대 쪽잠을 취했다.


이십년이 흘러서야 일곱 살의 나이로는 납득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행동들이 이해됐다. 


가장이기 때문에 쉽게 울 수 없었고, 상주기 때문에 악수를 하며 웃어야 했다. 그리고 아버지기 때문에 식어버린 육개장을 들이켜야 했다. 


곤히 잠든 식구들과 함께 할 내일을 위해서, 그는 어머니를 향한 애끓는 사모의 정을 삼켜낼 수밖에 없었다.


욕망보다 책임이 많아질 때.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이 많아질 때. 사람들은 그 때를 ‘어른’이라 부른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눌린 짐과 고통을 속으로 삭힌 채, 꾸역꾸역 밥알을 삼키며 내일을 꿈꾸는 이 세상 모든 어른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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