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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천국

천국이라 믿었던 곳이 지옥일 수 있다


누군가를 다시 만나고자 롤라에 왔으나, 누군가가 오히려 고통이 되었다.  해석이 맞다면, 그도 나처럼 누군가를 가뒀을 것이다.  대신 시끄럽지만 감정을 견딜만한 공달과 살아왔을 테고, 내가 매번 제이 대신 여우를 불러내는 것처럼, 억겁을 살아도, 모든 것이 가능한 천국에서 살아간다 해도 인간은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안의 고통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감정적 존재였다.






정유정 작가의 책은 오래전에 읽은 '완전한 행복'이 유일하지만 워낙 강렬한 인상을 받아서 인지 '영원한 천국'을 읽기 전부터 묘한 흥분이 몸 안에서 감돌기 시작했던 것 같다.  두꺼운 분량이었지만 저자 특유의 몰입도 높은 진행력으로 인하여 말 그대로 순식간에 독파했다.  



이 책은 작가가 야심 차게 준비하고 있는 '욕망' 3부작의 두 번째라고 한다.  그러니까 나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운 좋게 첫 번째 작품에 이어 연속해서 읽는 셈이었다.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지독한 나르시시스트이자 사이코패스의 심리를 완벽하게 묘사했던 '완전한 행복'을 읽었을 당시 나는 벅찬 잔인함에 몸서리를 쳤다.  상식 없는 사람들의 사랑이 얼마나 다듬어지지 않아 무책임한 지를,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이라는 욕망은 그저 소유에 목적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당시 '고유정 사건'을 모티브로 하였기에 더욱 각인되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 읽은 작품은 '죽지 않는 삶'을 그리는 인간의 욕망을 모티브 한 SF 장르소설이다.  과학은 후퇴가 없듯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기술들이 거듭날 것이 예상되는 현실 속에서 작가로서 충분히 가능한 상상이라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미 메타버스(Metaverse)라는 디지털 공간을 통해 자신이 직접 운용하는 아바타 게임을 하며 그 안에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여가도 즐기고 있다.  작가는 (아마도 여기서 힌트를 얻지 않았을까) 현실세계(이승)에서 죽은 사람들이 '롤라'라는 영원히 죽지 않는 세계로 입장이 가능해지는 시기가 올 것으로 상상했다.  



우리가 꿈 안에서 경험하는 내면의 존재가 실체가 없음에도 꿈을 꾸고 나서 나를 생생하고도 객관적으로 말할 줄 아는 것처럼 말이다.  차이가 있다면 작가는 '롤라'의 세계에서는 현실세계처럼 모든 오감이 살아있경험이란 점이다.



하지만 영원히 죽지 않기에 얼마나 무료한가.  롤라의 세계 속 그들은 또 하나의 세계(가상현실 체험) 게임을 '드림시어터'에게 의뢰하며 무한의 삶을 극복하려 한다.  드림시어터에 들어간 롤라 이주민들이 그 안에서 생을 마쳐야 다시 롤라로 복귀된다는 시스템(룰)이다.  죽어도 죽지 않는 영원한 삶이 롤라 안에서 무한반복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 틀을 가지고 이 소설을 접해야 하는데, 사실 이 구성자체도 소설 후반부에 다다라서야 맥을 온전히 짚을 수 있고, 스토리 구성상 헷갈리는 사건들로 인해 개인적으로 정리가 중간중간 필요했다.  이는 작가의 교묘한 트릭이기도 했고, 소설의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저자의 교차편집 구성도 한몫했다.  



마치 영화 '인셉션'처럼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게 의도적으로 혼동을 주다가 후반부에 가서야 조금씩 윤곽을 잡아가게 만드는 영리한 작전이었다고나 할까.  


 





이 소설은 '죽지 않는 영원한 삶'을 보장하는 '롤라행' 티켓을 둘러싼 살인사건이야기기 주를 이루지만 작가는 이 사건과 겹쳐져 통과하듯 경험하는 개인의 반복된 괴로움(또는 고통의 의문)에 대하여 독자 스스로 인간 내면의 항구적 기질에 대한 질문을 묻게 만든다.  



거대한 자본력을 가진 미국의 어느 생명공학 회사는 신처럼 영원히 살기 원하는 인간들의 욕망을 상품화하기 위해 게임회사와 손잡고 '롤라'라는 가상세계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단, 현실세계(이승)에서 죽은 사람이어야 하고 '유심칩'이 있어야 롤라 이주민이 될 수 있다는 전제다.  거대기업의 롤라행 입장권은 당연히 상당한 가격대일 것으로 추정된다(설계사 '제이'가 주식대신 이주민 유심칩을 선택할 정도였으니). 이곳도 부자와 빈자의 법칙이 정확히 적용되는 것이다.



일단 그들은 상품화하기 전 '시험단 유심칩'을 세계 곳곳의 노숙자들에게 무작위로 뿌린다.  한국은 다섯 개로 배정이 되었고, 뒷 소문을 입수한 악당들은 노숙자들의 유심칩을 빼앗아 비싼 값에 팔기 위해 그들을 제거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이미 세 명의 노숙자는 죽은 상태고(이 중 한 명이 주인공 '경주'의 동생) 나머지 두 개의 유심칩이 '삼애원'이라는 노숙자 재활시설에 있다는 정보다.  주인공 '경주'는 도수치료사로 의료사고를 내고 쫓겨난 상태로 적지 않은 월급을 주는 그곳을 선택해 들어가게 된다.  



이곳 '삼애원'에서 그는 훗날 만나게 될 해상의 애인 '제이'를 만나게 되고, 자신과는 달리 목적을 가지고 취업한 사실을 알게 된다.  살인사건에 휘말리며 그는 인간의 잔인한 본성들과 마주하게 되고, 자신의 의식이라는 외피에 가려진 욕망(견디고 맞서고 이겨내려는) 또한 처음 발견하게 된다.



소설은 '경주'와 드림시어터 '해상'의 화자 입장을 교차로 고 있는데, 시간 순서가 아니기 때문에 배경지식을 붙들고 읽지 않으면 혼란이 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조언하자면 쉬지 말고 읽기를 추천한다.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재물, 예술, 학구열 등) 잘 살아 보려는 욕망이 있다.  삶을 두고 괴로워하는 사람은 그 삶을 잘 살아 보려는 욕망이 있는 것이다.  욕망이 없는 사람은 괴롭지 않다.  롤라행 티켓을 차지하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은 돈에 대한 욕망이 간절한 것이다.  



주인공 '경주'가 그들처럼 돈에 대한 자유(빚)로 시작되었지만 지키고자 했던 욕망은 달랐다.  처음에는 지키지 못한 동생이었고, 현실(이승)의 삶을 포기했을 때는 너무나 사랑했던 아내를 지키지 못한 못난 자신에 대한 도피였다.  나는 그가 '삼애원' 사건 이후 안정된 생활(결혼)을 지키지 못했을 때 결국 비정한 인생을 견디지 못하고 롤라 세계로 들어온 이유는 순간적인 감정적 선택이었다고 본다.  



뒤늦게나마 그는 드림시어터가 된 '해상'에게 자신의 아픈 기억인 2년 11개월 행적을 백지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고통을 잊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자신의 자유의지로 삶을 대항하며 다시금 살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드림시어터의 세상에서 끝내 돌아오지 않으려는 그의 상태를 이렇게 생각한다.



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겨내려는 욕망이었다.  나는 이 욕망에 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어쩌면 신이 인간 본성에 부여한 특별한 성질일지도 몰랐다.  스스로 봉인을 풀고 깨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어떠한 운명의 설계로도 변질시킬 수 없는 항구적 기질이라는 점에서.




작가는 소설 속 '경주'를 통해 이번 생은 망했고 엉켰다며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신의 설계도라 믿었던 롤라의 세계는 완벽하지 않다.  죽음이 없는 롤라의 삶은 끝이 없는 지루함과 같기 때문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결론처럼 다가온다.  우리가 신과 다른 유일한 능력이 있다면 나에게 닥친 아픈 상처, 고통, 좌절, 슬픔 까지도 맞서고 이겨내려는 욕망이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생에 복구 가능한 재생버튼이 없다는 게  다행처럼 느껴진다.  



한 여름의 꿈처럼 읽힌 소설이었다.



<영원한 천국 / 정유정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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