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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Jul 02. 2024

잘 선택한 일

혼자 선택해본 몇 가지 안되는 일중에서


작년께쯤 먹기 시작한 ADHD 약. 

벌써 일 년이 다 된 것 같다. 

아무도 이 약을 먹으라고 내게 권하지 않았다. 내 상태가 의심스러웠고 내가 관련한 책과 영상들을 찾아 읽었다. 


아무래도 책 속 대부분의 이야기와 영상 속 말들이 내 것 같았다. 

자발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검사를 해보더니 이 병이 맞는 것 같다며 일단 약을 먹어보자 말했다. 


나는 약을 먹었고, 왠지 집중이 너무 잘된다는 느낌이 가득했다. 

그렇게 약을 먹기 시작했으나 정신과 약을 먹는다는 꼬리표가 겁도 나 끊고 먹기를 반복했다. 

내가 먹는 약은 내성이 거의 없어 약을 끊고도 큰 부작용은 없었다.  그러니 내 기질이라 받아들이자며 

투약을 중단한 채 일상을 살아갔다. 



약을 다시 먹게 된 계기는 일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일을 하는데 내 짧은 주의력이 문제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알 정도로 내가 산만하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내 뒤로 '쟤 ADHD 아니야?' 하는 소리도 했다 한다. 

일에 적응하지 못했던 나는 어쩌면 한 표의 동정심을 얻으려 병이 있음을 알렸다. 


'나를 좀 이해해 주세요.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기회를 줬는데도 일이 늘지 않는다는 그 말은 큰 상처가 되었다.


'네가 뭔데 나한테 기회를 주는 건데. 내가 죄지은 것도 아닌데.' 


기분 나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더 이상 직장에 피해를 입히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애써서 노력하는 일들이 물거품처럼 바스러지는 것도 아무리 날뛰며 일해도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들을 감당하기 버거웠다. 

그렇게 '수행능력부족'이라는 퇴사이유를 직접 들어가며 일을 그만두었다. 











일을 쉬는 동안 'ADHD약을 먹으면서까지 일을 해야만 하나'하며 억울한 감정이 들었다. 

한편으론 진짜 내가 ADHD라면 제대로 치료받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게 '그냥 쉬운 일 해요'하는 가벼운 말로 치부하는 의사 말고 내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는 분에게 치료받고 싶었다. 그렇게 병원을 옮겼고 다행히 이 병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나를 인정해 주는 의사를 만났다.

'일단 꾸준히 약을 복용해 봅시다'하는 의사의 힘 실린 말에 나도 '제대로 한 번 치료해보자'라는 생각도 들더라. 




이번엔 투약 사실을 밝히지 않고 다른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밝혀보니 이해받기보다 편견과 핑계로 전해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일을 잘 해냈을 때 진짜 무르익은 경지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더라.


이전보다 훨씬 간단하고 반복되는 일을 하고는 있지만 바쁜 일이 몰아 칠 때도 크게 허둥대지 않고 일을 쳐내는 내 모습에 안도하고 있다. 긴장과 불안감이 약을 먹으면 훨씬 호전되는 증상을 보인다. 약을 먹는다고 머리가 맑게 개인 다거나 능력이 월등히 향상되거나 하는 점은 없으나 약을 먹고 생활을 할 때 마음이 편안하다. 나름 약의 의존도를 줄여보고자 주말은 약 없이 지낸다. 그 또한 괜찮다. 바쁘고 서두를 일 없으니까. 이리저리 일이 꼬여도 괜찮으니까. 익숙한 집이라는 환경에서 적응해 잘 지내고 있으니깐. 살림은 이제 내 손아귀에 있으니까. 



약을 먹고서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문턱이 매우 낮아졌다. 

우울함을 가득 안고 찾아오는 어르신들에게 내 상황을 다 밝히긴 아직 어렵지만(정신과 약을 먹고 일도 하나요? 하는 비난을 들을까 봐 겁도 난다) 그분들에게 힘든 부분을 억지로 참지는 마시라고 나는 가볍게 진료 보시거나 상담받으실 것도 권해드린다. 내가 우울해서 상담도 받았고, 마음의 치료도 받고 있으니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으니, 그분들에게도 또 다른 방법도 있다고 마냥 힘든 일을 참기만 하지 마시라고 권해드린다. 

그분들에게 내 마음이 전해져서일까. 다행히 좋은 의도로 받아들이시기에 그 또한 기쁨이다. 눈물을 흘리는 몇몇 분들의 아픔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자 견디는 것보다 손을 내밀면 또 다른 세상도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선한 의도로 방법을 전하고 있다. 





거의 두 달 만에 약을 타러 들렸던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내 우울감과 일상생활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대한 가벼운 심리검사를 했다. 검사 문항지에 답을 하면서도 몇 달 전 버티면서 일하던 직장에서보다 훨씬 더 마음 건강하게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밥을 맛있게 먹고 있고 잠도 잘 자고 있으며 일상이 무력하지 않았다. 모든 걸 다 내팽개치고 일만 하던 그때와는 다르게 일상을 잘 돌보고 있다는 것을 문항에 하나하나 체크를 해가며 깨달았다. 



'나 요즘 잘 살고 있구나.'



내 발로 병원 찾아가 보길 잘했구나. 버티지 말고 뛰쳐나온 것도 잘했구나. 

구겨진 날도 있었지만 환하게 웃어보는 날도 있구나. 

나의 아픔에 대한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구나. 



잘했다. 잘 선택했다.

혼자서 선택한 안되는 일 중에 참 잘한 일이었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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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ntyson,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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