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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금만사 Aug 07. 2023

로제타석의 진짜 비밀

나폴레옹은 1799년 이집트 침공에서 로제타석(Rosetta Stone)을 발견한다. 이 돌은 처음 진지 구축 주춧돌로 쓰려 하였지만 고고학자들이 가치를 알아보고 연구를 시작했다. 로제타석은 기원전 200년경 이집트 신관 문자, 민중 문자, 그리스어 3개 언어를 역사를 기록한 돌이다. 


이 문자의 의미를 해독하고 비밀을 밝히는 데 23년이 걸렸지만 로제타석은 이집트의 역사를 환상에서 현실로 만든 위대한 발견이었다. 로제타석은 신비에 싸여있던 이집트어를 해독하여 이집트 역사의 비밀을 밝혀내는데 기여했다. 로제타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문이 생겨난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을까? 어떤 내용이기에 3 종류의 언어를 사용하였을까? 파피루스 지를 사용할 수 있었음에도 왜 힘들게 화강암에 새겨 넣었을까? 이집트에서 그리스어가 사용된 이유는 무엇일까? 확실한 것은 로제타석이 당시 중요한 내용을 기록하였을 거라는 것이다. 


                                                        ***

알렉산더 사후 이집트를 차지한 프톨레마이오스는 기원전 305년 이집트의 통치자가 되었다. 왕조는 기원전 190년 프톨레마이오스 5세에 의해 계승했다. 그러나 왕은 5살로 어린 나이였고 부모는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사망했다. 어린 왕을 위해 섭정이 실시되었으나 섭정은 무능했고 이집트는 마비되었다. 


과도한 세금은 백성을 괴롭혔다. 국가는 체납자의 자산을 몰수하고 감옥으로 보냈다. 감옥은 만원이었고 농부가 없는 마을은 황폐해졌다. 나일강 제방은 보수가 시급하였으며 홍수는 비일 비재 했다. 군인과 노동자들은 반란을 일으켰으며 내전은 10년 이상 계속되었다. 이 틈을 타고 그리스 셀레우코스 왕조가 이집트를 침공했다.  


성인이 된 프톨레마이오스 5세는 혼란 속에서 즉위하면서 현실과 타협했다. 그는 ‘평화의 선언’을 통해 반군을 사면했다. 감옥을 열어 죄수를 석방하였고 조세 채무를 탕감하고 압류된 재산을 돌려주었다. 폭정을 피해 도피한 사람도 돌아오면 재산을 돌려주었다. 왕이 조세 반란과 타협하면서 이집트에 평화가 돌아왔다. 


그는 이러한 평화를 지속하기 위해 사원에 조세 면제라는 특권을 주었다. 이집트의 사원은 ‘평화의 선언’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보게 되었다. 사원은 예배당일 뿐 아니라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면세된다는 것은 사람들이 바친 제물 이외에도 사원이 소유한 토지와 생산물이 면세되는 것을 말했다. 그는 사원의 지지를 얻어 민심을 회복하고자 엄청난 특혜를 주었다. 


사원은 이전에도 면세특권을 누리었으나, 아시리아, 페르시아, 그리스가 지배하던 이전 500년 동안 면세특권을 상실했었다. 면세특권을 회복한 사원은 이를 영구히 기록하는 비석을 사원 입구에 세웠다. 이 비석이 로제타석이다. 로제타석은 예의상 프톨레마이오스 왕에 대한 칭송으로 시작하고 있지만 사원의 면세 특권을 영구하게 하기 위해 새긴 돌이다. 


로제타석은 사원이 면세라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세 가지 언어를 사용했다. 일반 군중들을 위한 민중 문자, 사제들을 위한 신관 문자, 그리스 세리들을 위한 그리스어이다. 사원은 면세특권을 대내외에 공포하고 세리의 권력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비싼 화강암석을 세웠다. 사원은 권위를 더하기 위해 로제타석을 왕의 동상 옆에 세웠다. 세리의 출입을 막기 위해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팻말까지 세웠다. 로제타석은 사원의 면세특권을 영구적으로 만들기 위해 세워진 돌이다. 


로제타석은 기원전 200년 이집트의 정치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후대에 사람들은 프톨레마이오스 5세가 현명한 군주라고 칭송한다. 그는 ‘평화의 선언’으로 농민들을 비참한 세금에서 구하고 경제를 살렸으며 내전을 종식시킨 훌륭한 군주라고 한다. 군주들은 자비롭기 위해 세금을 감면하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더 많은 세금을 원한다. 프톨레마이오스는 급박한 상황에서 어쩔 수없이 현실과 타협한 것이다.


로제타석은 현실적으로 이집트가 높은 세금으로 파탄지경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당시 이를 기록하는 청원들이 많이 남아있다. 청원은 세리가 부당하게 부과한 높은 세금을 낮추어 베풀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감옥에 있는 납세자를 석방해 달라는 청원도 있었다. 감옥에 있는 체납자를 사면하면 그가 앞으로 세금을 낼 것이므로 이는 왕에게 이익이라는 현실적인 내용도 있었다. 


이집트 왕은 세리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탄원을 받으면 세리에게 공개서한을 발송했다. 왕은 모든 납세자에게 공정한 세금을 거두는 것을 희망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는 백성들에게 널리 알렸다. 가혹한 명성을 가진 세리 한두 명을 공개적으로 처형하기도 했다. 여기서 세리는 정치적 희생양이었다. 


이는 왕이 백성 편에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흉흉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전략이었다. 백성들은 세리가 앞으로 공정하게 과세할 것이라 믿게 된다. 그러나 왕은 세리에게 미납된 세금을 잘 징수하도록 강요했다. 결국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왕은 텅 빈 국고와 폭발 직전의 민심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이다. 왕이 할 수 있는 일은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것이었다. 


                                                                      ***


로제타석에서 보듯이 조세 사면은 납세자의 불만을 달래는 수단이었다. 조세 사면은 과거 정치적 편의를 위한 자주 남발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왕은 즉위하면 민심을 얻기 위해 조세와 부채를 사면했다. 이는 이자율을 높이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대부업자는 사면령이 발표되면 채권을 회수할 수 없기 때문에, 곡식에 대해서는 33%, 은(銀)에는 20%의 높은 이자를 요구했다. 


신명기(Deuteronomic) 율법은 7년마다 사면을 하도록 하고 있으며, 레위기 축제 율법은 50년마다 재산을 원소유자에게 돌려주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율법은 고대 이스라엘의 토지 및 금융 시장을 마비시킬 수 있기 때문에 현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전성기 로마는 공정한 조세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로마의 평화는 로마의 조세 제도에 의한 평화라고 할 수 있다. 로마 말기 황제는 조세 채무의 탕감을 요구하는 청원에 시달리게 된다. 하드리아누스(Hardrian) 황제는 서기 118년, 50년 후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황제는 조세를 대대적으로 사면했다. 이들 황제는 미납된 조세를 징수할 가능성이 없게 되자 오히려 축제 분위기를 만들고 사면령을 발표했다.


쇠락하는 국가의 사면은 더 많은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조세 사면은 앞으로 세금을 잘 내어 달라는 화합의 제스처이지만 로마 귀족들은 조세 사면을 합법적인 탈세 도구로 활용했다. 로마는 패망하기 전 서기 401년, 411년, 434년, 445년, 450년 및 458년 조세 사면을 발표했다. 이는 로마가 재정수입을 제대로 징수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면의 정점은 모든 조세 서류에 대한 공개 소각이다. 황제는 정치적 화합을 강조하기 위해 기록을 소각하는 행사를 만들고 참석했다. 사면은 누적된 체납액에 대해서도 이루어졌다. 타락한 귀족과 대지주는 사면령을 이용하여 의도적으로 조세를 체납하고 로비로 새로운 사면령을 만들어냈다.


                                                            ***


영국은 조세를 사면하고 그 기록을 두 번 소각했다. 첫 번째 소각은 1404년 프랑스와 백년전쟁에서 도입한 세금 기록이었다. 두 번째 소각은 1816년 나폴레옹 전쟁에서 도입한 세금 기록이었다. 소각하고자 하던 기록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소득세 기록이었다. 


영국에서 두 번째 소득세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군비를 조달하기 위해 1799년 부과되었다. 한번 도입된 세금은 잘 사라지지 않는다. 소득세는 1815년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에 승리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1816년 소득세 폐지는 의회에서 가장 큰 환호와 이를 축하하는 성당의 종소리로 장식되었다. 


소득세는 주관적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싫어했다. 의회는 시민들이 증오하던 소득세의 모든 기록을 소각하도록 명했다. 재무장관은 소득세 기록을 모아 불태우는 거대한 모닥불을 지폈다. 


소각된 기록은 말이 없다. 아쉬운 것은 귀중한 자료가 소실되었다는 점이다. 조세의 역사는 문명의 모든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무엇이 과세되고, 얼마가 과세되는 것은 당시 사람들의 활동과 가치를 말해준다. 면세된다는 것 또한 정치적 영향력을 말해준다. 이는 지금과 다르지 않다.


근대국가 이전 인류는 다수의 지식을 잃어버렸다. 구텐베르크(Gutenberg) 이전 발명가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정보저장 기술이 없었다. 발명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으나 기록할 장소가 한정되었다. 중요한 발명이 상실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과학적 발명 또한 후퇴하는 경우가 있었다. 소각된 조세 기록이 아쉬운 이유이다.



이 글은 "세금이 공정하다는 착각"에 수록되지 않은 내용입니다. 



참고 자료

For Good and Evil (Charles Adams, First Madison Books Edition 2001), Augustus: Master Tax Strategist, page 105, Rome Falls: Was it tax evasion, page 122, 

Fight Flight Fraud (Charles Adams, Euro-Dutch Publishers,1982), Augustus: Master Tax Strategist, page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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