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마지막을 병원에서 끝내고, 2024년도 병원에서 시작했다. 엄마의 왼쪽 유방에 아주 작은 암이 발견되어 수술을 해야 했다. 코로나 영향으로 상주 간병인은 한 명으로 제한되었고 내가 하겠다고 했다. 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내내 담담했던 엄만, 막상 수술일자가 다가오니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태어나 한 번도 칼을 몸에 대어 본 적이 없을 엄마였을테니 그럴 만도 했다. 종양의 크기는 작았지만 유방 전부를 없애고 복원까지 해야 하는 꽤나 큰 수술이었다. 나 또한 TV에서나 봤던 병동에서 생활해 보는 것, 간병 모두 처음이었다. 처음 먹어보는 병원 밥은 잘 넘어가지 않았고, 간호사 선생님이 나를 '보호자님'이라 칭할 때는 낯설게만 느껴졌다. 언젠가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엄마의 보호자로 불리게 될 날이 이렇게도 갑작스럽고 빨리 찾아올 줄 몰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병원엔 아픈 사람이 참 많았다. 입원 첫 날, 병실이 모자라 6인실로 배정되었다. 커튼이 모두 쳐져 있어 각기 다른 환우로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도,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었다. 커튼 사이로 오고가는 대화를 통해 대략적인 상황을 유추 해 볼 수는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환자는 가래 뱉는 소리, 짜증내는 소리 등으로 계속 신경 쓰이게 했다. 그 환자는 아이가 엄마에게 응석부리듯 간병인에게 계속 무언가를 요구하기도 했고, 신경질적으로 불평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가족으로 보이는 간병인은 그에 대해 단 한 번도 화나 짜증으로 응답하지 않았다. 환자의 모든 것을 그저 받아주었다.
수술실에 들어간 엄마를 병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간호사가 4인실 병실로 옮겨주겠다고 하여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옆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가래 소리로 밤새 잠을 방해하던 그 환자의 딸인 모양이었다. 애써 듣지 않으려 했지만 연명치료 중단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딸은 간호사에게 말했다. 엄마랑 더 있고 싶어요. 근데 엄마가 너무 힘들어 하니까... 딸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고 병실엔 고요한 적막만 흘렀다. 그제 서야 그 환자의 심각한 상태를 알게 되었고, 울컥하는 마음에 병실 밖을 나왔다. 지난 밤, 잠을 방해한단 이유로 다소 신경질적으로 귀를 막으며 표정을 찡그렸던 내 행동이 너무나 부끄러웠고, 그 환자와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 행동이나 표정을 그들이 알 수는 없었겠지만.
4인실 병실로 옮겼는데 수술이 끝났다는 알림 문자를 받고 한참이 지나도 엄마가 올라오지 않았다. 데스크에 있는 간호사에게 물어봐도 알지 못했다. 발만 동동 구르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찰나 수면 마취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엄마가 간호사들의 도움으로 침대에 누운 채 병실에 도착했다. 엄마의 잠든 모습을 이렇게 자세히 본 적이 언제였던가. 그 모습이 너무도 낯설어서 살짝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간호사는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자리를 떠났다. 초보 간병인인 나는 혹시라도 잘못될까 엄마가 더 이상 잠들지 않도록 깨우고 침을 삼키게 했다. 간호사가 일러준 대로 침을 삼켜야 한다고 계속 재촉하니 엄마가 짜증을 냈다. 평소의 엄마라면 그런 감정을 내보일 만한 지점이 아니었다. 그 순간 6인실의 신경질적이던 그 환자를 떠올렸다. 그 환자도 평소라면 온화하고 웃음 많은 수많은 중년의 여성 중 하나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것이다. 비록 얼굴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내가 커튼 너머로 느꼈던 그 모습이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병실을 옮기는 바람에 그 후 그 환자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가족들은 그들 어머니의 바람대로 연명치료를 중단했을지 모른다. 부디 하루 빨리 그들 모두에게 평안한 하루가 찾아오기를.
엄마가 병원에서 가장 힘들어 했던 건 주사였다. 수액을 맞기 위해서는 팔에 주삿바늘을 찔러야 했다. 불행하게도 엄마의 혈관은 잘 보이지 않아 엄마도 간호사도 모두 고생했다. 엄마는 아파서, 간호사는 아파하는 엄마를 보면서 혈관을 찾느라 진땀을 뺐다. 나중에는 주사만 전문으로 놓고 다니는 것으로 보이는 중년의 간호사가 왔다. 중년 간호사의 손에는 연륜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치가 있는 것 같았다. 여러 병동에서 SOS 요청 신호가 오면 돌아다니면서 환자와 간호사에게 모두 편안함을 선물해 주는 요정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덕분에 엄마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늘 TV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봐왔던 병원 시스템, 의사와 간호사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보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친절한 간호사 선생님들이 일명 ‘태움’이라 불리는 문화로 고통 받고 있는 게 사실일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고, 그들에겐 일일뿐일지 모르지만 밤새 돌아다니면서 환자들 상태를 체크하며 돌봐준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생각보다 남자 간호사 선생님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으며, 나보다 한참 어려보이는 간호사와 젊은 의사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내 나이를 실감하며 한탄하기도 했다.
대략 일주일 간 간병 생활이 끝이 났다.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살다보면 분명 또 있으리라. 그때는 내가 환자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으리라는 것을, 언젠가 이 간병 생활을 다시 하게 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늘 생각하고 있다. 이번엔 운이 좋게도 일주일뿐이었지만 한 달, 1년 이상의 병원 생활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누구에게나 그런 일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날 나에게 그런 일이 닥치더라도 나는 내가 담담하게 받아들였으면 한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원망하지 말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일이, 그저 나에게도 일어난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그리고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나의 마지막에 부디 주변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인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그 동안 많이 감사했다고, 말로는 자주 하지 못했지만 많이 사랑했다고, 먼저 떠나서 미안하다고. 인사하며 내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