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수영하지.
알고 입사했다.
8개월이면 계약이 종료된다는 것을.
일을 하면서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맨날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저것밖에 안된다니. 안타깝다는 소리만 도돌이표처럼 들었는데.
이번 일은 달랐다.
계약직이긴 하지만 일을 할 때 날개를 단 듯 날아다녔고 또 길 땐 기었다.
치고 빠질 때를 알았다.
세상에나 귀 열고 눈뜨고 다니라는 소릴 자주 듣던 내가 눈치라는 것도 생겨서 은근히 드러나는 법을 깨달았다.
노력을 안 한 건 아니다. 일을 잘하려고 물속에서 우아하게 있지만 발재간을 끊임없이 놀리는 오리들처럼 가만있지 않았다.
일할 때 짬이 주어지면 업무공부를 하고, 선배들이 일하는 모습을 눈과 귀로 염탐했다. 어떻게 전화하는지, 어찌 민원 응대를 하는지. 남들은 한 번에 척하고 잘도 붙는다는 컴퓨터 자격증 공부도 여러 번 재 시험을 쳐가며 새벽눈 비비고 일어나해왔다.
그러면 뭐 하는 가. 누군갈 나를 오래 써주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인 것을.
계약직이긴 하지만 붙었다 하면 큰 사고 없이는 10년은 보장되는 근무자리에 면접을 봐도 떨어졌다.
면접에 갔더니 그녀는 말도 잘했다. 면접관들을 보며 미소 짓는 건 둘째치고 면접자인 나를 보고 웃었다.
나는 심지어 면접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그녀에게 하기도 했고, 그녀는 보란 듯이 나를 보고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망했다.'
이번에는 그래도 붙을 줄 알았는데.
역시 그녀가 붙었다.
나의 일 계약도 만료되었다.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뭐 하나.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또 뭐 하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나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하면 뭐 하나.
살고 붙음의 당락은 그날 하루 면접 당일날 결정된다.
나를 하루밖에 아니 몇십 분 동안 본 그분들의 눈길과 입김으로 생사가 오고 간다.
아쉬워하면 뭐 할까. 그게 답인데.
떨어졌지만 다시 도전하고 싶었다. 그럼 또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아니 3개월을 기다리고 몇 개월을 더 기다려야 한다. 공고가 언제 날지 모르니깐. 근데 꼭 하고 싶다. 나 진짜 잘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찾았단 말이야!
슬퍼하는 동안 위로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언니에게 전화했다. 차 한잔 할 수 있냐고. 돌아오는 대답은.
"정수야, 수영 한자리 남았는데 같이 할래?"
어머, 나 수영할 거라고 생각도 안 했는데. 갈 곳도 없는데 수영이나 해볼까. 한 달에 이만오천 원이면 괜찮지 않나? 돈도 없는데 여기에 시간을 써볼까. 그렇게 초급의 무리수를 버리고 더 상위반인 중급반을 선택했다.
2년 전에도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게 뭔지 찾는답시고 수영을 시작했다.
그렇게 3개월 남짓 수영을 하다가 관뒀다. 그때는 강사님이 하도 잘한다고 해서 나는 수영 신동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말은 인사치레였나 보다. 다시 들어간 수영강습은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뒷줄에 서계신 어르신의 개별 지도아래 수영은 시작됐다.
내가 피니쉬 라인에 도착하면 내 뒤에 선두가 처음 하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네 바퀴를 돌아야 하는데 그게 뭔가. 나는 수영 조금 하다 벌떡 일어나 거친 숨을 몰아쉬며 쉬고 뒤돌아서다 또 쉬었다.
음-파-음-파. 분명 2년 전과 똑같이 수영했는데 체력이 저질이 되었다.
배영을 하면 앞에 선 사람이 다음 차례 분의 손목을 슬며시 잡아 준다. 아 그런 매너도 있었나?
가만히 서있다가 선두로 섰던 남자분에게 싸대기를 맞았다. 얼굴이 얼얼했다. 미안하다고 콧방귀도 뀌지 않는 그 남자를 보며 '분노조절 잘해'였던 내가 '분노조절절대 안 됨'이 될뻔했다.
이러려고 수영을 시작했나. 이렇게 또 좌절하려고 수영을 내가 했던가.
아니 아니, 첫술에 너무 배부르려고 하는데. 뭣이 그리 급한디. 남는 게 시간인데.
일 그만두고 허하려던 마음에 작은 불꽃이 타올랐다.
수영, 내가 접수한다.
삼 개월 뒤를 두고 보자.
니가 이길지 내가 이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