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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ma Jul 04. 2023

[엄마, 안녕] 17. 항암화학요법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중환자실을 나온 엄마는 평온해 보였다.


글의 첫 시작을 이렇게 하려고 했었다.

고작 6개월이 조금 더 지났지만, 기억은 왜곡을 시작한 모양이다.

중환자실에서 나오고 며칠 후, 엄마는 아주 오랜만에 통증 없이 곤히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그 고요가, 그 평온함이 날 안심시켰던 거 같다. 그 사진이 각인되어, 중환자실에서 나오자마자 엄마가 평온했던 것으로 착각을 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 시간으로 되돌리고 싶은 깊은 후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병상일지를 다시 보니,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나오고 나서도 아주 힘들어했었다.

열과 오한으로 밤새 뒤척였고, 기침 때문에 잠 못 이루기도 했었고, 구토와 설사도 있었다.  구토 색깔은 짙은 녹색으로 변했다.

물론 투석으로 크레아티닌 수치는 좋아지고, 지속적인 마약성 진통제로 통증도 덜한 듯했다. 혼자 움직이기도 힘들었던 엄마는 혼자 일어나지는 못해도 스스로 누울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스스로 양치도 하고, 혼자 화장실도 갔다. 그리고 머리도 감고 싶다고 했었다. 난 엄마의 머리를 감겨 드렸었다. 그리고 환의를 갈아입자, 엄마는 개운하다고 말했었다.

너무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엄마가 스스로를 챙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 변화가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아마도 내 기억 속에 '평온'이라는 단어가 자리를 잡았던 가 보다.






중환자실에서 나오고 주말을 보낸 후, 월요일 오전에 심장부하검사를 진행했다.

중환자실에 있을 때 전공의가 엄마한테 심근경색의 위험이 있다고 전화로 검사 동의를 구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월요일 낮에 담당주치의가 와서

'원래도 엄마의 신장이 안 좋았지만 암이 요관을 막아서 또 안 좋아졌던 거 같다'

고 했다.

PCN시술을 할 때도, 중환자실에 들어갈 때도 듣지 못했던 설명을 그제야 들었다.

난 엄마의 구토에 대해 호소했다. 녹색으로 변했고, 뭐만 먹으면 구토를 하고 특히 약을 먹으면 구토를 한다고 말했지만, 주치의는 엄마의 구토에 관심이 없는 거 같았다. 주치의는 신장이 안 좋아서 구토가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 신장 때문에 구토가 나올 수 있구나.


의사가 그렇다니,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엄마의 구토가 걱정되었다.

며칠 전, 중환자실에서 전공의가 CT상 담관이 부었다고 MRI를 찍어보자던 것은 어떻게 되었냐고 주치의한테 물어봤는데, MRI는 취소되었단다. 전공의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고, 취소된 이유는 누구도 설명하지 않았다.

주치의는 오전에 검사한 심장부하검사 소견과 신장내과 선생님의 신장에 대한 의견을 확인한 후, 상태에 따라서 항암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용량은 몸 상태에 따라서 정할 것이고, 항암은 외래로 진행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8시 20분경 주치의가 왔다. 늘 언제 올지 몰랐고, 안 올 때도 많았는데, 그날은 일찍 와서 놀랐었다. 더구나 전공의 한 명과 인턴 한 명을 대동하고 왔었다.

그리고는 항암치료에 대한 설명을 했다.


'신장이 원래 안 좋았고, 암이 요관을 막고 있었던 것도 맞다. 신장기능이 40%는 돼야 항암을 할 수 있는데, 엄마는 20% 이하다. 그래서 항암을 한다면 아주 적은 양으로 진행해야 하고, 입원을 한 상태로 항암을 진행하고 전원까지도 고려하고 있다.

가던트 검사에서 유의미한 유전자 변이가 발견되지 않았고, PD-L1도 0%라 면역항암과 독성항암을 같이 해야 한다. 항암을 하면 1주일간 환자가 고통스러워하고 심장과 신장 기능은 더 나빠질 것이다.

그럼에도 공격적으로 항암을 진행할지 아니면 지금처럼 영양주사 맞고 통증을 조절하는 것도 방법이다.

가족들과 상의를 해봐라.'



신장 기능이 안 좋은 데도 공격적으로 치료를 시도할 거면 가족들과 상의를 해보라고 하는 것이 의사들의 일상적인 소통, 아니 통보 방식이겠으나, 그 말을 듣는 보호자나 환자는 당황스러웠다. 전날은 심장내과 선생님과 신장내과 선생님의 의견을 확인하고 항암을 진행할 것이라고 했던 주치의가 신장 기능이 이렇게 안 좋은데도 공격적으로 진행할 것인지 선택하라니, 선택의 결정권을 환자나 보호자한테 주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로 들렸다.

그리고 '공격적'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무리해서 치료를 선택한다는 느낌도 받게 했었다.

또 당황시킨 것은 '전원'을 고려하고 있다는 표현이었다.

병원 생활을 많이 해보지 않았던 우리는 '전원'은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말로 들렸다. 이미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해보겠다고 이곳으로 왔는데, 다른 병원으로 가라니 너무나 무책임한 표현으로 들렸다.


난 '공격적으로 시도한다는 것'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항암을 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어제는 항암을 한다고 하지 않았냐고, 또 전원을 시키면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때 옆에 있던 전공의가 자신이 나중에 와서 설명을 해주겠노라고 하면서 내 질문을 막았다. 그리고 주치의와 전공의와 인턴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혼란스러웠다.


답답한 마음에 오빠와 통화를 시도했다. 오빠도 혼란스러워했다.


'이 병원에서 치료하겠다고 해.

항암을 안 하면 어떻게 해?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너무 답답한 마음에 주사하러 온 간호사한테 의사의 말이 무슨 뜻인지 물었다.


'신장수치가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안 좋은 상태이다.

항암을 하게 되면 독소가 몸의 다른 세포도 파괴하기 때문에 몸이 힘들어지고 7일이나 10일쯤 많이 힘들어한다.

감염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집으로 퇴원하는 것보다 병원에 입원을 하는 것이 좋은데, 여기는 상급병원이라 길게 입원이 안 돼서 병원 내의 재원관리위원회 등을 통해 다른 병원(요양병원 등)을 알아보고 입원을 할 수 있다. 혹은 보호자 등이 가까운 병원을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진료일이 되면 이 병원에 와서 주치의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항암을 하지 않으면 지금 치료받는 것이 끝나면 퇴원하게 된다.

항암을 하게 되면 지금 입원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입원 상태에서 시작하게 된다.'


간호사의 설명을 들은 후에야 '전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항암을 하지 않으면 바로 퇴원하게 된다는 말은 또 다른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집에 있을 때 엄마의 상태가 얼마나 급격하게 안 좋아졌는지 봤었고, 치료를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무엇보다 난 이 병원에서 떠밀려 나고 싶지 않았다.


하루 종일 기다려도 설명을 해주겠다던 전공의는 오지 않았다. 설명을 더 듣고 싶었지만, 간호사의 설명만으로 결정을 해야 했다.

이전 병원에서 의사는 치료를 하지 않으면 엄마의 여명이 2달에서 3 달이라고 했었다.
하루 동안 고민을 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없었다. 치료를 받기 위해 이 병원에 왔었고, 지금 할 수 있는 치료는 면역주사와 항암독성주사를 함께 맞는 방법뿐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날은 입원 후 처음으로 엄마가 간밤에 잠을 잤었고, 허리 통증도 없다고 했었다. 아침으로 샐러드와 계란도 조금 먹고, 엄마가 먹고 싶다던 동치미를 오빠가 가져다줬는데, 그것도 먹었었다.


그리고 주치의가 왔고, 우리는 항암주사를 맞겠다고 했다.

주치의는 면역주사 키투르다는 100%로 하고, 다른 항암독성주사인 페메트렉시드와 네오플라틴은 50%로 감량해서 주사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오전에 엄마는 잠시 잠이 들었다. 그때 난 엄마의 사진을 찍었다. 아무런 고통도 없는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날 오후 엄마는 약 2시간에 걸쳐서 항암주사를 맞았고, 맞자마자 구토를 했는데, 노란색이었다.

구토가 노란색이라고 간호사한테도 주치의한테도 물었지만 누구도 답해주지 않았었다. 항암주사를 맞고 엄마는 암인 줄 몰랐던 그때처럼 오른쪽 아랫배가 아프다고 했다. 속도 울렁거린다고 했다. 이후로도 먹는 것마다 구토를 했고, 특히 약은 먹는 즉시 구토했다.

주치의는 약을 먹으면 구토를 한다는 내 말에 항구토제를 패치로 처방했고, 다시 한 보따리의 약을 처방했었다. 먹으면 구토를 하는 약들을.


주치의가 배려해서 하루를 더 입원하고 금요일에 퇴원해서 병원에서 연결해 준 요양병원으로 갔었다.

우리는 보호자가 상주하길 원했고, 보호자 상주가 가능한 요양병원은 많이 없었다. 그중 개원한 지 얼마 안 된 요양병원에서 2인실을 보호자도 상주하면서 같이 쓰라고 했고, 우리는 그곳으로 갔었다.

엄마는 병실에 가자마자, 나에게

'화장실이 없다.'

층에 2~4인실 정도의 병실이 8개 정도 있는데, 병실 안에는 화장실이 없었고, 층에 화장실이 한 개뿐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구토하는 엄마한테 화장실은 중요했다.

그리고 엄마가 있는 병실에서 나오던 간호사는 엄마의 PCN관을 보고

'난 저거 소변줄인 줄 알았잖아.'

소변줄 관과 PCN관이 같아서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을 몰랐던 난, PCN 관도 알아보지 못하는 간호사로 인해 이곳이 더더욱 믿을 곳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다시 엄마가 입원할 수 있는 곳을 찾았고 2시간 정도 검색한 후, 보호자가 상주할 수 있고 화장실이 병실 안에 있는 곳을 찾았다.


퇴원할 때 엄마의 병력기록지를 줬는데, 상급병원에서 알아봐 준 요양병원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곳에는 우리가 어디를 가든 상관없다는 듯 어떤 병원이름도 쓰여있지 않았다.

우린 한방병원으로 전원을 갔다.  결국 보호자가 찾아서.

나중에 주변 사람들한테 들어보니, 요양병원을 선택할 때, 미리 가서 시설 등을 확인을 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너무 순진한 건지 게으른 건지, 병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의 최선이었던 것이다.

좋은 병원이니 좋은 치료를 해줄 것을 마냥 기대했고, 좋은 요양병원을 소개해 줄 것을 마냥 기대했던 우리의 안일함이 우리가 했던 최선이었던 것이다.


보호자가 똑똑하지 못해서, 더 확인하고 찾아보지 않고 마냥 기대만 해서, 우리는 엄마를 조금 더 일찍, 조금 더 고통스럽게 보냈던 것인지도 몰랐다.


가장 후회되는 건 공격적으로 항암화학요법을 하겠다고 말하던 것이었다.

결국 우린 나약한 엄마 몸에 독을 주사한 것이었다.

암을 진단받은 후 처음으로 고통스럽지 않게 곤히 잤던 엄마한테.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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