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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ma May 18. 2023

[엄마, 안녕] 9. 엄마의 얼굴은 말갛기만 했다. 2

2. 죽는 건 하나도 안 무서워.


호흡기내과 예약은 월요일 오전 10시 30분이었다. 지방에서 일하고 있는 오빠가 자신이 모시고 가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꼭 버스 말고 택시 타고 가라고 나한테 신신당부를 했었다.

"돈 아깝게 무슨 택시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엄마는 순순히 택시에 올랐다. 그렇게 엄마와 난 처음으로 병원을 가기 위해 택시를 탔었다. 멀리 살고 있는 언니도 다시 휴무를 내고 병원으로 왔었다.


엄마와 내가 먼저 도착해서 접수를 했다. 간호사는 CT 사진을 보더니, 처음 예약한 의사 말고 부교수급의 다른 의사로 변경해 줬다. 그것이 다행이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었다. 더 연차가 있는 의사가 봐야 할 만큼 중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간호사가 X-ray 검사를 먼저 하고 오라고 해서, 검사실로 가서 한참 기다리다가 검사를 하려는데, 언니가 도착했다고 톡으로 연락을 했다. 난 언니한테 지금 상황을 전달하고 호흡기내과에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언니는 이것저것 톡으로 물어봤다. 대답을 해줘도 되지만, 순간 짜증이 났었다. 그냥 조금 기다리지. 나도 엄마 챙기느라 마음이 바쁜데...... 심호흡을 한번 하고 호흡기내과에서 기다리라고 다시 톡을 했다. 검사하고 호흡기 내과에 가니 막상 언니는 없었다. 도대체 어디를 갔는지,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니한테 전화를 해서 진료실 앞으로 오라했고, 얼마 안 있어 언니도 왔다. 난 언니를 보자마자,

“내가 언니까지 챙겨야 해?”

기어이 낮은 소리로 짜증을 내고 말았다. 바로 후회를 했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었다. 진료실 앞은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빈자리가 없었다. 엄마랑 같이 서 있다가 얼마 후, 빈자리 2개가 생겼다. 엄마를 앉게 하고, 언니한테 농담으로

“언니는 서 있어.”

말하고 나는 앉았는데, 언니는

“앉을 생각도 없었어.”

서운해했다. 언니가 앉지 않을 것을 알아서 했던 농담이지만, 이미 나한테 서운한 마음이 든 언니가 내 말을 농담으로 받을 리 없었고, 나 또한 예민하고 날이 서 있어서 농담이 농담처럼 나오지도 않았다. 농담도 하지 말 걸. 후회를 했지만, 그뿐, 나는 가만 앉아 있었고, 그 모습을 보던 엄마는 다른 자리가 나자 언니와 함께 다른 자리로 옮겨 앉았다. 나에게도 오라고 했지만, 무슨 고집에서인지 나는 그 자리에 그냥 앉아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의사를 보러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폐에 없어야 할 덩어리가 있고 기관지에도 뭐가 있다면서 조직검사를 위해 입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2박 3일의 일정이었다. 예상 못했던 일이었다. 

소화기 내과 의사가 암일 가능성을 말했지만, 믿지 않았고, 그에 대해 어떤 대비책도 세워두지 않아서 닥치는 모든 상황이 급작스럽기만 했었다. 간호사는 환자 혼자 입원도 가능하고 보호자도 함께 있을 수 있다며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그러나 그것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엄마를 혼자 입원시킨다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았고, 일정을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으니까. 급하게 내 일정을 조율하고 입원 예약을 하고 코로나 검사도 하고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엄마, 언니와 함께 엄마가 좋아하는 짜장면을 먹으러 갔다. 이미 배도 아프고 소화가 잘 안 돼서 먹고 싶은 것도 참고 잘 먹지 않던 엄마는 짜장면을 한 그릇 다 드셨었다. 오랜만에 엄마가 잘 드시는 것을 보니 생각 없이 그저 좋았었다. 언니는 속상하다면서 맥주를 시켜서 나와 나눠 마셨고, 엄마는 언니와 내가 맥주를 마시는 것을 그저 지켜봤었다. 그리고 엄마와 난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고, 언니는 지하철을 타고 다시 먼 길을 갔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몹쓸 병에 걸린 건지.”   

울면서 말했다. 그런 엄마를 보자마자 답답한 마음에 짜증이 났다. 위로를 해야 하는데, 위로가 나오지 않았다.

"아픈 게 무슨 죄를 지어서야. 그냥 아프게 된 거지.”    

언니와 함께 있을 때는 씩씩한 듯 잘 견디던 엄마는 내가 잠시 산책을 한다고 혼자 뒀더니 온갖 생각이 다 들었던 모양이었다.

"너한테 미안해서 어쩌냐? 괜히 아파서 너 일도 못하게 하고."     

“괜찮아."  

이 상황에 내 일 걱정이라니. 산책하면서 가슴이 턱턱 막혀 가슴을 치며 울다왔는데, 엄마가 하는 말을 듣자, 다시 가슴이 답답해졌었다. 엄마한테 잘해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혼자 있고 싶어졌다. 난 내 방으로 갔고, 얼마 후 이모한테 전화가 와서 엄마는 병원에 다녀온 일을 이야기하면서 울먹였었다.

  

“나 죽는 건 하나도 안 무서워. 괜히 쓸데없이 애들한테 짐 되고, 돈 까먹는 게 짜증이 나지.”     



‘거짓말. 죽는 게 왜 안 무서워. 무섭지. 죽는 것도 무섭고, 돈 까먹는 것도 짜증 나고, 미안하겠지.’     


누구보다 엄마가 울고 싶었을 것이다. 답답했을 것이다. 무서웠을 것이다. 그러나 난 끝내 엄마를 위로하지 못했다.  


저녁에 병원에 갈 짐을 챙겼다. 해외여행 가려고 새로 샀던 캐리어에다가.  

"엄마, 캐리어에다가 짐 싸려고."

엄마가 필요한 물품은 많이 없었다. 엄마는 평소에 쓰던 작은 가방에 속옷 여벌과 화장품, 빗, 거울, 칫솔, 손수건을 챙겼다. 가방이 엄마 표현대로 '아주 깡똥'했다. 그에 반해 보호자인 난 덮을 담요, 입을 옷, 수건, 숟가락, 간단하게 먹을 것 등이 필요했고, 그것들을 넣자 가방은 가득 찼었다.

"캐리어 괜찮은데?"

난 잠시 방에서 캐리어를 끌어보며 엄마한테 말했다.

"그렇게 담으니 좋네. 잘 샀네"

낮에 속상해하던 엄마도 말했다. 엄마와 나는 씁쓸하지만 웃으면서 말했다. 그것이 그날 있었던, 그나마 편안한 일상의 대화였었다. 

 



입원하기 전 비뇨의학과 진료를 보러 갔다. 소변 검사를 위해 진료 시간보다 1시간 먼저 갔었다. 소변 검사를 하고 엄마는 마지막 남은 항생제를 먹기 위해 크림빵을 사서 먹었다. 엄마는 일주일 동안 처방받은 항생제를 아주 열심히 먹었지만 아랫배는 여전히 아팠다. 비뇨의학과 의사한테 여전히 배가 아프다고 했더니,

“소변검사에서 균은 발견되지 않았어. 깨끗해.”

라고 했다. 난

“근데 어머니가 여전히 배가 아프시대요. 어제 짜장면을 먹고는 더 아파지셨대요.”

의사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는 듯,

“소화기내과로 가봐.”

“소화기내과에서 여기로 전과해주신 거잖아요.”

비뇨의학과 의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진료실을 떠나며 말했다.

“오늘 입원하잖아? 호흡기내과에서 CT 찍을 때 배도 찍겠다고 해보던가. 일주일 새에 변화는 없겠지만.”

“어머니가 여전히 배가 아프시대요!!”

진료실을 떠나는 의사한테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더 이상 상대하지 않겠다는 듯 의사는 가 버렸다. 일주일 전,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던 비뇨의학과 의사는 그렇게 가버렸다. 엄마와 난 버려진 느낌을 받았었다. 간호사한테 물어보니, 병원에서 다 알아서 처리한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알아서 다 처리하니 잠자코 따라만 가라는 건가? 하는 생각에 너무 화가 났지만, 비뇨의학과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그때 엄마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요관을 가로막던 뭔가도 암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입원을 했다.

병실에는 4개의 침대가 있었고, 창가에 하나, 문 앞에 하나가 비어 있었다. 엄마는 병실에 들어가자마자 창가의 침대로 가서 앉았다. 난 어느 침대가 엄마를 위해 준비해 준 것인지 몰라서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간호사스테이션으로 가서 물어보니 그제야 언제 왔냐고 하면서 창가에 준비되어 있지 않냐고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듯이 말했었다. 그 침대에는 엄마의 신상정보도 아무것도 없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병실에 들어올 때 분명히 엄마가 왔음을 알렸는데도 담당간호사는 몰랐던 모양이었다. 비뇨의학과 의사에 이어 간호사들도 별로라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엄마는 창가에 배정이 돼서 좋다고 했었다. 창밖으로는 나무들이 보였고 저 멀리 산도 보였고, 새로 지은 높은 건물들도 즐비했다. 이미 단풍잎이 떨어진 앙상한 나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창 밖을 보니, 숨통이 트이는 거 같았다.


나머지 두 개의 침대 중 하나는 거의 의식 없이 누워 있는 할머니와 간병인 한 분이 있었다. 입원하는 동안 할머니 의식이 돌아온 것을  본 적은 없었고, 간혹 할머니가 기저귀에 똥을 싼 것을 두고 어린 간호사가 나이 든 간병인한테 기저귀를 잘 채웠어야 하지 않느냐, 기저귀 체크를 왜 하지 않았느냐 하며 혼내는 것을 보기는 했었다. 또 간병인은 주말에 외출해야 할 일이 있다며 보호자에게 전화를 했고, 보호자는 다른 간병인을 찾아보겠지만, 가능하면 있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간병인이 하는 일은 거의 없어 보였지만, 보호자들이 그나마도 있기를 바라는 것이 이해도 되었고, 또 씁쓸하기도 했었다.

엄마의 침대 바로 옆 침대에는 역시 내내 잠만 주무시다가 식사시간이 되면 깨서 간병하는 딸한테 한 시간가량 '시발년'을 연발하는 할머니가 누워 계셨었다. 간병하는 딸은 자신의 어머니 침대 커튼에 '커튼을 함부로 열지 말라'는 내용의 메모를 영어로 써서 커튼에 붙여 놓았었고 틈새에는 테이프까지 붙여 놓았었다. 간병하는 딸은 다른 사람과 통화를 자주 했었고, 그 통화내용은 다 들리고 말았었다. 그래서 간병하는 딸이 유학을 다녀왔고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며, 병원에 컴플레인을 하겠다는 내용을 알게 되었었다. 테이프가 떨어지면 다시 붙이면서  "우리 엄마는 면역력이 약해서 병균 옮으면 안 돼요"라고 말했었다. 엄마와 나를 병균으로 생각하는 거 같아서 기분이 나빴지만, 상대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옆 침대의 간병하는 딸은 밤 12시가 넘었는데도 계속 통화를 하면서 엄마가 있는 침대가 며칠 전 전염병이 있는 환자가 있던 곳이고 그곳에 소독도 하지 않고 다른 환자를 받았다며 우리 들으라는 듯이 말을 했었다. 난

"듣고야 말았어."

라고 말하며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갔고, 물어봤다. 당연히 간호사 측은 소독을 했고, 그 옆 침대 보호자가 지금 엄마가 쓰고 있는 침대까지 침범해서 사용하기도 했으며, 간호사와도 실랑이가 었다고 말을 했다. 나는 찜찜했지만, 다른 방도를 찾지 못해서 다시 와서 엄마한테 소독했다는 말을 전했다. 그 여자는 이후로도 한 시간 이상을 통화했었다. 엄마도 나도 찜찜하고 불편한 밤을 보냈고, 거의 잠을 자지 못했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간병하는 딸이 너무 유난스럽고 까탈스럽고 불쾌함을 줬지만, 그녀는 '시발년' 소리를 들으면서도 자신의 어머니를 살뜰히 보살폈었구나. 나 역시 엄마를 그렇게 돌봤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을 뿐이었다.


엄마는 누워 있는 할머니들을 보며,

"난 저렇게 살고 싶지 않아."

라고 했었다. 엄마는 전에도 치매를 제일 무서워했었다.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사람들한테 민폐만 끼치며 살고 싶지 않다고 했었다. 나도 그렇게 누워 계시는 할머니들을 보며, 인간의 마지막이 참 슬프고 씁쓸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할머니들은 자신들이 그런 상태로 있는 것을 알면 어떨까.

나 역시 저렇게 누워 있는 할머니를 보니, 죽는 것보다 산다는 게 더 무섭게 느껴졌었다.


어쨌든 그날 그곳에서는 엄마가 가장 멀쩡해 보였다.


입원한 첫날의 밤이 유독 길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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