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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ma Sep 03. 2023

어느 계단의 이야기

[어느 계단의 이야기]

아주 오래전 읽었던 스페인 작가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 희곡이다. 어느 건물의 계단을 주 배경으로, 그 건물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성공을 위해 노력하지만,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으며, 그들의 자식들도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로 어렴풋이 기억난다. 시간이 흐를수록 낡아가는 공간에서 다음 세대 사람들의 삶도 비슷하게 되풀이되었던 것이 비극적으로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물론 희곡은 다음 세대 삶의 결론을 내지 않고 끝을 맺는다.






형부의 생일은 며칠 남았지만, 형부와 언니, 나는 형부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미리 만나 식사를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차를 타고 20여분을 달려 찾아간 식당은 아주 깔끔했다.  예약을 했더니 나무가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아주셨다.


'좋은데? 좋죠, 형부?'

'어, 잘했어.'

'내가 주는 생일 선물이에요, 형부. 방사능.'

'우린 뭘 먹어도 상관없어. 이걸 먹어도, 안 먹어도 죽을 날이 멀지 않았지. 문제는 아이들이지.'


형부 생일로 뭘 먹고 싶은지 물었는데, 형부는 소고기, 돼지고기보다도 생선구이가 먹고 싶다고 했다. 바로 며칠 전, 일본이 핵오염수 방류를 시작했고, 그 문제로 세상은 시끄러웠다. 

나 역시 형부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다음 세대에게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올 방사능의 위험.

얼핏 탄광촌 주변의 주민들이 몇 년 후에 암 발생이 늘었다는 이야기들, 반도체 공장을 다니다 알 수 없는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들이 머리를 스쳤다.


'주말 사이에 수산물 소비가 늘었대.'

'마트에는 미역 사려고 줄을 섰다고 하더라고.'

언니가 말했다. 

'더 심해지기 전에 사두려는 거지. 우리는 샀어?'

'오빠 미역국 끓여주려고 며칠 전에 샀지. 더 살 걸 그랬나?'

'아냐, 딱 고만큼만 사길 잘했어. 여보.'

'우리도 더 못 먹게 되기 전에 먹자고요. 오염수 방류하기 전에 왔을 거라고 믿고.'

'방류 전에 온 거겠지?'


우리는 상관없다고 말은 해도 여전히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 화장실 갔다 올게.'

언니가 자리를 비웠다. 형부와 난 갑자기 어색함이 감돌았고, 잠시 멀뚱하게 앉아 있었다. 형부는 좋은 사람이고 털털한 분이지만, 형부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언니가 있으면 편하게 말을 주고받지만, 이렇게 언니가 자리를 비우기라도 하면 우리는 할 말을 찾아 열심히 머리를 굴려야 했다. 다행히 언니는 오래지 않아 왔고, 마침 밑반찬도 식탁에 차려졌다. 그러자 멀뚱한 분위기는 삽시간에 사라지고 형부는 재빨리 젓가락을 들고 밑반찬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임에도 형부는 아직 식전이라 아주 허기졌을 것이다. 언니도 젓가락으로 반찬을 맛보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보자 아침으로 샐러드를 먹어서 속이 비어있지 않은 나도 마음이 다급해져서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맛있는데?'

'제가 잘 찾아냈죠?'

'어, 아주 잘했어. 처제'

'근데 이게 무슨 나물이야? 너무 맛있는데? 너무 맛있죠?'

'취나물?'

농촌에서 태어나 나름 나물이나 자연에 부심이 있는 형부가 말했다.

'아니야, 내가 어제 엄마가 얼려놨던 취나물 녹여서 무쳤는데, 이 향이 아니야.'

'어디서 먹어봤는데...'


형부는 나물을 탐색하듯 먹었다. 언니도 나도 나물에 꽂혀 계속 먹으면서 나물의 이름을 찾고자 했으나 역량 부족이었다. 종업원이 돌솥밥을 갖고 왔다.


'이게 무슨 나물이예요?'

'취나물 아니면 곤드레일 거예요.'

'거봐, 취나물이라잖아.'

'아닌데, 어제 이 맛이 아니었는데...'


나물이름이야 어쨌든 우린 맛있다고 말하면서 나물을 3 접시나 비웠다. 엄마가 안 계신 후로 가장 먹기 힘든 반찬이 바로 나물이었다. 그리고 언니는 좋아하는 멸치고추볶음을 2 접시나 먹었는데, 그 역시 엄마의 죽음 이후 한동안 먹지 못했던 반찬이었다. 우리는 생선구이가 나오기도 전에 밑반찬을 게눈 감추듯 다 먹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생선구이가 나오자 본격적으로 밥을 먹었다. 소리 없는 전쟁처럼 누구 하나 말을 하지 않았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오로지 밥만 먹었다. 형부와 난 20여 분 만에 식사를 끝내고 그제야 얼굴을 들었다. 형부와 눈이 마주쳤지만 할 말을 찾지 못해서 서로  다른 곳을 보았다. 언니가 아직 밥을 다 먹지 않아서 언니를 보는 것이 빨리 먹으라고 재촉하는 것으로 느낄까 봐 언니도 보지 못하고, 할 일이 없는 난 시선이 떠돌고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선물로 밥을 사기로 했는데, 형부나 언니가 낼까 싶어 마음이 급해져서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있었다. 언니는 눈치를 보며 먹다가 조금 후에 다 먹었다고 했다.


'커피 마시러 가죠. 나 쿠폰 있으니, 돈 쓰지 말고 쿠폰 쓰자.'

벌떡 일어서며 내가 말했다.

'나도 쿠폰 있어. 그럼 네가 커피 사고, 내 걸로 케이크 사자.'

'케이크? 형부 생일이라서?'


계산하면서 나물의 이름을 물어봤다.

사장님은 자신감과 자만감 사이 어디쯤의 태도로 '곤드레'라고 말했다. 우리가 맛있게 먹은 것을 알겠고, 그런 반응은 당연하다는 듯이.




커피 쿠폰을 쓸 수 있는 대형커피숍은 곳곳에 있었지만, 주차가 용이한 곳을 찾다가 동네의 대형 커피숍을 가기로 했다.

동네 대형커피숍은 2층으로 되어 있었다.

1층에는 주문하는 곳이 있고, 창을 보고 마실 수 있게 배치된 테이블과 의자들이 있었고, 2층으로 가는 계단 옆에 2인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 하나와 의자가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 2층으로 가면, 천장이 아주 높고 창밖으로 나무들이 보여서 눈이 시원해졌다. 동네가 서울에서 먼 곳이라 땅값이 싸서 그런지, 매장이 컸고 테이블도 거리를 두고 있어서 더 여유로워 보였다.


주문하고 올라가니 형부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좋은 자리 잡았네요?'

'그럼, 이 자리 맡으려고 어제부터 앉아 있었어.'

'잘했네. 형부는 라테 시키고 바나나망고주스도 시켰어.'

'뭐 하러?'

'형부가 먹고 싶다고 했잖아?'

그렇게 형부는 라테와 바나나망고주스를 먹고, 언니는 목감기로 차를 마시고 난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맛없는 조각케이크도 먹었다.


'원래 적정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어머니 때문에 몸무게가 늘어서 더 이상 줄지를 않아. 어머니가 음식을 맛있게 해 주셔서.'


형부는 툭 튀어나온 배를 만지며 갑자기 고해성사를 하듯 말했다. 나도 형부가 엄마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도 형부처럼 맛있게 먹어주면 더없이 즐거워했었다.

우리는 각자 이야기를 하고 잘 들어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우리의 어색한 사이만큼 이야기는 하나의 주제로 길게 이어가지 못하고 자주 끊어졌다. 그러다가,


'난 올해 들어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는데 혼자 겪어야 하니까 보험을 들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어.'


언니가 괜한 걱정을 할까 망설이던 끝에 말을 꺼냈다. 언니는 요즘 혼자 있는 나를 과하게 걱정하고 있었다.


'아는 사람한테 설계를 부탁했더니, 내 나이가 너무 많아서 그런지 다시 돌려받지도 못하는 보험금을 20만 원이나 내는 걸로 설계를 해왔더라고. 금액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에 부담이 되다가, 차라리 그 돈을 적금해서 내가 필요할 때 병원비로 쓰는 게 낫겠다 싶더라니까. 매달 내 돈 20만 원을 내는데 아프면 증거자료로 내 아픔을 증명하고 돈 달라는 게 뭐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또 생각해 보면 이전에 보험을 들어서 한 번도 탄 적이 없고, 늘 중간에 해약해서 손해만 봤던 기억에 이걸 들어야 하나 고민도 되고.'


형부와 언니는 내 고민을 듣고 같이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각자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서 제시하는 해결책이 썩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그리고 보험에 대해 아는 것도 고만고만했다.


'오래전에 든 종신보험은 내가 교통사고로 죽어야 가장 큰 이득이야. 지금 보니, 보장금액도 너무 낮더라고요.'

'그렇지, 처제 죽으면 언니랑 오빠한테 보험금이 가지.'

'그쵸.'

'나도 교통사고로 죽으면 돈 나와.'

'형부는 운전하니까 보험 필요하지.'

'근데, 버스 타고 가다가 죽어야 돈이 제일 세. 자가용 2배야. 여보, 나 죽으면 그 돈 당신한테 가. 여보는 있어?'

'둘이 그런 거 공유 안 해요?'

'우린 각자야.'

'언니도 종신 있어요. 언니는 만기가 됐지.'

'그래? 여보도 교통사고로 죽으면 돈 나와? 그럼 내 앞으로 나와? 그거 잘 둬야겠네.'


형부는 농담을 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시시껄렁한 얘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방사능 물고기를 먹어도 상관없다던 난 말과 다르게 산책을 시작했다.

나이 들어가면서 느껴지는 몸의 변화는 혼자 남겨진 나의 미래를 더 불안하게 했다. 엄마는 내 나이 때에 우리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의 건강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 불안이 유난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산책을 하다가 이곳에 10년 살면서 그 대형 커피숍을 3번 갔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동료와 가서 업무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렇게 외진 곳에도 대형커피숍이 있어서 놀랐고, 2층의 천장이 높아서 놀랐었다.

그다음에는 새언니의 생일에 새언니와 오빠, 그리고 엄마와 같이 갔었다. 그때 오빠는 사업에 어려움이 생겨 경제적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마침, 오빠네는 청약에 당첨돼서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는데, 잔금을 치르느라 돈을 다 쓴 새언니는 몇 달 동안 오빠가 돈을 가져다주지 못하자 생일에도 낯빛이 어두웠다. 오빠는 어깨가 축 처져 있었고, 그런 오빠를 보는 엄마는 속이 상해 있었다. 그때 내가 가진 쿠폰으로 커피와 작은 케이크를 사서 새언니한테 줬고, 새언니의 한숨을 들으며 우리 넷은 즐겁지 않은 티타임을 했었다.

그리고 이번에 방사능에 오염됐을지도 모르는 생선구이를 먹고 혼자 남겨져 홀로 늙어가야 하는 나의 불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을 생각하면서 그 희곡 제목이 생각났다.


아마도 변하지 않는 공간이 인간 삶의 희로애락을 묵묵히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성공하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고, 다음 세대도 비슷한 삶을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희곡의 비극적 정서가, 혼자 남겨져 불안한 내 미래와 겹쳐져서 생각났는지도 모르겠다.


생선이 방사능에 오염됐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것을 먹느냐 안 먹느냐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염되지 않은 생선은 더 비싸지겠고, 그것을 살 능력은 나에게서 점점 더 사라지겠지.

그것은 부유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의 선택이 되겠지.

사회는 점점 더 양극화되겠지. 성공을 꿈꾸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계단을 올라 2층의 높은 천장을 보기는 더 어려워지겠지.

지팡이를 짚고 뒤뚱거리며 걷는 저 할아버지처럼 나도 더 늙어가고 혼자 걷기도 힘든 날이 오겠지.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고, 머릿속에서는 [어느 계단의 이야기]가 맴돌았다.




언니는 내 얘기를 듣고 집에 가서,

'혼자라고 생각지 말고.'

라고 톡을 보냈다.

언니도 힘들 텐데 후회가 들었지만, 언니의 말에 마음이 울컥했다.


......


그러다가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래, 불안에 잠식당하지 말자.

다음에 기분 좋은 일로 그 대형커피숍을 갈 날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앞 날은 때로 우리의 의지와 행동으로 바뀌기도 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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