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완용을 키워내고 있을까요, 윤동주를 키워내고 있을까요? 자신의 성공을 위해 공부했던 이완용은 출세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나라의 편에도 설 수 있고, 나라마저 팔아버릴 수도 있는 엘리트로 자랐습니다. 부자가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했습니다. 어떤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철학은 없고 그저 부자가 되는 것이 목표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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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이 졸업한 육영공원은 결국 제대로 된 인재 하나 배출하지 못하고 최초의 관립 근대 교육기관이라는 상징성 하나만을 남겼습니다. 반면 윤동주가 졸업한 명동학교는 수많은 민족 지도자를 배출하며 민족교육기관으로 기념되고 있죠. 어떤 인재를 양성할 것인가는 바로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건강한 교육은 건강한 인재를, 나아가 건강한 사회를 만듭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교육 목표는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 교육은 어떤 인재를 양성하고 있을까요? 무거운 질문이 마음에 남습니다.
2019년 발표한 전작 '역사의 쓸모'는 실용적인 역사의 활용(쓸모)에 초점을 두었다면 이번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확정된 역사 이전에 감춰있던 이야기까지 덧붙여 굉장히 흥미롭게 읽힌다. 이러한 이야기형식의 구성은 역사를 끊김 없이 인지하게 만들고, 독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저자로 향하게 만든다. 그가 새삼 말하고자 하는 우리 '역사의 쓸모'는 현재를 살아가는 개개인 몸속에 각인된 역사의식 DNA의 확인이었고, 그것은 결코 작지 않았다.
역사란 '실체적 진실'도 중요하지만, 그 실체를 해석하는 역사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이 살아가는 자국의 역사는 필수적으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에 무지한 사람들이 많아서 정치가 시끄럽고 역사는 왜곡되어 간다. 역사를 잊고 외면한 나라는 결국 존재하기 힘들다.
우리나라는 세계열강의 틈바구니에 위치한 만큼 탐나는 지리적 여건으로 인하여 역사적으로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 현재도 주변 강대국들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하고 있다. 우리는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불행한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역사의 쓸모'는 역사를 움직인 거대한 인물들이 탄생하기까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역사 속 민초들이 어떻게 봉기하고 역사의 인물이 되었는지 건강한 시대정신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 희망의 빛을 품게 만든 원동력은 그 선택밖에 없다는 절박함과 조국을 스스로 지키려는 민족주의였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뚜렷한 역사관을 지키려 했고 올바른 철학을 가졌고 그러기에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다.
혼탁한 세상에 휩쓸려 자신의 안위만 챙기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우리의 역사는 현재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치욕적인 국권 박탈과 경술국치가 있었던 근현대사로 부끄러워 하지만 수없이 많은 자랑스러운 민족운동의 탑들이 쌓여 있었기에 현재의 평화가 존재한다는 사실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위기의 시기는 언제나 닥칠 수 있지만 대처하는 방식에 따라 역사는 확연하게 방향이 바뀐다. 여러 사례가 있지만 나는 이 책에서 '교육'에 대한 방향성을 강조하고 싶다.
1876년 일본의 강압으로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이후 통역의 필요성을 체감한 조선 정부는 영재를 육성하기 위해 최초의 근대식 학교인 '육영공원'을 설립한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지만 인재를 양성하겠다면서 양반 자제들만 뽑았다. 이때 1회 입학생이 '이완용'이다.
이완용이 어떤 인물인가. 을사늑약을 주도하고 군대를 해산하고 내정을 장악한 정미 7 조약, 경술국치를 주도하여 오로지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는데 독보적으로 앞장서며 '트리플 크라운' 달성한 놈이다. 촉망받던 엘리트인 그는 자신의 출세만을 위해 공부했기 때문에 시대인재가 되지 못했다. 현재 우리의 교육 목표가 그저 부의 욕망을 쫓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된 것은 아닌지 반성할 부분이기도 하다.
이에 확연히 대비되는 사례가 있다.
1908년 김악연이 북간도 지역에 설립한 '명동학교'는 독립에 힘쓸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뚜렷한 취지를 가지고 설립했다. 1925년 폐교에 이르기까지 천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민족교육기관의 원조로서 인재를 양성해 독립운동가와 민족교육자를 다수 배출했다.(대표적인 인물로 윤동주, 문익환 목사가 있다.)
교육이 만병통치는 아니겠지만 교육의 성패는 결국 그 교육을 받는 이들이 삶으로 증명해 나가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한 암흑기였던 일제강점기시기에 독립이라는 희망의 빛을 버리지 않고 연해주에서 활동했던 '최재형'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는 뜨거운 가슴으로 힘차게 뛰기도 했고 그의 처참한 죽음의 결말을 마주했을 때는 정말이지 마음이 너무 아팠다.
미천한 출신(아버지는 소작농, 어머니는 기생)이었던 그는 가족과 연해주로 떠났고 러시아 선장부부가 거두어 많은 고생 끝에 막대한 재산과 인맥을 쌓게 된다. 최재형에게 조국은 무시와 멸시를 줬지만 그는 나라가 엉망이라고 해서 자신까지 엉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나라를 핑계 삼아 나까지 부끄럽게 사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고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해 고국의 상황이 안 좋아지자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해 신문사를 사들이고 민족지를 발행한다. 독립운동자금을 후원하고 안중근 의사의 항일활동을 후원한다.
최재형은 온갖 고생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연해주 지역의 한인 마을에 학교를 세웠습니다. 민족의 미래나 다름없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적이 좋은 학생은 도시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유학 비용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연해주의 한인들은 최재형을 존경할 수밖에 없었어요. 연해주를 방문했던 안중근 의사의 말로는 저마다 집 안에 최재형의 사진을 붙여놓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역사 속 훌륭한 인물들의 공통점은 '쉬운 선택보다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려고 늘 노력했다. 그들의 선택으로 인해 우리는 비굴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깨닫게 해 준다.
이는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인 '자유와 독립'에 대한 의지이기 때문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사적인 영역에서 경험하는 불평등과 불합리, 권력과 폭력에 대한 힘의 불균형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용기를 만든다.
저자는 자국의 역사 외에도 세계사 속에 개개인의 시대적 열망이 굴복하지 않고 끝내 성공하게 된 여러 사례들을 재미있게 풀어주고 있다. 우리가 뮤지컬과 영화로 익숙한 '레미제라블'의 이야기는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지식을 총합적으로 정리하게 해 준 유익한 시간이기도 했고, 프랑스 시민혁명의 시작이 현재의 프랑스 민주주의로 바로 연결되지 않았음을 알게 해 준 인지적 도표기도 했다. 100여 년이 걸렸을 만큼 권력의 장벽은 그만큼 높고 강하며 사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역사 속 기막힌 필연은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 우연의 옷은 개개인의 상식적이고 본능적인 열망의 총합이며 평화를 사랑하는 진보적 민주주의 정신이란 점이다.
하나는 작지만 그것들이 모이면 역사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삶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연대해야 완성되는 것처럼 역사의식은 나를 비롯한 옆 사람, 또 그 옆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결국 그것이 시대정신으로 완성된다는 의미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거론하는 '나비효과'와도 같다. 엄청난 토네이도는 브라질의 나비의 날갯짓으로부터 비롯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