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와 뼈 사이의 연결까지 알았다면, 그다음은 뼈 위를 덮는 근육에 대해 배우게 된다. 골학에서 배운 뼈의 복잡한 융기부위에 근육이 단단하게 붙어있다. 근육과 뼈를 이어 붙여주는 강력테이프는 힘줄(tendon)이다. 근육의 끝부분이 하얀색의 힘줄로 되어있고, 이 부분이 뼈에 단단히 붙어있게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킬레스건'은 몸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힘줄로, 장딴지근(비복근, gastrocnemius)을 발꿈치뼈(종골, calcaneus)에 붙여준다.
그림 1. 근육의 끝부분은 힘줄(tendon)로 되어있다. 힘줄은 흰색의 아교섬유로 구성되어 있어 뼈에 단단히 달라붙어 강력테이프의 역할을 한다.
근육을 잘 알기 위해서는 각각의 위치와 이름을 외우는 것이 첫 단계이다. 근육을 하나하나 잘 들여다보면 명명법에 나름의 규칙이 있다. 즉, 근육 이름만 봐도 그 근육의 모양이나 역할, 붙어있는 위치 등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명명법의 규칙을 이해하면서 차분하게 하나씩 뜯어보면 꽤나 흥미롭기도 하다.
1. 근육 이름은 주로 그 기능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새끼벌림근(소지외전근, abductor digiti minimi)은 말 그대로 새끼손가락을 벌리는 역할을 한다. 긴모음근(장내전근, adductor longus)은 허벅지 안쪽에 위치하며 다리를 안쪽으로 모으는 역할을 한다.
2. 긴모음근(장내전근, adductor longus), 큰볼기근(대둔근, gluteus maximus), 앞정강근(전경골근, tibialis anterior)에서 볼 수 있듯이 longus(긴), brevis(짧은), maximus(큰), medius(중간), minius(작은), anterior(앞), posterior(뒤)와 같이 근육의 길이나 크기, 위치를 나타내는 표현이 첨부되기도 한다.
3. 근육의 생김새와도 관련이 있다. 어깨세모근(삼각근, Deltoid)은 그리스어 delta(Δ)의 모양과 비슷해서 붙은 이름이고, 궁둥구멍근(이상근, piriformis)은 서양과일 배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서양배 'pirum'에서 유래했다. 한글용어로 순화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전혀 모양이 익숙하지 않은 "서양 배"라는 뜻 대신, 근육 본연의 위치를 나타내는 궁둥구멍근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림 2. Piriformis와 서양배의 모양이 비슷하다. 배나무 리(梨), 형상 상(狀)을 써서 이상근이라고 번역했다. 엉치뼈에서 시작해 궁둥구멍을 지나 넓다리뼈에 붙는다.
그림 3. 어깨세모근은 거꾸로 된 그리스 문자 델타처럼 생겼다. 몸통 앞쪽의 빗장뼈에서부터 위팔뼈를 지나 뒤쪽의 어깨뼈까지 이어지며 붙어있다.
4. 근육이 붙어있는 위치와 관련 있기도 하다. 목빗근(흉쇄유돌근, sternocleidomastoid)이 대표적으로, 복장뼈(흉골, sternum)와 빗장뼈(쇄골, clavicle), 꼭지돌기(유양돌기, mastoid)에 부착점이 걸쳐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다.
그림 4. 파란색-꼭지돌기(유양돌기, mastoid), 연두색-빗장뼈(쇄골, clavicle), 자주색-복장뼈(흉골, sternum) 각각의 뼈에 목빗근의 끝이 부착된다.
나름의 규칙이 있다고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그 규칙이 워낙 다양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결국엔 다 외워야 한다.ㅎㅎ 골학에서도 일단 무조건 외우다 보면 어느 순간 전체적인 구조가 머리에 들어오게 되었던 것처럼, 근육 역시 마찬가지다.
발레 동작을 떠올려보면, "움직임"으로 보이는 모든 동작은 특정 근육을 수축해서 관절을 움직임으로써 만들어내는 것이다. 근육은 하나 혹은 둘 이상의 관절을 가로질러서 뼈에 붙어있다. 해당 근육이 수축하면 그 근육이 지나가는 관절이 구부러지거나 펴지면서 동작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근육의 움직임을 알려면 근육이 정확히 어디에 붙어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근육이 붙는 곳은 이는곳(기시부, origin)과 닿는곳(정지부, insertion) 두 군데가 있으며, 상대적으로 몸통에 가까운 쪽을 이는곳이라 하고 몸통에서 먼 쪽을 닿는곳으로 분류한다. 이런 표현은 마치 근육이 이는곳에서 자라 나와서 닿는곳까지 가서 찰싹 붙는다는 느낌을 주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근육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쉽도록 편의상 이는곳과 닿는곳으로 나눈 것이다. 아래 그림을 보면, 위팔두갈래근(상완이두근, biceps brachii)과 위팔세갈래근(상완삼두근, triceps brachii)은 위팔뼈에서 시작해서 각각 노뼈와 자뼈에 붙어있다. 두 근육 모두 팔꿈치 관절을 지나게 된다. 즉, 이두근이 수축하면 팔꿈치가 구부러지고, 삼두근이 수축하면 팔꿈치가 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림 5. 이두근과 삼두근은 위팔뼈에서 시작해서 각각 노뼈와 자뼈에 붙어있다. 두 근육이 적절하게 수축하고 이완하여 팔을 구부렸다 펴는 폴드브라를 만들 수 있다.
뼈와 근육의 이름과 위치, 움직임을 머릿속에 힘겹게 욱여넣고 나니, 비로소 내가 해왔던 발레동작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동시에 의문점이 샘솟기 시작했다.
"어깨 내리세요"는 어깨뼈 아래 붙어있는 크고 작은 근육을 수축해야 하는구나, "갈비뼈 닫으세요"는 갈비뼈 사이에 붙은 근육들과 복부 근육들을 통해 흉곽을 수축해야 하는구나, "엉덩이 조이세요"는 엉덩이뼈에 붙은 큰볼기근을 긴장시켜야 하는구나, 열심히 춤추고 난 다음날 종아리 안쪽으로 잘게 잘게 뭉쳐있던 아련한 속근육들의 정체가 바로 이 녀석들(flexor hallucis longus, extensor digitorum longus, fibularis brevis, flexor digitorum longus)이었구나,...
"골반을 여세요"는 해부학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인가?, "5번 포지션에서 골반을 나란히"하는 것도 해부학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데?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또한 "날개뼈(어깨뼈)를 조여라, 벌려라"와 같이 선생님마다 약간 다른 디렉션을 주시는 경우 정확히 어떤 근육을 수축해야 하는 것이었는지도 궁금해졌다.
해부학을 배우는 내내, '왜 발레를 하면서 해부학을 공부할 생각을 한 번도 안 했을까?' 하는 회한이 몰려왔다. 물론 타고나길 잘하는 사람들은 해부학을 굳이 알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감각적으로 동작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발레는 신체를 아주 세밀하게 컨트롤해야 하는 예술인만큼, 몸을 잘 아는 것이 발레를 잘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더 나은 동작을 위해서도, 부상방지를 위해서도 그러하다. 해부학자만큼 세세하게 알 필요는 없겠지만 개괄적으로 뼈대와 인대, 골격근을 아는 것은 내 몸의 움직임을 이해하는데 매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해부학 책을 쭉 공부하는 것도 물론 도움이 되지만, 3차원 구조물을 이해하는 데에는 스마트폰 어플이 도움이 많이 된다. 유료어플의 퀄리티가 확실히 좋긴 하지만, 무료어플 중에도 좋은 것들이 많으니 심심풀이로 한번 들여다보는 것도 추천한다. ㅎㅎ
"이와 같은 예술 형식의 미학이 결코 과학적 분석에 의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Jacqui Greene Haas (2011) 『댄스 아나토미』] 해부학을 들여다보는 것은 궁극적으로 발레를 잘, 안전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기계론적으로 분석하는데만 치중해서 춤의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 무엇이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함을 되새기며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어본다. :)
<본문삽입 이미지 출처>
그림 1. https://gmb.io/tendon-strength/
그림 2. https://www.graychiropractic.ca/project/piriformis-syndr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