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르레빈, 레이첼 헬러 『그들이 그렇게 연애하는 까닭』을 읽고
내가 이 책을 읽게 될 줄 몰랐다.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을 사랑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애정은 분명 사람을 많이 변화시키는 것 같다. 나는 연애와 사랑을 잘 해보고 싶어졌다. 그 동안 해왔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 자신을 탐구해 보고 싶어졌다.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MBTI만큼 애착유형이 유행하고 있다. 유튜브 숏드라마에서 남녀 사이 연애 에피소드를 다룬 이야기를 보면 대부분 남자는 회피형, 여자는 불안형으로 그려진다. 이 책은 그 유명한 애착유형에 대해 다루고 있다. 처음엔 단어만 들었을 때, 나는 걱정과 불안을 달고 살아 늘 긴장하며 사니 애착유형도 불안형일거라 생각했다. 책에 따르면 나는 회피형의 사람이다. 물론 어떨 때는 불안형과 안정형의 특성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나는 회피형의 사람이 가지는 행동 방식을 취해왔다. 나 스스로 회피형이라고 규정해 보진 않았지만, 나는 그런 특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그런 특성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 거라는 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늘 친밀한 관계로부터 도망 다녔다. 다른 사람과 깊이 친해지지 못하는 나 스스로를 연민하면서 언젠가 소울메이트가 나타날 거라며 파랑새를 찾아다녔다.
책을 읽고 나를 다시 돌아봤다. 아직 마음에서 정리되지 않은 그 친구를 떠올렸다. 그 친구와 급속도로 친해지던 시기에 나는 새로운 직장에, 그 동안 해본 것과 완전히 다른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연락하는 그 순간엔 인지하지 못했지만,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상황에서 그 친구와 연락을 하면 마음이 편했던 거 같다. 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이 생기면서 내 감정을 알아차렸다. 나에게도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나는 그런 욕구가 없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람이라는 것에 은근한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왔지만 없는 게 아니라 억눌렀던 것이다. 나에게도 타인에게 의지하고 싶고, 타인이 나에게 의지해 줬으면 하는 욕구가 있다는 걸 책을 통해 깨달았다. 그 친구에게 서툰 고백을 하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다시는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던 그 친구를 만났다. 내 통보만으로 관계를 단절하려 했던 행동에 대한 사과도 할 겸 그 친구의 마음도 들어야겠다 싶어 카페에서 만났다.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들어야 말도 듣지 못한 채, 어색한 공간을 메우기 위한 가벼운 말들만 주고받았다. 전화로 고백한 이후로 처음으로 대면하는 자리였다. 얼굴 보면서 어떤 얘기를 해야 할까, 불편하고 어색한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고민했던 내 노력이 무색하게도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이야기를 하는 그 친구를 보면서 생각이 복잡해졌다. 진솔한 대화를 거부하는 것 같은 태도에 겁이 났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이야기해 보고자 했던 내 용기가 조롱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저 빨리 해야 할 말들을 주고받으며 집에 가고 싶었다.
책의 말미에 솔직함은 관계의 묘약이라고 말한다. '효과적인 의사소통'이라는 표현이 계속 나오는데, 결국 여기서 말하는 건 현재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고, 어떻게 해줬으면 하는지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표현하라는 것이다.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 명확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정형이라면 아주 자연스럽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불안형이나 회피형에겐 의도를 갖고 노력하지 않으면 힘든 일이다.
친구에게 말했다. 앞으로 나에게 연락을 하지 말아달라고. 얼굴보고 얘기하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었으면 한다고. 전화 한 통으로 관계를 끊어 버리려 했던 이기적인 내 행동에 대한 사과도 했다. 내가 해 볼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내 볼 수 있는 용기는 다 내었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아쉬움이 남지 않을 거 같았다. 그 친구도 그랬으면 했다. 나에게 느꼈던 감정을 모두 얘기하고 아쉬움이 남지 않길 바랐다. 길고 긴 기다림 끝에 친구는 어렵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원하는 걸 말했다.
그 친구는 내가 제대로 다시 고백해 주길, 자신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길 바랐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나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좋아한다는 말로 다시 고백을 하긴 했지만 그 친구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진 않았다. 어이없어 하는 그 친구에게 나는 이미 감정정리를 끝냈다고 말해버렸다. 그 친구는 감정정리가 그렇게 쉽게 될 수 있는 거냐고 물었다. 사실은 하나도 쉽지 않았다고, 이번 만큼은 정말 마음이 불편하고 아팠다고, 그 짧은 시간에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없이 그저 웃기만 했다.
나는 그 친구와 더 친밀해 질 것 같은 상황에서 도망친 것이다. 늘 그렇듯 방어적인 태도가 나온 것이다. 책에 나온 회피형의 전형적인 특성이다. 그 친구와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과는 별개로 그런 상황이 발생할 것 같은 상황에 무의식적으로 그런 반응이 나온 것이다. 갈 길이 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안전기지가 되어주고 누군가의 안전기지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고자 하는 나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선,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나는 나의 내면을 돌아보는데 익숙하고 타인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니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떤 노력을 얼만큼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좀 더 솔직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내가 지금 너와의 관계에서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 자리에서 솔직하게 얘기했다면, 그 친구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아니, 그 친구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상관없는 일이다. 회피형인 내가, 그런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니 도전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이번에 실패하면 다음 기회에, 다음에 실패하면 그 다음 기회에, 계속 시도를 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연애를 하고 싶다면, 앞으로의 삶에 ‘나’라는 사람으로만 가득 채울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채우며 좀 더 만족스럽게 살아가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