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일주일 전부터 나의 추석은 시작된다. 고향 공주에 있는 선산의 벌초와 성묘부터 한다. 남자들은 예초기를 돌리고 베어낸 풀을 갈퀴로 긁어내기 시작한다. 나와 동서는 산 말랭이에 있는 시조부님 산소 옆의 보드라운 조선 소나무의 솔잎을 쏙쏙 뽑는다. 이슬이 마르기 전에 솔잎을 뽑아야 검댕이 없이 깨끗하게 잘 뽑힌다. 솔잎 중에도 왜 솔은 억세고 향도 없어 꼭 조선 솔로 골라 뽑는다. 그다음에는 시아버님께서 심어 놓으신 올 밤나무 아래로 간다. 누런 밤송이가 쩍 벌어진 채 툭툭 떨어져 널려 있다. 등산화를 신은 두 발로 밤송이를 비벼 알밤만을 쏙쏙 빼어내 양 주머니에 불룩이 넣는다. 추석 차례상에 올리고도 송편 소를 넣기에, 충분한 양이다.
첫 번째의 송편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랑 부모님과 함께 추석 체험 활동으로 송편을 만든다. 쌀은 씻어 물에 담가 불린다. 쌀을 담가놓고 반 기피 녹두를 물에 불려 껍질을 벗기고 채반에 소창 보자기를 깔고 쪄낸다. 설탕과 소금으로 적당히 간을 하고 절구로 콩콩 찌어 빻는다. 밤도 삶아서 껍질을 벗겨 송편 소로 넣을 준비를 해놓는다. 서너 시간이 지나면 불려놓은 쌀을 큰 소쿠리에 건져 방앗간으로 가 빻아온다. 냄비에 물을 팔팔 끓여 빻아 온 쌀가루를 조물조물 익반죽 한다. 반죽이 적당히 잘되어야 송편 만들기가 수월하고 맛이 있다. 반죽이 질면 손에 달라붙어 만들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또한 반죽이 너무 되면 떡이 딱딱하여 맛이 덜하고 툭툭 갈라져 옆구리 터진 떡이 된다. 올해 송편 반죽은 환상적으로 잘되었다. 만들기도 수월했고 쫀득쫀득 맛이 있다. 손수 익반죽하고 정성으로 빚은 송편은 시중에서 기계로 만든 송편과는 맛이 확연히 다르다. 맛난 송편을 어린이집의 온 가족이 나누어 먹으니 힘은 들지만 흐뭇하다.
두 번째는 추석 차례상에 올릴 송편은 가족들과 함께 만든다. 예전 조카들 어릴 적엔 조카들까지 합세한 시동생 가족과 시끌벅적 함께했는데 이제는 조카들도 다 자랐다. 그리고 팔월 열이렛날이 시아버님의 기일이라서 시동생 가족은 추석에는 처가로 가고 시아버님 기일에만 참석하기로 했다. 대신 아들과 며느리가 함께 한다. 내 송편이 예쁘네! 네 송편이 예쁘네! 하며 정성 들여 빗어 놓은 송편을 솔잎을 깔고 큰 찜솥에 찧어 내면 모양이 크게 표 나지 않는다. 솜씨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빨리 만드는 것이 장땡이다. 솔잎 향과 함께 송편이 익는 냄새가 솔솔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솥뚜껑을 열어 한 김 나가면 소쿠리에 꺼낸다. 녹두 소를 좋아하는 사람과 밤 소를 좋아하는 사람 서로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해하며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세 번째의 송편은 추석 이틀 뒤인 팔월 열이렛날인 시아버님의 기제사에도 한 대접 만들어서 올린다. 추석은 아들 며느리가 함께했고, 시아버님 기제사에는 시동생과 동서가 함께 한다. 긴 연휴가 끝나고 처음으로 출근한 날이 시아버님의 기일이다. 동서도 퇴근 후 늦게야 온다. 더구나 오늘 저녁에는 며칠 뒤 있을 우쿨렐레 공연의 최종예행연습과 기타 수업이 있는 날이다. 공연의 총연습이라 빠지기 곤란하다. 아침부터 마음이 바쁘다. 어린이집에 출근해 부랴부랴 서둘러 급한 일만 처리해놓고 다시 집으로 와서 간단히 전과 나물을 준비해 놓았다. 아직도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땀이 범벅이 된 채로 혼자서 송편도 한 대접 빚어 쪄놓았다.
대충 제사 준비를 해 놓고 바삐 우쿨렐레 공연 연습장으로 갔다. 마음이 분주하고 집중도 덜 된다. 어찌 연습했는지 모르게 우쿨렐레 연습을 끝내고 기타 강습은 포기한 채 허둥지둥 집으로 돌아왔다. 요즘 흔히 하는 말로 나는 모든 수업에서의 개근 거지다. 이런 일로 기타 수업의 개근 거지를 면한 것이 다행인가? 입가에 웃음이 피식 새어 나온다. 마음속엔 기타 수업 못 간 아쉬움이 남았지만 얼른 메를 짓고 탕국을 끓였다. 그러자 시동생과 동서도 퇴근하고 오느라 헐레벌떡 들어온다. 낮에 준비해 놓고 간 제물로 시동생 내외와 우리 내외 넷이서 제사를 모셨다. 그렇게 제사를 모시고 나니 허기지고 지친다.
늦은 시간 제삿밥을 먹으며 길었던 추석과 정신없었던 나의 오늘 하루를 이야기했다. 그러자 시동생은 내년 추석 연휴는 더 길단다. 아버님 어머님 사진으로나마 모시고 함께 여행 가서 차례 모시자고 말한다. 결혼 후 그간 명절마다 하는 형수의 노고를 이해해 주는 건지 듣던 중 반갑고 고마운 소리다. 생각해 보니 시부모님과 함께 여행한 추억이 없다. 함께 여행한다는 핑계로 나도 좀 편해 보고 싶다. 이제라도 모시고 여행하잔 말에 만장일치다. 올해도 나의 긴 추석은 일주일 전 솔잎 뽑는 일로 시작해서 시아버님의 기제사가 있는 오늘까지 세 번의 송편을 빚어내고야 끝이 났다. 내년의 추석은 좀 더 편안하게 보낼 수 있기를 살짝 기대해 보며 오늘 밤은 긴 추석이 끝났다는 안도감으로 두 다리 쭉 펴고 맘 편히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