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닭비둘 Sep 19. 2023

좆됐다.

헐! 나는 좆됐다. 이것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내 인생 최고의 하루가 될 줄 알았던 날이 겨우 여섯 시간 만에 악몽으로 바뀌어버렸다. 


아무래도 정말 좆됐다. 


여기는 일본 규수 구마모토현 21국도. 나는 지상으로부터 15m 아래에 갇혀버렸다.     


일주일 전 오늘이었다. 방은 완벽한 백색이었다. 가운데 놓인 의자에 앉아서 대기했다. 손에 땀이 났다. 긴장해서다. 문이 열렸다.


 “안녕하십니까. 지원자 OOO입니다.” 


인류에 대한 사명과 내 초능력에 대해 혼신을 다해 설명했다.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던 면접관은 입을 뗐다.


 “누구한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에요. 돈보다는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영웅들에게 많이 배우길 바라요. 월요일부터 출근하는 거로 하죠.”     


어벤저스와 함께 일한다니! 호크아이, 블랙위도우, 헐크... 어릴 적부터 그들은 내 우상이었다. 고작 손에서 불을 피워내는 초라한 초능력이지만 평생 열심히 갈고 닦았다. 그러나 언제나 공채에선 낙방했다. 


쉴드 평균 경쟁률은 1000대 1. 문은 좁고 초능력자는 많았다. 그러던 와중에 발견한 게 이 공고였다. 『파견직 히어로 모집』 그래. 시작이 반이다. 열심히 하다보면 내 능력을 인정받겠지.     


오늘 아침 첫 출근과 함께, 출입증을 받았다. 쉴드의 로고가 박혀있지 않았다. 출입구에 찍어봤다. 안 먹힌다. 아, 아직 전산처리가 안됐나? 


어색하게 문 옆에 서 있는데 선글라스를 끼고 디젤 청바지를 입은 남자가 들어온다. 카드키를 찍는다. 내게 방긋 웃어 보인다.


토니 스타크다! 내게 웃었다. 


아이언 맨이 내게 웃었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내게 안내데스크에 있던 security가 다가왔다. 


“파견사원이시죠?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연수도 없고, 신고식도 없었다. 곧바로 현장에 투입됐다. 


이미 일본은 아수라장이었다. 건물은 앙상한 뼈대만 남았고, 집을 잃은 아이들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우리는 그들을 도와야 했다. 모두의 임무는 동일했다. 현장 지휘관인 캡틴아메리카와 함께 2차 사고를 막는 게 우리 역할이었다. 

내게도 신입사원들처럼 유니폼이 주어졌다면 참 좋았을 텐데. 뭐 그것만 빼면 견딜 만하다. 


사고는 그때 일어났다. 순식간이었다. 도로의 지반이 흔들리며 우리는 그대로 지하로 떨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누군가 말했다.


“이 비상용 양자전송장치를 쓰자. 우리를 회사로 옮겨 줄 거야!” 


희망이 보였다. 기계를 눌렀다. 


이윽고 뜨는 메시지. ‘사번을 입력해주세요.’ 


젠장, 나는 사번이 없다.  

   

두 명의 정규직 사원이 회사로 전송된 후, 우리는 하염없이 기다렸다. 


갈라진 틈 사이로 누군가 다가온다. 캡틴! 캡틴이다. 역시 우리를 져버리지 않았어! 그런데 왜 유니폼을 입지 않고 있지? 


틈 사이로 고개를 들이민 캡틴은 우리에게 소리쳤다.


 “제군들! 제군들의 자질이 부족한 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네. 그런데 알겠지만 회사 경영여건상,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자네들의 꿈을 응원해! 언제든 조언이 필요하면 연락하게!”


 일단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물었다.


 “혹시 저희를 꺼내주실 수 없습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답했다. 


“미안하네. 지금 일본은 휴일이야. 특근신청이 되지 않아서 나도 산재적용을 받지 못한다네. 하지만 자네들은 젊잖나! 용기와 패기로 똘똘 뭉친 그대들을 응원하네!”     


나는 좆됐다. 


진심, 

아무래도 좆됐다. 

작가의 이전글 내 손바닥은 터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