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아 May 02. 2023

3일 만에 퇴사한 회사가 남긴 것

짧지만 강렬한 첫 번째 회사

내가 명상이란 걸 처음 접한 때는 꽤 오래전이다. 온실 속 화초 같았던 내가 사회의 쓴맛을 처음 본 때.


24살의 나는 그 흔한 휴학도 없이 4년 내내 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하자마자 취업을 했다. 그리고 3일 만에 퇴사를 했다.


첫날에는 월급 180만 원, 그것도 3개월의 수습기간 동안은 80%만 제공되는 백만 원 남짓의 액수가,

둘째 날에는 점심을 먹으며 어젯밤 급한 업무 전화에 9시까지 야근을 했다는 선배의 말이,

셋째 날에는 이미 퇴근시간이 지난 시각에 나에게 퇴근이 아닌 야근 기록 장부 작성법에 대해 말하는 사수가, 내 마음에 퇴사 파동을 일으켰다.

삼일차에 야근이라니, 고새 내가 이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핵심 실무자가 되었나 보다.

결정적으로, 무감각한 얼굴로 기계처럼 일을 하는 사람들의 활력 없는 모습이 나의 미래라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나는 모니터 앞에서 시들시들해지고 싶지 않았다.


퇴사 의사를 밝히자, 나의 아빠뻘 되는 대표는 내가 뭘 모른다는 듯 나를 훈계했다. 나의 결정이 기업에 얼마나 큰 손실인지 아냐며 다시는 나라와 기업을 위해 이런 섣부른 행동을 반복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이 사람은 나에게 마음대로 훈수를 둘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어린 나는 벌벌 떨며 아무 말하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그 회사와 작별인사를 했다.


40년은 퀴퀴 묵은 듯한 훈수 외에도 얻은 것이 있었는데 바로 불면증이었다.

고작 3일이었지만 스트레스에 취약한 나 같은 개복치 인간은 타격을 입었다.

대학시절 인턴도 무리 없이 한 나는 스스로를 탓했다. 원래 사회는 이런 모습이고 이에 견디지 못하는 내가 이상한 것이라고. 스스로 내린 결정에 확신이 있었지만 동시에 버티지 못했다는 나에 대한 실망감도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잠 못 이루던 나는 유튜브에 ‘잠자기 좋은 asmr..’ 따위의 검색어를 지속해서 검색했다. 그러자 나보다 나를 잘 아는 듯한 미국산 알고리즘은 언제부턴가 명상 영상을 띄우기 시작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깨끗해지는 듯한 자연 풍경 위 '힐링', '스트레스 해소'라는 글자.

자극적인 썸네일과 문구들이 난무하는 유튜브 세상에서 정직한 문구와 담백한 썸네일은 오히려 나의 클릭을 이끌었다.


명상이 뭔지, 어떻게 하는지도 몰라서 그냥 영상을 틀고 핸드폰을 머리맡에 두었다. 영상 속 목소리가 말하는 대로 두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했다. 침대 위 누워있는 나의 몸의 감각을 천천히 훑다가.. 어느샌가 잠에 빠졌다. 밤잠을 설쳤던 내가 그 밤은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렇게 명상과 연을 맺었다.


그리고 이땐 몰랐다. 명상이 내 일상에서 더욱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란 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