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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lberrina Jul 02. 2023

10. 턴아웃과 인대

안정성과 가동성 사이의 균형

고관절은 볼기뼈의 움푹 파인 절구에 넙다리뼈의 동그란 머리가 쏙 들어가 있는 절구관절(ball-socket joint)로, 우리 몸에서 어깨관절 다음으로 가장 운동 범위가 넓다. 나의 턴아웃 각도는 좁디좁은 것만 같은데 정말 고관절의 운동 범위가 넓은 것이 맞는지 의문스럽기도 하지만, 다른 관절들은 대부분 운동 방향축이 1~2개인데 비해서 고관절은 3개의 방향축으로 움직이며 휘돌림까지 가능하니 운동범위가 상대적으로 정말 넓다고 할 수 있다.


고관절은 몸통의 무게를 오롯이 받아내야 하는데, 절구관절의 특성상 운동 범위가 넓다 보니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특별히 더 튼튼한 인대들로 칭칭 감겨있다. 볼기뼈와 넙다리뼈를 서로 붙여주는 강력테이프 인대는 크게 3종류가 있다. 
-엉덩넙다리인대 (Iliofemoral ligament = Y ligament, 거꾸로 뒤집어진 Y 모양을 하고 있어서 Y ligament라고 불린다.)
-두덩넙다리인대(Pubofemoral ligament)
-궁둥넙다리인대(Ischiofemoral ligament)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각 인대는 볼기뼈의 엉덩뼈(Ilium), 두덩뼈(Pubis), 궁둥뼈(Ischium)에서 시작해서 넙다리뼈(Femur)로 연결된다.


빨간색: 엉덩넙다리인대(Y ligament), 초록색: 두덩넙다리인대, 노란색: 궁둥넙다리인대
볼기뼈와 넙다리뼈를 잇는 고관절의 앞, 뒤 모습이다. 뼈와 뼈를 이어 붙여주는 흰색 강력테이프 인대가 고관절 주변을 꽁꽁 싸매고 있다.


위의 3개의 인대들은 볼기뼈와 넙다리뼈를 앞뒤로 빙 둘러서 탄탄하게 이어 붙여주고 있다. 강력테이프 인대들이 두 뼈를 단단하게 이어 주기 때문에 고관절의 안정성이 높아지고 탈구의 걱정 없이 움직일 수 있지만, 이 인대들이 너무 강력하면 유연성이 제한되고 턴아웃을 방해할 수 있다. 특히 엉덩넙다리인대가 턴아웃과 연관이 깊다. 위 그림에서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으로, 마치 거꾸로 뒤집힌 Y 모양처럼 생겨서 Y ligament라고도 불린다. 이는 고관절의 앞쪽에 붙어있는 강력테이프로서, 고관절의 외회전과 신전(다리가 뒤로 벌어지는 것, 즉 아라베스크)을 방해한다. Y lig. 가 더 팽팽해질수록 고관절의 외회전을 더 많이 방해하게 된다. 즉 다리를 뒤로 쭉 뻗은 아라베스크 동작을 할수록 턴아웃을 하기 어렵게 된다. 반대로 엉덩이를 살짝 뒤로 빼고 골반 전방 경사를 만들어서 고관절을 살짝 앞으로 접으면, 고관절 앞쪽의 Y lig. 가 느슨해지면서 턴아웃을 방해하는 힘도 약해진다. 


Physiopoint (https://www.physiopoint.ie/post/what-is-anterior-pelvic-tilt)


위 그림에서 빨간색으로 표시된 것이 Y lig.이다. 똑바로 서 있을 때는 Y lig. 가 팽팽한 상태지만, 엉덩이를 슬쩍 뒤로 빼고 골반 전방 경사 상태가 되면 Y lig. 가 느슨하게 늘어지게 된다. (물론 그림에서처럼 인대의 탄력이 확 없어지면서 늘어지지는 않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강조해서 표현했다.)
양손 바를 잡고 1번 포지션으로 천천히 워밍업을 할 때 슬쩍 엉덩이를 뒤로 빼고 골반 전방 경사를 만들면 왠지 고관절 외회전이 잘 느껴지는 것 같았는데 이게 바로 Y lig. 가 느슨해지면서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골반 전방 경사 상태에서는 척추가 위로 똑바로 서지 못하고, 턴아웃을 위한 엉덩이 안쪽 깊은 곳의 근육들을 제대로 쓸 수 없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턴아웃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부상의 위험이 커질 수 있으므로 이는 지양해야 한다. 다만 고관절 외회전의 느낌을 익히기 위해 워밍업 수준에서 살짝 엉덩이를 뒤로 빼고 천천히 동작을 연습해 보는 것은 충분히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담으로, 고관절의 여러 인대들로 인해서 골반을 나란히 한 상태에서 다리를 뒤로 들 수 있는 범위는 고작 10~20도 정도밖에 안 된다. 그 이상 높게 아라베스크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골반이 다리를 든 쪽으로 따라 올라가게 된다. 물론 아라베스크를 할 때 최대한 골반을 나란히 정렬하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완벽하게 골반을 나란히 한 채로 높이 다리를 드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 
고관절의 외회전도 방해하고, 아라베스크도 방해하는 Y lig. 가 하필이면 우리 몸에서 가장 강력한 인대다. 아라베스크를 한 다리의 턴아웃을 유지하는 게 유독 힘든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앞서 타고난 뼈구조에 의해 턴아웃의 대부분이 결정된다고 했는데, 인대의 유연성도 타고난 성질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은 선천적으로 인대가 좀 더 유연하고 부드럽고, 어떤 사람은 인대가 훨씬 더 질기다. 턴아웃을 위해서 Y lig. 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억지로 스트레칭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이는 오히려 고관절의 안정성을 떨어뜨리고 부상의 위험을 높일 수 있어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스트레칭을 하면 해당 부위 주변의 근육과 근막, 힘줄과 인대가 실제로 길어지면서 관절의 가동범위가 넓어지게 된다. 고관절 주변을 늘려줄 수 있는 사이드스플릿, 개구리 스트레칭, 나비 자세, 비둘기 자세 등을 통해 인대를 부드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스트레칭을 단기로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대다수의 현재 연구에 따르면 단기 스트레칭을 통해 관절가동범위가 일시적으로 늘어나게 되는데, 이때 최대 근력, 파워 및 근지구력의 감소가 동반된다고 한다. 반면 만성 스트레칭(강한 스트레칭을 10~15분씩 주 3~4회 반복)을 하면 유연성과 관절가동성이 향상되면서도 근력, 파워와 근지구력이 함께 증가한다고 한다. 따라서 고관절 인대의 안정성을 지키느냐, 가동성을 늘리느냐의 문제는 장기적으로 꾸준히 스트레칭을 함으로써 조금이나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턴아웃과 관련된 인대를 조금이라도 더 유연하고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꾸준히 스트레칭을 해줘야 하는 것이다. 비록 전공이 아니라 취미로 즐기는 발레지만, 더 안전하게 잘하려면 꽤나 큰 성실함이 요구된다. 일주일 내내 구부정하게 앉아있다가 하루 연습하러 가서 안 다치고 잘하기를 바라면 안 되는 것이다. 매일 생활 속에서 자세도 바르게 하고,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도 조금씩 해야 발레도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일상생활과 발레를 연결해서 선순환을 이루기를 소망하며 오늘도 조금이라도 운동과 스트레칭을 하겠노라 마음먹는다. ㅎㅎ



발레는 항상 인체가 설계된 정상 가동범위를 넘어서서 동작을 하게끔 한다. 이런 발레를 "건강을 위해서"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려면 겉보기 동작만 따라 해서는 안된다. 충분한 유연성이나 근력이 없는 상태에서 가동범위를 확 넘어서는 동작을 시도하면 다치기 십상이다. 발레 동작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욕심이 나서 무리할 때가 있는데, 이럴 때 단순한 근육통이 아니라 어딘가 싸한 느낌의 통증이 스쳐갈 때가 있다. 화려해 보이는 그랑점프를 뛰거나 높이 다리를 찼을 때 주로 이런 경험을 했다. 아차 싶어서 황급히 동작을 중단했지만, 화려한 동작이 주는 짜릿함 때문에 다음 시간에 또 은근슬쩍 시도하게 된다. "적당히"와 "짜릿함" 사이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는 지금, "과유불급"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기본기에 충실하자고 다짐해 본다. :)




<참고자료>

Keith L. Moore, Arthur F. Dalley, Anne M. R. Agur(2013) 무어 임상해부학. 바이오사이언스출판.

Turnout for Dancers : Hip Anatomy and Factors Affecting Turnout. by the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Dance Medicine and Science (www.iadms.org)

Anatomy 3D Atlas app. (Catfish Animation Studio S.r.l.)

아놀드 G. 넬슨, 주코 코코넨(2022) 스트레칭 아나토미. 푸른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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