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
최근 나의 출퇴근길 최애 프로그램은 "알. 쓸. 별. 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이다. 내가 알쓸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패널들이 어느 한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지적 갈증을 해소해 주는 것도 좋았지만,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주제에 대해 심도 깊게 고민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올해 3월부터 꾸준히 참여 중인 오글클이란 글쓰기 커뮤니티를 하면서 이번주 주제로 받은 것이 "행복"이었다. 만약 내가 알쓸 시리즈에 패널로 참여했다는 가정하에 아래와 같은 질문을 받는 다면 과연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면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태윤씨, 당신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20대에 이 질문을 받았다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 같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앞으로 가지고 싶은 것"이라고 말이다. 나에게 있어 행복은 언젠간 달성해야 하는 목표와도 같았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지 않기에 멀게만 느껴졌고, 그것을 얻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왔다.
대학시절엔 그것을 대외활동에서 충족하고자 했다. 국토대장정을 시작으로 국민은행 서포터즈, 영 알리안츠, 대학내일 인턴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도전했으며 성실히 참여해 좋은 결과를 이끌었다. 그리고 각 각의 프로젝트를 끝냈을 때의 성취감과 만족감이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허무함에 휩싸였고, 다시금 새로운 갈증을 찾아 무언가를 목표로 삼고 전력질주를 했다.
이러한 모습은 직장에 취업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디지털 마케팅 에이젼시에 다니면서도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컸다. 그러기에 직장을 다니면서 동시에 코바코에서 진행하는 국제광고인자격(IAA-KOBACO) 증을 땄다. 1년 안에 100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프로그램이었음에도 성실하게 참여했으며, 중간에 우수상도 수상할 정도로 열심히 참여했다. 그러나 행복이란 목마름을 찾기 위해 또 다른 목표를 찾았다.
대학원에 진학하였을 때도 이러한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다 30대가 되면서 3가지 큰 내 삶의 큰 변화와 함께 이러한 나의 관점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큰 변화는 코로나였다.
코로나가 찾아오면서 관계중심적이며 학업중심적인 나의 삶은 무너졌다. 직장에서도 대학원을 다니기에 최대한의 야근을 피하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근무하던 나의 긴장감은 사라졌다. 그리고 해당 시즌이 대학원 논문을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었음에도 하나도 준비하지 못했다. 졸업 논문은 그 후 2년이란 시간이 더 걸렸으며, 그마저도 연구보고서로 대체해서 진행했다. 물론 연구보고서도 작성하는 데 쉽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과업중심적이며 목표지향적이 나에겐 이루어질 수 없는 모습이다.
두 번째 큰 변화는 결혼이었다.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던 삶에서 함께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결혼 후 나의 모든 초점은 가족으로 조금씩 포커스가 변하게 되었다. 살면서 봉착하는 문제를 아내와 함께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갔으며, 그렇게 협력하며 하루하루 살다가 보니 행복이란 녀석이 이전의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촉발되게 된 가장 큰 변화가 곧 찾아오게 되었다.
마지막 큰 변화는 아들의 탄생이다.
KCC건설 스위첸에서 만든 광고 중 ‘문명의 충돌 2’ 편이란 TVC가 있다. 3년 전에 나왔던 1편은 가족이 된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명이 부딪히고 이해하는 과정들의 반복이란 메시지로 이야기를 전달했다. 2편은 아이라는 새로운 문명이 찾아온다.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고 화합하면서 점차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을 웃프게 풀어내면서 많은 공감을 이끌었다. 이 영상의 메시지가 이러한 충돌과 화합의 시간들이 쌓여 가족이라는 집을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는 것처럼 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작년 11월, 아들이 태어나고 나서 10개월의 시간 동안 우리 가정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아빠가 처음인 나에겐 매일이 도전이었고, 새로운 목표는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매 순간 찾아왔다. 하루하루를 버티던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지금 시점의 행복에 대한 나의 생각이 달라졌음을 명확하게 깨달았다.
지금의 나에게 행복에 대해 묻는다면 가족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행복은 내가 언젠가 이루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나의 곁에 있으면서 늘 함께 웃고 함께 우는 사랑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라 대답할 것이다.
코로나 이후 외부환경에 의해 계획대로 살아갈 수 없음(코로나로 인해 가지 못한 신혼여행이라던가)을 깨닫고 하루하루의 삶을 열심히 적응하며 보냈다. 이후 지금까지 잘 적응만 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너무나도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크게 달성한 것은 없더라도 일상을 살아오기만 해도 행복을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내와 매일 주말 아침 즐겨가는 맥도날드라던가 아들과 함께하는 산책길. 그리고 매일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 등 소소한 일상의 모습에서 말이다. 이렇게 기존의 내 생각의 틀을 깨어준 귀한 경험이지 않나 생각한다.
지금 나와 같이 행복을 찾기 위해 전력질주하는 이가 있다면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잠시 달리던 것을 멈추고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좋겠다. 그러면 생각보다 가까이에 나와 함께 웃고 함께 우는 이가 있다면 그것만으로 지금 충분히 행복할 것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