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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ma May 15. 2023

[엄마, 안녕] 8. 엄마의 얼굴은 말갛기만 했다

1. 다시 고쳐 쓰고 싶은 순간이 있다.

한 달 전부터 눈이 아팠다. 충혈되고, 시리고, 베이듯 통증이 있고, 이물감도 있고.

동네에 안과가 한 곳 있지만, 그곳 선생님은 무뚝뚝하고 자꾸 혼을 내서 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통증이 심해져서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 안과를 예약했었다.

그 대학병원에서 엄마는 암 진단을 받았었다.

한참 망설이다 안과 예약을 했는데, 막상 그 대학병원으로 가는 길은 마음이 더 복잡하기만 했다.

     

병원 근처에 이르자, 노모를 모시고 가는 여자가 보였다. 노모는 키가 작아졌고, 등은 굽어 있었다. 여자는 옆에서 걷고 있지만, 팔짱을 낀다거나 노모를 부축하는 행동은 없었다. 그저 옆에서 걷고 있었다.

6개월 전 나처럼.

아니다.

난 옆에서 같이 걷지도 않았었다. 몇 발자국 앞에서 걷다가 뒤돌아보고는 했었다. 늘 엄마의 걸음에 보조를 맞추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엄마가 조직검사를 위해 입원을 했을 때 처음 엄마 옆에서 같이 걸었었다. 엄마의 키가 더 작아져 있었다. 엄마의 어깨를 감싸 안아도 전혀 팔에 무리가 가지 않을 만큼 작아져 있어서 난 마음이 더 아렸었다.

엄마가 작아진 걸 처음 느낀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새벽에 일 가시는 엄마를 배웅하는데, 엄마의 눈높이가 나보다 아래에 있었다. 그때 난 잠시 멈칫했다가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고, 엄마는 밥 잘 챙겨 먹으라고, 어서 들어가라고 말하고는 뒤돌아서서 계단을 내려갔었다. 그리고 점점 더 멀어져 가면서 엄마는 더 작아져 갔었다. 엄마가 나보다 작아졌다는 것에 놀라마음도 무거워져서 엄마한테서 쉽게 눈을 떼지 못했었다.     



키 작은 노모를 모시고 가는 여자 뒤에서, 난 혼자 걸어서 병원으로 갔다.   


   




살면서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 다시 고쳐 쓰고 싶은 순간이 있다. 나에게는 작년 10, 11, 12월이 그랬었다. 무지하고 무식하고 무능했던 시간들이었다.    


 

작년 10월 엄마는 오른쪽 옆구리가 결린 것 같다고 했었다. 그래서 파스를 붙였지만 쉬이 낫지 않아서, 동네 내과의원에 가서 근육 이완제를 처방받아서 먹었었다. 약을 먹어도 좋아지진 않았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왼쪽 옆구리도 아프다고 했다.

엄마는

"암인가?"

하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난 덜컥 겁이 났고,

"암 아니야! 암은 안 아프대."

괜히 성질을 냈다.  


엄마가 아시는 분 중에 췌장암을 앓다가 돌아가신 분이 있었고, 그분은 말기가 다되도록 암인 줄 몰랐다고 했었다. 췌장암은 발견이 늦고, 이미 발견했을 때는 말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들어서 엄마는 췌장암을 가장 무서운 암으로 알고 있었고, 자신이 췌장암일까 걱정인 거 같았다. 나도 췌장을 찾아봤지만, 내가 아무리 검색을 해도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자 엄마는 온 배가 다 아프고 특히 배꼽 부위가 아프다고 해서 동네 병원에 엄마와 함께 갔다. 몇 걸음 뒤따라 오던 엄마는

“유니가 꼭 엄마 같아.”

라고 말했었다. 혈압 당뇨처럼 엄마가 정기적으로 가는 거 말고, 특이하게 아플 때는 내가 병원에 데리고 다니니 엄마가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 같았다. 어릴 때는 엄마가 나를 데리고 병원에 다녔었는데, 어느새 엄마와 나의 관계는 그렇게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내가 엄마의 보호자였다.

의사는 배꼽 주위를 눌러보고, 눌렀다가 떼보기도 하면서 엄마한테 아픈지 물었다. 엄마는 조금 아픈데, 많이 아픈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의사는 배꼽이 소장이 있는 위치라고 했고, 위장약을 처방했었다. 난 또 그제야 소장을 검색해 봤다. 하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엄마는 열심히 약을 드셨다. 하지만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았고, 다시 배꼽 아래가 아프다고 했다.     

“나 죽을 라나 봐.”

"죽긴 왜 죽어. 치료하면 되지.”     

난 엄마의 말에 사납게 대꾸했었다. 엄마는 자꾸 여기저기가 아프니, 무서운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았고, 나 역시 죽음이라는 것이 막연하지만 무섭게 느껴졌기 때문에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에 그렇게 말이 나왔던 거 같다. 그리고 엄마가 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었다. 엄마는 술 담배도 안 하고 집안에 암 내력도 없었으니까. 다만, 고혈압과 당뇨 고지혈증이 있어서 심뇌혈관 질환을 걱정했었다.

하지만 여기저기 너무 아프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었다. 그제야.

도대체 어디가 잘못된 걸까.....

검사라도 해봐서 상태를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고, 종합병원의 소화기내과에 예약을 했었다. 그리고 복부 CT를 찍었다.       



   

"어머니가 문제가 많네."

소화기내과 의사의 첫마디였다.

그 말에 엄마와 나 그리고 언니는 덜컥 겁이 났었다.

"소화기는 문제가 없는데, 여기 이게, 폐 아래가 찍힌 거거든? 이게 종양 같아."

의사는 CT 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우리는 봐도 모르지만, 열심히 들여다봤다. 그리고는 몇 년 전 의사한테 들었던 얘기를 전하면서 의사의 소견을 부정했다.

"어머니가 전에 건설 현장에서 오래 일하셔서 폐에 석회가 있다고 했었어요."     


암일 리가 없다고. 난 의사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건 어떤 의사가 봐도 종양이야."

의사는 확언했다. 그리고 요관을 뭔가가 막고 있어서 아랫배가 아픈 거라고, 호흡기내과와 비뇨의학과에 전과시켜주겠다고 했다.

우린 너무 당황하고 놀랐다. 다행히도 그날 바로 비뇨의학과 진료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언니는 엄마를 모시고 비뇨의학과로 바로 올라가고 난 호흡기내과 예약을 진행했다. 호흡기내과는 일주일 후에나 진료가 가능하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일주일 후로 예약하고 나도 비뇨의학과로 갔다. 비뇨의학과 의사는 CT 사진을 보면서,

“염증이 있으니, 항생제를 일주일 먹어보죠.”

우리는 소화기내과에서 암이라고 듣고 너무 놀라서 왔는데, 비뇨의학과 의사의 말에 혼란스럽기도 하고 안심도 됐었다.

“항생제만 먹으면 돼요?”

엄마는 반기면서 말했다. 나도 반갑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암이라고 하시던데요?”

“항생제 먹어보고 1주일 후에 다시 소변 검사 하고 지요.”

너무 놀라고 겁을 먹었던 엄마도 안심하는 눈치였다. 엄마는 의사한테 거듭 감사하다고 했었다. 그리고 난 진료실을 나오기 전 다시 물었다.

“항생제를 먹고도 안 나으면 시술이나 그런 거를 해야 하나요?”

의사는 다시 사진을 보면서 말했다.

“시술 같은 거 안 해도 돼.”

엄마와 나, 그리고 언니는 암이 아니라는 말로 이해를 했었다.

“쓸데없이 돈 까먹을까 봐 짜증 났었는데, 다행이다.”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일주일간 열심히 항생제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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