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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장 Jun 17. 2024

당신께

우리 함께 인생이모작 행복하기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요즘 비둘기 집을 기타 연주로 배우고 있어요. 노랫말이 참 좋아 마음에 와닿네요. 퇴근 후 집수리 배우러 다닌다고 설레하는 당신 모습을 보며, 산새들 노래 흥겨운 고향 부모님께서 사셨던 헌 집수리 해서 덩굴장미 심어 올리고, 주말이면 시골집 툇마루에 나란히 걸터앉자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여유와 낭만을 맘껏 누리는 행복한 인생 2 모작을 그려봅니다. 봄날의 순풍과 여름날의 작열했던 뙤약볕과 긴 장마와 폭풍우를 함께 헤쳐 나간 당신과 함께 이기에 나의 인생 이모작 준비는 더 설레고 부풀며 희망찹니다. 

  

깐깐하고 책임감 강하며 완벽을 추구하는 재미없는 내가 느긋하고 여유로운 당신을 만나 우리로 살아가기는 서로 매우 버거웠지요. 아주 사소한 것부터가 전쟁이었어요. 식성이 맞지 않아 외식 메뉴를 고를 때는 당신은 탕을 고집했고, 나는 찜을 고집하며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집에서 된장찌개에 밥 먹읍시다. 한 적도 있지요. 출근 시간 제일 먼저 미리미리 출근해야 하는 나는 근무 시간에 딱 맞춰 출근하는 당신을 이해 못 했고, 조금 일찍 일어나 일찍 나가라고 아침부터 부단히 도 잔소리하며 깨우고 싸웠지요. 어느 날부터인가 포기하고 나니 알아서 잘하는 것을 왜 그리 싸우며 잔소리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구려!

   

밀밭 곁만 지나가도 취하는 내가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당신 때문에 매일 밤 잠 못 자고 술 먹는 당신을 기다리다 보면 어김없이 12시가 넘어서야 게슴츠레한 눈동자로 반은 벌어진 입, 중심 잃은 다리를 흔들거리며 똑같이 닮은 꼴의 한, 두 사람을 꽁무니에 달고 들어와 호기롭게 술상을 차리라 요구하는 당신, 이해할 수 없고 화가 나 다음날은 어김없이 못 살겠다 소리치며 폭풍 잔소리가 시작되었지요. 그러나 쉽게 고쳐지지 않던 당신의 술버릇이었지요. 

  

언젠가는 새벽 동이 트도록 뜬 눈으로 당신을 기다리는데 술집에서 술 취한 당신을 데려가라는 전화를 받고 부끄럽고 자존심 상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답니다. 이혼하자 소리치며 목 놓아 울기도 했지요. 그때는 정말 이혼할 결심으로 아들아이에게 물었네요 “엄마 아빠 이혼하면 누구랑 살 거니?” 하니 어린 아들 녀석 하는 말이 “전 한 사람은 필요 없어요, 두 분 다 필요해요” 그 말 때문이었는지 그때도 위기를 잘 넘겼지요. 

 

그 뒤로도 늦은 시간까지 들어오지 않는 당신에게 전화를 걸었죠, 전화를 받고 술에 취해 끊지도 않은 상태로 술집에서 여자들과 노닥거리는 시답잖은 시시껄렁한 대화를 당신의 전화기 너머로 다 들으면서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은 극에 달했고 더 이상 존경이나 사랑 따위는 사라졌지요. 구제 불능이란 생각에 당신을 무시하기 시작했고, 언젠가 아들만 독립시키면 당신과는 이혼이다. 하고 마음속으로 벼르고 별렀었지요. 

  

그러다 아들 녀석 군에 입대하던 날 연천 훈련소에 아들을 떼어 놓고 돌아오는 차 속에서였지요. 뉘엿뉘엿 서산을 넘는 해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리는 내 등을 다독이며 “내가 있잖소” 하고 툭 던지던 그 한마디가 그리 따뜻할 줄 몰랐네요. 내가 만약 지금 혼자라면 이 길을 혼자서 쓸쓸히 돌아가겠구나 싶은 마음에 이혼하자 날뛸 때 잘 참아준 당신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무뚝뚝하고 멋없고 술만 좋아하는 당신이지만 옆에 있어 주는 것만도 힘이 된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하게 되었네요.

  

그리고 아들아이 자기 짝 찾아 떠나고 나니 영원한 내 것이 아니더군요! 영원한 내 것은 오로지 당신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세상에서 제일 안 맞는 사람이 당신이라고 로또보다 더 안 맞는 당신이 미워 경멸하는 말투로 싸우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잘 버텨 왔네요. 당신에게는 사람을 속상하게 만드는 재주도 있지만 내가 화나서 물불 못 가리고 이성을 잃어 갈 즈음 잘 참아주고 기다려지는 재주도 갖고 있었으니 참 다행입니다. “내 생전에는 이혼은 없다”라 말하며 화 풀릴 때까지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기다려 주던 무던한 당신이 지금 생각하니 고맙네요. 

   

당신도 좀 더 부드럽고 융통성 있고 술 먹는 것도 이해해 줄 수 있는 너그러운 사람을 만났더라면 더 편안했을 텐데 가끔은 집에서도 같이 술 한 잔씩 마셔주는 그런 분위기 있는 사람이었다면 술친구 찾아 밖으로 떠도는 일은 더 적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드네요.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그리 좋아하던 술도 줄이고 이젠 퇴근 후 운동하고 늦게 귀가하는 나를 당신이 기다리다 곤히 잠든 모습이 짠해 보이기도 합니다. 덩그러니 큰집에 우리 둘 뿐이에요. 함께한 시간이 쌓이다 보니 모났던 부분 조금씩 둥글게 다듬어지고 조금씩 양보하며 이리저리 구르며 맞추어지는 부분도 생기네요. 

 

 생각해 보니 부모님이나 형제, 자매, 또한 자식들과 함께 한 시간은 길어야 고작 30여 년이지만 당신과 함께 한 시간은 30년을 훌쩍 넘겨 우리 인생 중 가장 긴 시간을 함께했네요. 서로에 대해 서로가 제일 많이 알 것 같아요. 이제는 싸울 열정도, 기력도 없네요. 앞으로 우리 함께 할 날이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자식들 앞에서 서로 아끼고 살뜰히 보살피는 잘 사는 모습으로 모범이 되어주며 서로 의지하고 인생 2 모작을 함께 아름답게 가꾸어 가보자고요, 


                                                     2024년 봄 어느 날 

                                     당신의 옆을 평생 지킬 당신의 옆지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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