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부담이 너무 크다
사람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자신을 깨우고 깜짝 놀라게 하고, 감탄하게 하고, 배꼽을 잡게 하고 때론 울상 짓게 만드는 좋은 글을 읽고 싶어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텍스트 읽기 경험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진실하고 재미나고 자신에게 말을 거는 양질의 텍스트를 읽어 본 경험이 거의 없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의도적으로 '뉴스 다이어트'를 하고 일 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보도를 자주 접한다. 그러한 보도 뒤에는 숏폼 동영상에 중독되고 문해력까지 잃은 젊은 세대의 질타 역시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인문교양 뉴스레터 '인스피아'의 발행인이기도 한 저자는 책을 기반으로 한 뉴스레터를 기획 발행하며 다양한 분야와 주제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말을 거는 글을 써야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읽는 맛, 읽을 가치가 있는 글을 쓴다면 독자를 끌어드릴 승산이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읽을 가치, 읽는 재미, 복사-붙여놓기 해놓은 듯한 출처 없고 신뢰성 없는 글에 자극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독자를 대변하고 있다. 반면 비록 어렵더라도 왠지 모르게 읽고 싶은 글, 상대에게 말을 거는 글에는 독자들은 무장해제 된다고 강조한다.
문자중독증이 있는 입장에서 저자의 남다른 진단에 가려운 등을 긁어주듯 시원함을 느낀다. 맞다. 재미없는 글, 어디선가 읽어본 짜깁기 글, 고루한 가르침까지 있는 글을 시간 내서 읽고 싶은 독자는 없을 것이다.
종이책 기준을 벗어나면 현대인은 그 어떤 세대보다 텍스트를 많이 읽는다. 동영상 속 자막, 덧글, 요약된 미디어 글까지 면밀히 따지면 텍스트 생산량은 갈수록 늘어나고 더불어 많이 읽고 있다는 저자의 해석이 옳다.
문제는 미디어 속 텍스트는 양질의 읽기 경험을 제한한다는 점이다. 오로지 인간의 본능과 말초적 욕망을 자극하는 미디어 영상과 글은 중독을 이끌고 기업의 수익성에 부흥할 뿐이다. 더불어 미디어에 자주 노출될수록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감정적으로 취약해져 간다.
현대인들의 독서력 부족과 문해력이 없는 이유를 저자는 질 좋은 읽기 경험의 부족을 꼽는다. 왜 읽는 게 재미있고 흥미로운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또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에 대한 좋은 텍스트를 찾아낼 안목과 지도도 없기 때문이다. 경험의 부족은 쉽게 접할 수 있는 스마트폰으로 향하게 되고 악순환을 밟고 있는 셈이다.
책은 알고리즘의 대항이다.
그렇다면 좋은 책을 찾는 방법을 알고, 자신에게 닥친 문제 해결에 가장 도구가 책임을 안다면 어떨까. 인간은 자신의 고통에 가장 민감하니까. 인생이라는 거친 바다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처방이 알차게 담긴 책이 있다면 거부할 수 있을까. 읽기 소비자는 자신에게 주도권이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먼저 스마트폰 알고리즘은 우리의 의지대로 보지 못하도록 철저히 수익에 의해 설계되어 있다. 또한 어디서든 일상적으로 광고를 보도록 만들고 있다. 불쾌하고 짜증을 인내해야 정보의 창으로 들어가지만 그 정보가 순도 높은 노동력으로 이루어진 정보인지 확신할 수 없다. 또한 인터넷 속에서 떠도는 파편 된 지식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맹점이 있다.
반면 좋은 책은 끔찍한 광고도 없으며 작가의 노고가 담긴 친절하고도 안전한 원천 정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차 정보원이며, 목차, 출처, 참고문헌까지 네트워크망을 필요로 한다면 얼마든지 넓힐 수 있도록 안내까지 해준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저자가 한 권의 책에 투입된 질 높은 투자와 헌신과 노동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최고의 장점이다. 게다가 책은 가성비까지 만족스럽다. 양질의 글을 만나면 진정성을 느끼고 몰입도 자연스러우며 완독에 대한 자존감도 따라온다.
저자는 도서관을 노련한 정원사가 꾸민 지도라고 표현했다. 나는 수많은 책들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책을 찾는 방황의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선 서점이나 도서관에 놀러 가듯 방문해 보는 것으로 시작해 보자.
저자는 좋은 책을 고르는 팁으로 '서문 읽기'를 추천했다. 책 한 권에 담길 내용의 함축 안내문이기 때문이다. 얼마만큼 정성을 기울인 서문인가에 따라 저자가 쏟은 헌신과 애정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나 같은 경우는 '서문 - 중간 페이지 읽기 - 에필로그' 정도 읽고 만족하면 신뢰감을 안고 기분 좋게 시작하는 편이다.
독서는 무엇보다도 주관적인 판단으로 즐겨야 한다. 이 점은 무겁게 생각하지 않아야 자유로운 사색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저자도 '결론을 정해 두지 않고 읽기'를 권했는데 흥미로운 발상이다.
나 같은 경우는 어느 분야이든 소설 읽듯 쭉 달리며 읽는다.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마찬가지다. 내가 독서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도 같다. 부담을 갖지 말고 내 마음에 가는 것을 이것저것 배우고 읽다 보면, 책이 책을 부르고 책 안에서 책의 길이 보인다. 어떤 책이 나쁜 책이고 좋은 책인지 보는 눈이 길러진다. 이를 위해선 일단 이것저것 무람없이 뒤적여 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나는 이 같은 힘 빼고 기웃대는 태도를 부담 없이 해찰한다고 표현하고 싶다.
해찰이란 뜻은 쉽게 말해서 부담 없이, 중심 없이, 대책 없이 나의 문제의식에 무게중심을 두고 책을 읽으라는 의미다. 책의 저자가 전달하려는 핵심 따위는 던져버리고 내 관심사, 내 문제에 대비해서 설렁설렁 읽다 보면 저절로 길이 열리는 것을 알게 된다는 의미다.
결론을 정하지 않고 읽을 때 반짝 떠오르는 생각의 덩어리가 재미있는 독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저자의 무거운 논조 바깥에서 자유롭게 생각의 날개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야기를 즐기고 만들도록 진화되었다. 생존본능인 셈이다. 간섭 없고 몰입도 좋은 이야기가 잔뜩 있는 도서관이란 세상이 우리에겐 있다. 나 자신에게 결코 손해보지 않을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