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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꿈 Jul 31. 2023

금쪽이는 누구인가

자기연민이 삭막한 사회를 만든다

30대 초중반의 나이임에도 주변 또래인 지인들은 아기가 아직 없다. 이 나이에 아기를 갖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 적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을 또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일부는 어떻게 낳고 키우는지 실질적인 방법을 묻는 한편, 일부는 아기를 갖고 출산한 것에 대해서 어려운 결정을 했다는 식으로 말한다. 또 일부는 삭막하고 험난한 세상에 어떻게 아이를 낳고 키우냐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더 나아가 기후변화와 전쟁, 질병 등등 거시적인 이유들을 말하며 앞으로의 불행한 미래에 자손을 살게 하는 '출산'이라는 선택에 물음표를 던진다. 오히려 나는 묻고 싶다. 그런 거시적인 이슈들을 대면서까지 진행할 수 있는 인생의 선택은 몇 개나 될까. 


우리나라는 경쟁이 치열하고 유행도 빠르다. 타인에 대한 평가도 쉽게 내리고 비교항목도 참 세세하다. 소위 유행하는 주류(?)를 따르다 보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회사를 다니는 시작한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재테크가 유행이 아니었다. 다들 열심히 해외여행을 다니고, 차도 사고, 명품도 샀다. 갑자기 코로나 시기가 오면서 재테크가 유행이 되었다. 재테크로 돈을 벌자, 돈을 번 사람이든 못 번 사람이든 다들 골프를 치고 테니스를 치고 산악회를 구성했다. 이러한 유행들을 온전히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은 몇 퍼센트일까. 이러한 유행을 부담 없이 쫓아가기 위해서는 '아이'라는 존재가 방해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고 아직 어리고, 자기 계발을 해야 해서 아기를 키우는 것은 어렵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실제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생의 새로운 결정을 유보하기 위한 핑계인지 구분하기가 참 어렵다. 실제로 자기 자신을 어리고 미숙하고 연약한 존재로 생각한다면, 사회구성원인 성인이 저런 생각을 하는 것도 큰 문제이다. 이러한 자기연민이 묻어나는 말들을 들을 때, 나는 더 이상 그 주제로 대화를 하지 않는다. 애초에 전제 자체가 잘못된 상황에서 그 사람에게 나의 출산과 육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자기연민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 자신만을 가엾게 생각한다. 타인에 대한 연민, 더 나아가 아이에 대한 측은지심을 품기 어렵다. 육아에는 아이에 대한 측은지심이 필요하다. 배고파도 스스로 먹지 못하는 서러움, 이동의 자유가 없는 데에서 오는 불편함, 표현의 미숙함에서 오는 짜증, 육체를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실수와 창피함. 이 모든 것들이 아기가 갖는 안타까운 상황이며 이에 어른들은 아기에게 측은지심을 갖고 배려해야 한다. 그러나 (아기로 인해) 자신이 겪는 불편함에 대해 우선시하며 자기연민을 갖는 어른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그런 어른들이 구성하는 사회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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