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집이 없어> 속 김마리와 공민주
넌 어디든 갈 수 있어.
네가 조금만 더 크면 네가 네 집도, 동네도, 같이 살 사람도 고를 수 있어.
와난, <집이 없어> 54화 중
고등학생 김마리는 아빠, 오빠와 함께 산다. 엄마가 집을 나간 열 살 때부터 마리는 매일 아빠와 오빠가 돌아올 때를 맞춰 밥을 차려 놓는다.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를 한다. 오빠는 집에 돌아오면 방에 틀어박혀 게임을 한다. 그럼 마리가 오빠에게 간식을 가져다준다. 집 청소도, 빨래도 마리 몫이다. 마리가 오빠에게 '대들면' 오빠는 욕설을 하고 마리를 때린다. 아빠는 그걸 둘이 싸운다고 표현한다.
마리에게 집은 늘 할 일이 쌓여 있는 곳, 눈치 볼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집의 정의가 마음 편히 쉬는 곳이라면 마리에겐 집이 없다. 마리에게 집은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지만, 벗어나기가 쉽진 않다. 마리가 기숙사에 들어가겠다고 말하자 오빠는 마리를 이기적이라고 비난한다. 아빠 역시 오빠와 같은 편이다. 둘의 반대로 기숙사에 못 갈 위기에 처했을 때, 마리는 쉽게 기회를 포기하려 한다. 유일하게 자신의 편이 되어 주던 고모에게 "거긴 내가 갈 곳이 아니었어"라고 말하는 마리의 눈에 생기가 없다. 하지만 고모는 마리의 체념을 가만 두지 않는다. 마리의 뺨을 붙들고 마리와 눈을 맞춘 다음, '넌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힘주어 답한다. 이내 마리의 눈에서 눈물이 퐁퐁 솟아난다. 마리는 결국 기숙사에 들어간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갑내기 공민주는 그림처럼 화목한 집에서 자랐다. 맞벌이 부부인 부모님은 민주를 고이고이 키웠다. 사랑 듬뿍 받고 자란 외동딸 민주는 살면서 딱히 집안일을 해본 적도, 남의 눈치를 본 적도 없다. 남에게 다가가는 데 스스럼이 없고 늘 자신감이 넘친다. 그래서인지 늘 주변에 사람이 많다. 언제나 사람들의 중심에서 사랑받는다. 그만큼 떠나는 것도, 떠나보내기도 쉽다. 남이 무슨 말을 해도 쉽게 상처를 받지 않는다. 구김살 없이 이기적이며 행동에 주저함이 없다. 이런 민주 성격의 반쯤은 엄마 엄수현의 노력 덕이다. 너무 어릴 때부터 엄마의 유일한 기댈 곳 역할을 하며 지치고 상처받았던 수현은 자신의 딸만큼은 그렇게 키우지 않으리라 다짐했고, 그 다짐을 지켰다. 집안의 어떤 어려움도 갈등도 민주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남편과 이혼을 결심하고 별거를 시작할 때까지도 민주는 둘의 상황을 몰랐다.
민주는 마른하늘의 날벼락같은 부모의 별거 소식을 알게 된 날도 명랑하게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한다. 엄마가 오피스텔을 구해 나간 뒤 개판이 된 집에 홀로 있는 아빠를 챙기겠다며 엄마 몰래 기숙사에서 짐을 싸 나오는 데도 망설임이 없다. 방과 후엔 칼 같이 집에 가 유튜브 영상을 보며 평생 해 본 적 없는 요리를 하고 집을 치운다. 힘이 된다는 아빠의 말 한마디면 민주의 얼굴에 뿌듯함이 차 오른다.
<집이 없어>(와난, 2018~현재, 네이버웹툰)는 각자의 사연으로 집이 없는 청소년들이 집을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다. 서로 다른 아이들의 아픔은 집의 부재 또는 위기를 통해 교차한다. 미성년인 아이들에게 집의 부재란 부모의 부재와 곧장 이어진다. 글자 그대로 부모가 없는 이도, 없으니만 못한 부모가 있는 이도 있다. 부모를 포함한 원가족이 버거운 짐이자 족쇄로 다가오는 이도, 가족의 울타리가 깨어질 위기에 처한 이도 있다. 이 글에서 살펴볼 마리와 민주의 사례는 각각 가족이 짐이자 족쇄인 경우, 울타리가 깨어질 위기에 처한 경우다.
마리와 민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극이다. 성격, 성향, 외모까지 맞는 게 하나도 없다. 신문부 부장과 방송부 부장으로 만난 둘은 부서와 부실을 합치는 과정에서 이름과 자리를 두고 힘겨루기를 하지만, 마리는 민주에게 완전히 구워삶아진다. 부장직, 부서명, 부실까지 민주의 방송부에 홀랑 빼앗긴 후부터 둘은 앙숙이 되고, 마리는 모든 걸 가진 민주를 질투한다. 이 '모든 것'에는 민주의 완벽한 가정도 포함된다. 어쩌다 보니 민주네와 함께 식사를 하고, 민주 엄마 수현과도 말을 섞으며 수현을 동경하게 된 마리는 민주가 한없이 부럽다. 비뚤어진 부러움은 민주의 부모가 별거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쟤네 집도 완벽하지 않아'라며 기뻐하는 마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삐딱함이 얄팍해 아빠의 뒤치다꺼리를 하러 기숙사를 나가는 민주의 결정을 모른척하지 못한다. 모두 '힘들겠다', '대단하다'라는 소감으로 마무리할 때, 마리가 "너 미쳤어?"라며 쏘아붙이는 장면은 무조건반사에 가깝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마리는 곧장 수현에게 민주의 결정을 일러바친다.
수현에게 붙잡혀 별거 중인 오피스텔로 간 민주는 너무나 깨끗한 엄마의 공간을 보며 마음이 복잡하다. 그래도 아빠에게 갈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아빠는 엄마와 달리 마음이 여려서 혼자 너무 힘들어하니까, 그래서 집도 엉망이고 밥도 안 챙겨 먹으니까, 자기가 도와줘서 그나마 나아진 거니까, 자기가 아빠의 기댈 곳이 되어 줘야 하니까, 그게 가족이니까. 그리고 민주의 이런 선택을 작품은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 네가 찾아와서 이것저것 챙겨드리니까 너희 아빠가 좋아하시지? 처음엔 네 스스로가 기특하고 뿌듯할 거야. 내가 가족을 잘 챙겨주고 있고, 우리끼리 잘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할 거야. 근데 그런 생활이 계속되면.. 그건 네 일이 되고, 네 책임이 되고.. 그런 삶이 당연한 게 될 거야. (…) 너희 엄마가 널 말리는 데엔 다 이유가 있어.. 나는 그때 누가 말려줄 상황도 아니었고.. 말린다고 다른 길이 있는 것도 아니었어." - 95화 중 마리의 대사
"엄마 아빠 일을 계속 비밀로 한 건.. 네가 지금처럼 가족 챙긴다고 무리할까 봐 그런 거야. 그런 식으로 하루 이틀이 일, 이년이 되면..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당연한 일상이 되거든.. 엄마는 경험자니까 네가 그걸 시작도 하지 말았으면 하는 거야. 너와 아빠의 관계를 위해서도 안 하는 게 맞아." - 95화 중 수현의 대사
마리와 민주의 상황은 매우 다르지만, 가부장제 아래서 둘에게 공통으로 작동한 억압이 있다. 성역할 고정관념에 따른 가사와 돌봄 노동이다. 그리고 고정관념의 무서움은 부자연스러운 일을 자연스러워 보이게 한다는 데 있다.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까지, 마리는 열 살부터 홀로 가사를 책임지던 상황이 억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민주 또한 마찬가지다. 민주가 아빠의 집을 치우고, 아빠가 먹을 밥을 차리는 일들은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다. 문제는 그게 집을 지키기 위한 민주의 눈물 나는 노력이라는 데 있다. 작품은 민주의 '노력'과 수현・마리의 '방해 공작'을 통해 집이 위기라고 느낄 때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보여주고, 지키고자 하는 집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 그리고 딸이었던, 지금은 엄마인 수현을 통해 답을 보여준다.
민주에게 늘 좋은 얘기만 전하던 엄마 수현이 처음으로 어렸던 자신의 얘기를 꺼낸 날, 엄마의 해결사이자 보호자 노릇을 하느라 힘들었던 수현의 이야기는 민주를 향한 부모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며 끝난다. 그리고 그제야 펑펑 우는 민주를 다독이는 수현의 몸짓과 말은 작품의 메시지를 그대로 담고 있다. 집이 꼭 결혼이나 이혼으로 시작하거나 끝나지는 않는다는 사실, 그럼에도 아이에겐 그게 무섭고 힘든 일일 수 있다는 것, 그때 어른이 보여야 하는 태도와 자기 삶을 아이가 해결하게 두어선 안 된다는 당부 같은 것들 말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 엄마가 다 알아서 할게.. 아빠 걱정도 너무 하지 마.. 원래 크면 다들 바쁘게 사느라 집 청소도 미루고, 밥도 자주 거르고, 숙취로 고생도 많이 하고 그래.. 상담받는 것도, 약 받아먹는 것도 흔한 일이야. 다들 그렇게 살아.. 괜찮아.. 괜찮아. 이혼한다고 왜 우리 가족이 끝난 거야? 이것도 다 잘 살자고 하는 짓이지. 엄마도 아빠도 인생 대충 살 거였으면 오히려 이혼 안 했을 걸. 지금보다 더 잘 살아보려고.. 새 출발 하려고 이혼하는 거야." - 95화 중 수현의 대사
이처럼 민주는 집안에 수현이라는 어른이 있고, 그 어른이 민주를 단단하게 지키며 받쳐 준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택하고, 책임지며, 그 안에서 아이를 보호하고 사랑하는 어른. 그런 어른이 누구에게나 부모의 형태로 주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때때로 집 안에서 집을 빼앗긴다.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나가야만 한다. 이들에게 집을 빼앗는 건 미디어에서 조명하는 빈곤이나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데 나올 법한 폭력 범죄가 아니다. 아주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관념 속에서 더없이 상냥하게 전해지는 종류의 폭력이다. 아빠와 오빠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게 힘든 줄 모르고 살았던 마리, 아빠를 향한 연민과 집을 지켜야 한단 강박에 본인의 충격과 불안은 돌보지 못했던 민주, 피해자인 엄마를 지키고 달래는 데 급급해서 자기가 어린 줄도 몰랐던 수현의 지난날은 모두 일상적이거나 상냥한 폭력 속에 놓여 있다.
앞서 마리에게 ‘넌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전한 마리의 고모는 가장 직접적으로 이 작품의 메시지를 전하며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 캐릭터다. 부모가 아닌 위치에서, 마리를 자기 집에 데려가는 게 아니라 마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돕는 방식의 지지는 어쩌면 <집이 없어>를 관통하는 메시지일지 모른다. 작품이 다양한 아이들의 사례를 통해 줄곧 전하는 집의 의미와 어른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작품 속 집은 물리적 공간보다는 가족의 의미에 가깝다. 여기서 가족은 민법 제779조가 말하는 혼인과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아니라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의미한다. 가족이 이런 관계로 작동할 때에야 집은 마음 편히 돌아와 쉴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그런 관계와 공간을 갖지 못한 아이들, 그래서 집 없이 집에 묶여 있는 아이를 발견했을 때 어른이 해야 할 역할은 그리 거창한 게 아니다. 너는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어른의 삶을 네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고, 너는 아직 어리다고, 그러니 '가족' 때문에 네 인생을 뒷 순위로 두지 말라는 말 한마디를 건네면 된다. 가족도, 집도, 네가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선택지를 주면 된다. 그 후, 함께 선택지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민의 역할을 고민하면 된다. 실현의 방식은 제도의 확장이나 변화일 수도, 사적인 공동체의 양적 증가일 수도, 선택지를 늘리는 상상 자체일 수도 있다. <집이 없어>는 그 상상을 정교하고 따뜻하게 풀어내며 독자에게도 과제를 전한다. 누구나 어디든 갈 수 있도록, 가족을 선택하고 집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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