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리샘 Nov 10. 2024

발표 울렁증

심각했던 그것이 이제는 괜찮아졌다.

오늘 한 대학의 사회를 끝내고 나니 안도감과 함께 예전의 나의 석사 시절이 생각났다. 석사 시절 매시간의 발표에 너무 힘들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늘 내게 힘들었던 발표와 질문의 시간들 이제는 그런 것들과 무관하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다시 발표라니! 석사 시절의 시작에서 들었던 생각이다.


수업을 받고만 싶은데 아시다시피 모든 대학원의 석사와 박사는 매시간 발표의 연속이다.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들어선 그 시절 많이 힘들었고 절망했었다. 별거 아니라고 여기면 되겠지만 실제 그것을 하는 이에게는 모든 게 두렵고 낯설고 그랬다.


그래서 항상 첫 번째 순서를 선택했고 발표를 빨리 끝내는 것이 최선처럼 살았었다. 게다가 피피티에 가득 쓴 것을 읽는 것은 발표가 아니라고 여겨 늘 그 내용을 모두 외워서 키워드로 연결해서 발표를 했고 그 힌트를 피피티 여기저기에 조금씩 남겨 흔적을 찾아내며 발표했었다.


어떤 날은 우황청심원을 먹고 발표했고 어떤 날은 커피를 먹지 않고 발표했다. 지금 이런 것들을 경험하고 있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많은 검색을 통해 이런 경험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찾고 또 찾았었다. 발표의 첫마디가 윙윙 거리며 목소리가 떨렸고 그것을 내가 인지하는 순간 더 떨렸다.


하지만 모두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답했다. 그 말을 전혀 신뢰할 수 없었고 미래까지 불투명했었다. "그래서 지금은 당신은 어떠냐"라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이젠 괜찮다"이다. 그게 가능할까 했던 일이었는데 이상하게 긴 시간을 지내고 보니 나름 괜찮아졌다.


그래서 이번 사회를 맡는다고 답하고도 걱정은 됐지만 한편으로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편한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오늘 그 과정을 천천히 되새겨 보니 지금까지 내가 본 면접과 발표의 양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연단에 설 때 실수할까 봐 걱정하느라고 항상  초초했었다는 사실과 그 이후에도 계속 그랬었고 지금은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내 마음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쉽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그 시절 잘하려던 마음이 아닌  이 일을 빨리 끝내자로 바뀐 것이 크고 그리고 잘하려는 마음을 버렸다는 사실이 홀가분하다. 나의 단점과 부족한 점을  굳이 말하는 것이 필요할까 했지만 늘 내가 불안정하고 부족한 사람이기에 그것을 극복하면서 성장했고 그 성장하는 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러한 부족한 사실을 극복한 내가 조금은 대견하다.


지금도 계속 발표를 하고 있고 앞으로도 연단에 설 것이다. 오늘은 그러한 과정에서 내가 몰랐지만 이제는 적어도 떨려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못 하지는 않는다는 것과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결국은 경험으로 치유된다는 선배들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기에 언급한다.


회피나 도망갈 수 없다면 맞닦뜨려야 한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피할 수 없어서 계속 발표를 하고 후회하고 창피해서 도망가고 싶었던 수많았던 경험을 통해 이제는 조금 안정된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고 나같이 부족한 사람이 된 거라면 다른 이들은 더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마음이 조금 후련했다. 하고 싶은 행동을 다 했고 후회도 없다. 더 잘하려고 노력했다면 조금 더 잘할 수 있었겠지만 그 욕심이 나를 더 힘들게 했을 테니 그것도 후회 없다. 내 목소리를 내가 들으면서 호흡을 조절하고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하려고 하는지를 되새기며 이야기를 했다.


만약 지금 이런 발표 울렁증 때문에 힘들어하는 예전의 나와 같은 이가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연습을 많이 하면 치유가 된다고 말하고 싶다. 저는 지금 여러분 보다 훨씬 심각했고 약을 처방받을까도 항상 고민했었다는 그 정도로 심각했다는 말을 해드리고 싶다. 많은 경험을 일부러 하고 나를 그 환경에 노출하면 좋아질 거라는 거 확신한다.


지금은 커피를 마시고도 발표를 하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집중하려는 노력 정도로 울렁증을 이겨내고 있다는 건 정말 내게는 놀라운 발전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전의 나에게 이런 미래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을 정도로 그렇다.


강사로 산다는 것은 발표가 생활이고 강의가 생활이다. 그래서 그것을 결국은 이겨내야 이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부단히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 중이다. 


학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매우 부족한 한 학기 마감을 앞두고 바쁜 시간이지만 이번 학기에 내가 부족한 점을 알게 되어 방학 동안 좀 더 보충해보려 한다. 그리고 절대 무리한 강의 일정을 잡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 학기였다.


--다음

작가의 이전글 지금은 토픽철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