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하게 외로움을 선택했던 이유
이제는 혼자 서 보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묻지 않고 하나라도 스스로 선택하고 싶었다.
더 이상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맞냐고 누구에게도 묻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맞다는 길 말고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길에도 한 번 서 보고 싶었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도무지 모르겠는 날엔
지오디의 '길'이라는 노래를 지겹게도 듣고 다녔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딘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이 어딘지.
가사 하나하나가 내 마음과 지독하게도 닮았더라.
즐겨듣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영상속 한 마디 말이 내 마음속을 떠날 줄 몰랐다.
"어느 학과를 가야 하는지 어디서 일해야 하는지 그런 걸 왜 다른 사람한테 묻는지 모르겠어요."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내가 살고 싶은 게 바로 그런 삶이었으니까.
내가 가고 싶고 하고 싶고 해보고 싶은 것이 괜찮은 건지 누구에게도 묻지 않는 삶.
다른 사람에게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질문을 구하는 삶.
누군가에게 그토록 당연한 삶이 나에게는 지독하게도 어려웠다.
감히 선택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누군가에게 괜찮다고 인정받지 않으면 발을 뗄 자신조차 없었다.
그런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게 맞냐고 묻지않고 그저 흠뻑 느껴보고 싶었다.
실패하더라도 내 스스로 선택하고 싶었다.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아도 내가 좋아서 시작하고 싶었다.
다만 방법을 몰랐다.
도저히 몰라서 방황하는 마음을 오래오래 앓았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흘렀고, 내 나이는 마흔을 훌쩍 넘겨버렸다.
그런 시간을 오래오래 앓고서 세월이 지난 지금, 영상 속 말이 가슴속으로 훅 스며들었다.
내가 왜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모임에서 발을 빼고
누군가 이끄는 말들에 그렇게 귀를 닫고
이렇게 해보라며 권하는 사람들에게서 왜 멀어지게 되었는지
내가 왜 그토록 혼자를 자처했던지
왜 그렇게 고립을 선택해야만 했던지
왜 혼자만의 세상 속에서 빙빙 돌고 있었던지
철저하게 외로웠던 날들이 이해의 순간으로 거듭났다.
자립하고 싶었던 것이다.
혼자 서보고 싶었던 것이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나에게 묻고 구하고 싶었던 까닭이었다.
그렇게 혼자로 오래 머물렀던 시간을 지나
이제서야 조금씩 나 자신에게 질문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두렵지만 한 발짝씩 발을 떼게 되었다.
다른 이의 조언보다 나 자신의 말을 새겨듣게 되었다.
누군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게 훨씬 더 좋은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지금 나는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이길이 나에게 맞는 건지
나에게는 옳은 방향인 건지.
나는 그토록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던 것이다.
기대는 삶에서 자립하는 삶을 처절하게 원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