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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손을 잡아줘

잃어 버리기 전에 잃지 말았으면



뜻밖이라고 말하는 일들도 곰곰 생각해 보면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뜻밖의 일과 자주 마주치는 것은 그 일의 앞뒤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일 뿐.  오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대체로 잊고 지낸 아내가 당신의 마음에서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라지고 난 뒤에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육감적으로 다가왔다.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없는 일까지도 다 해내며 살았던 것 같아.  그러느라 엄마는 텅텅 비어갔던 거야.  종내엔 자식들의 집 하나도 찾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된 거야.



- 엄마를 부탁해 中





지난 주말아침 우리 부부는 간단히 요기를 한 뒤, 모처럼 동행한다며 일어난 아들과 뒷동산 산책을 나섰다.  오르막으로 이루어진 아파트 끝동까지 다다르면 숨이 살짝 차기 시작하는데 보상처럼 동산으로 향하는 자그마한 건널목이 보인다.  산책 겸 운동을 하려고 건널목 신호등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버스 정거장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보다 조금 앞서 가시던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가 건널목 입구에서 멈춰 서 뒤를 돌아보시길래 덩달아 나는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연한 리넨 정장에 이쁜 브로치 핀을 단 할머니가 더딘 발걸음으로 올라오고 계셨다. 그들은 노부부였다.  평생을 앞서 걷는 남편에게 서운함도 사라진 것일까.  말없이 뒤따르던 할머니의 속도를 가늠했을 때 도착한 버스를 타기란 무리였다.  


순간 나는 할아버지가 화를 내지 않기를, 다음에 도착하는 버스를 타도 약속시간에 늦지 않기를 바라는 조바심이 일어 할아버지의 얼굴을 조심스레 살폈던 것 같다.  열 걸음이상 벌어지는 보폭의 거리를 계산했을 때 할아버지는 여간 성품이 급한 분이 아니시며 지갑과 성경책이 들어갈만한 가죽가방을 사선으로 맨 것을 보면 실수를 용납하지 않은 삶을 사셨을 것 같았다.  소심한 할머니는 대꾸도 변변히 못하고 평생 남편의 비위를 맞추며 사셨을 것이란 상상에 이르렀다.


그러다 화까지는 아니고 조금 짜증이 일었던 것 같다.  할머니의 걸음이 더딘 것은 살아온 세월 동안 자신을 모두 쏟아내고 남은 껍데기로 간신히 걷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조금 울적한 기분이 들어 남편과 아들에게 '할머니를 잃어봐야 정신 차리실까? 손 좀 잡고 같이 올라가시면 안 돼?'라는 말을 격앙되듯 나도 모르게 말했던 것 같다.


남편과 아들은 내 반응을 궁금해했고, 나는 한때 화제의 작품이었던 신경숙 씨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내용을 짧게 이야기해 주며 산을 올랐다.  소설은 픽션이지만 충분히 감정이입이 되고 실감 나는 우리의 일상을 대변해 주기에 인생의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하다.  


'엄마를 부탁해'란 소설은 갑자기 사라진 엄마의 행방을 찾는 가족들 간의 걱정으로 시작된다.  칠순을 앞둔 엄마가 자식들 편하게 해 준다고 남편생일상을 받으러 서울로 올라오다 그만 남편 손을 놓친 것이 실종의 시작이다.  지하철 서울역 구내에서 매번 천천히 좀 가라고 평생을 요청했던 아내의 말을 번번이 무시한 벌을 받는 것인가, 남편은 엉뚱하게도 지하철 역에서 아내를 잃어버린다.  아내는 빈 손에, 글도 모르고, 뇌졸중까지 있는데(나중에서야 가족들이 알게 된 증세) 그렇게 길을 잃고 사라져 버려 끝내 그들 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전단지를 돌리고 간간이 들리는 인상착의에는 허름한 거지꼴을 한 파란 슬리퍼를 끌며 송아지 눈망울을 닮은 할머니가 보였다는 말뿐, 텅 빈 고향집에서 아내를 기다리는 무력한 아빠와 큰딸이 전화로 통화하는 문장에서 등장인물들과 함께 나도 소처럼 '어어어'하고 울고야 말았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우리는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다.  아내와 엄마 또는 가족 일원의 소리없는 헌신을 당연한 희생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은 고생할 각오를 하기 때문에 말이 없을 뿐이다.  편안한 가정 안에서 느끼는 안전함과 평화로움은 값을 요구하지 않는 사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걸음으로 상상의 나래가 너무 깊게 펼친 산책길이었지만 남편과 아들의 눈빛은 나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사랑은 이해의 다른 이름'이라고 했다.  사랑은 이해다.  이해는 상대의 정보를 상세히 관찰하며 필요한 것을 챙겨주는 보살핌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방식대로 상대를 사랑하다 오히려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  어른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함으로써 아이에게 상처를 준다.  자녀는 부모에게 효도의 척도를 자기 방식대로 갈음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기쁘지 않다.  이 모든 것이 상대의 필요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자기 나름대로 사랑한 간극의 결과다.


우리는 삶의 소소한 부분에 관심을 갖는 법을 잊은 채 살아간다.  삶이 논리적이지 않는 이유는 수많은 감정의 충돌로 결과물이 바뀌기 때문이다.  따뜻한 정은 대개 눈에 보이지 않는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보고 마음을 쏟아야만 비로소 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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