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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샘 Feb 12. 2024

한국어 강사의 하루 10

붙으면 뭐 해!

운 좋게 초빙 교수라는 자리에 최종 합격했다. 그토록 바라던 일이고 기다렸던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선택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보다 보수가 많은가? 지금보다 시간의 여유가 더 많은가? 이 두 가지 질문에 모두 NO였다. 그래서 그 자리를 포기했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한 줄의 경력을 위해서는 그 자리가 필요하다고 일정 정도 나도 동의한다. 그 한 줄의 이력이 나를 끌어 줄 것이고 또 한 단계 레벨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하루 내내 고민했고 거절 의사를 전했다.


나는 이 일을 선택할 때 고려한 것이 있는데 첫째, 일에 치이지 않고 주도적으로 내가 시간을 이끌어 가기를 원했다. 그리고 둘째, 가르치는 일이 한 시간이 되어도 최선의 수업 준비를 해서 들어가겠다고 그 두 가지 약속을 지킬 수 없는 구조라는 것에 어찌어찌하면 굴러가기는 하겠지만 준비도 못한 채 수업을 하고 끌려 다니는 뻔한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살인적인 수업과 스케줄이 차 있는 구조였다. 그 외에도 할 일이 너무 많은 그래서 포기했다.  면접을 보다 보니 면접관의 뉘앙스에서 느껴지는 톤을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들의 불합리성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면접자인 내가 느끼게 되었고 네가 선택하면 좋고 안 하면 다른 이도 좋고 뭐 이런 느낌


두 개의 대학이 그러했고 나는 운 좋게 그것을 감지할 수 있었기에 면접장을 나설 때 안 되어도 괜찮겠다 했다. 그러면서도 왜? 면접을 보러 가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 세계를 잘 모르기에 부딪혀서 얻는 경험을 하기 위해서라고 답하겠다. 아직도 두 개의 면접이 남아있고 나는 그곳에도 갈 것이다. 그중에는 내정자가 있는 곳도 있을 수 있겠다.


면접  발표 준비를 하면서 나는 공부를 하게 되고 그것을 고민하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의미가 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선택받는 사람이 아니고 선택하는 사람이라고 조금 관점을 바꿔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떨어지는 것이 두려웠지만 이제는 하다가 안 되면 접을 수도 있는 여유를 가지려 한다.


건강이 나빠지면서  책상이 앉아 있으려 해도 앉아 있을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고 내가 노력하고 얻은 것들이 아까워도 건강을 해치면서 무리는 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재미있게 일할 수 없으면 그 일은 돈벌이일 뿐 나의 평생 직업은 아니기에


어학당 한 곳을 마지막 출근 날 아침에 마음속으로 정리했다. 출근 전까지만 해도 반반이었는데 출근해서 본 풍경은 미래가 없었다. 변하지 않겠구나 계속 엑셀과 씨름하고 네가 틀렸네 내가 맞았네 이러면서 정작 한국어 수업보다 다른 일에 힘을 빼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마지막날이다! 마음을 정했다.


 어느 강사님이 그 후련한 표정을 읽고 그날 오후 톡을 남기셨다. 지원 안 하실 것 같아 연락드린다고 어떻게 아셨냐는 질문에 얼굴에 해탈한 표정이 보였다고 하셨다. 얼굴에 모든 감정이 다 드러났구나,,, 연락을 안 하던 강사님이셨는데 연락을 주셔서 의외였는데 바로 들켰다.


매일 선택을 하고 매일 선택을 받고 있다. 강사라는 직업이 늘 머무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또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나는 그 양면을 잘 활용하고 있는가? 이제 면접철이 끝나간다. 당분간 방학이다. 그리고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


다시 돌아오면 나는 또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서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두렵기도 하다.  치열하게 고민했던 한 시즌을 마무리하면서 큰 변화 없이 또 한 학기를 마무리하고 있다.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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