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아직 미혼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2022년의 봄, 학교 동생들과 함께 벚꽃나무 밑을 걷고 있었는데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아빠!!
처음에는 당연히 나를 부르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연하지. 난 자식은 커녕 결혼도 하지 않았다.(물론 당시 나이 서른하나였기에 기혼일 수도 있는 나이지만) 그러니 어떻게 나를 부르는 소리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런데 그 목소리가 익숙하기도 했고, 학교에서 누가 아빠를 찾는 건지 궁금했기에 뒤돌아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내 동기였다. 유독 사람을 편하게 해 주고 밝은 친구였는데, 덕분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던 친구였다. 그래도 아무리 친해졌어도 그렇지 아빠라니..
나를 부르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고는 곧장 그 친구에게 걸어가서 따졌다.
“내가 왜 아빠야!”
“아빠는 이제 그냥 아빠야~”
사실 며칠 전에도 이 친구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었다.
“근데 오빠를 오빠라고 부르는 게 맞나? 뭐 아빠라고 해도 되는 나이 아닌가~?”
그래 내가 나이가 많긴 하지만, 스물한 살짜리 딸이 있을 나이는 아닌데. 근데 내가 싫어한다고 안 할 애도 아닌 거 같아서 그냥 놔뒀다. 그랬더니 계속 아빠라고 불렀다.
그런데 평소에도 조금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아빠라고까지 부르니까 뭔가 챙겨줘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이 친구가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좋겠고, 수업을 잘 들었으면 좋겠고, 간식거리라도 하나 챙겨주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잔소리를 하게 되었다. 그랬더니 이 친구도 처음에는 장난으로만 아빠라고 하던 게, 이제는 볼 때마다 ‘아빠!’하며 인사해 온다. 그러다가 사람들 많은 곳에서 아빠라고 부를 때면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혹여나 열에 한 명이라도 나를 진짜 아빠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친구, 아니 이제는 딸이 되어버린 친구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고 싶지만 혹여나 삐질까 봐 전부 말하지는 못하고 칭찬만 몇 마디 적어보려고 한다.
열 살이나 차이나는 아저씨한테 친근하게 대해주고, 먼저 장난쳐줘서 학교 생활이 심심하지 않게 해 준다. 덕분에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를 풍길 때가 있는 나에게 다른 사람들도 먼저 다가올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인스타 따위는 할 줄 모르는 아저씨에게 인스타 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가끔 아저씨 같은 모습을 보이면 고칠 수 있게 알려주기도 한다.(물론 말을 듣지는 않지만)
내 간식 가방을 털어가고, 멘탈도 약하고, 걸핏하면 울고, 힘든 얘기도 들어줘야 하고, 인관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상담도 해줘야 하지만 그게 딱히 귀찮다기보다 응당 해줘야 하는 일로 여겨진다. 오빠도 아닌 것이, 아빠도 아닌 것이 ‘와빠‘정도 되나 보다.
쓰다 보니 칭찬보다 욕할 것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 이만 줄여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놀아줘서 고맙다. 딸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