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사람만이 살아남는 회사
상처뿐인 두 번째 회사
퇴사를 하니 자연스럽게 불면증은 사라졌다. 회사가 만병의 원인이라는 말을 체감했다.
하지만 백수라고 마냥 마음이 편하지는 않은 법. 본격적인 취준생활을 시작하며 나는 극도로 불안해졌다.
자격증 공부를 하고 면접 스터디를 다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자기소개서를 수정하고 공고가 뜨면 지원하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이 행동의 결과는 항상 ‘무응답’ 혹은 ‘불합격’이었다.
짝사랑하는 상대의 마음에 들려 노력하고 러브레터를 보내지만 나에게 무관심하다면 이런 기분일까? 항상 거절당하는 일상이 반복되니 자신감이 낮아지고 나에 대한 확신도 점점 사라졌다. 아침에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나왔다가 오후에는 갑자기 기분이 괜찮아지기도 하고, 스스로 조울증일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실 실제 조울증의 증상은 이렇지 않다.)
조급해진 나는 이 불안한 생활을 끝내기 위해 이전 회사보다 안 좋은 조건의 회사에 지원하였고 또 스스로 지옥길에 걸어 들어가게 되었다.
임직원이 20명 남짓인 이 회사는 나까지 다섯 명이서 같은 사무실을 썼다. 이제 와서 보니 한 때 유행했던 웹드라마 ‘좋좋소’의 현실판이었다.
쌍욕을 하면서 일하는 사람, 하루종일 핸드폰만 하는 사람,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는 학벌 좋은 일잘러 한 명. 그리고 마지막은 나의 직속 상사였던 대표의 아내였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그녀의 말이 있다. 본인 소유지에 주차한 외부인에게 차를 빼달라는 전화를 마친 후였다.
“주차할 땅도 없으면서 차는 왜 끌고 다니나 몰라~ 방금 좀 재수 없었나?”
나는 대꾸는커녕 표정관리도 할 수 없었고 역겨운 감정이 밀려왔다.
어느 날은 대표가 직원의 결재서류를 직원 앞에 뿌리며 호통을 쳤다. 대표의 방을 등지고 있는 덕에 소리만 들었음에도 드라마에서나 봤던, 종이가 흩뿌려지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졌다. 내가 직접 당한 일도 아닌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회사에 다니며 나는 달라졌다. 긍정 세포가 가득하던 나는 출근길에 ‘차에 치이면 어떻게 될까?’, 회사의 높은 계단에 서서 ‘여기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따위의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사무실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이 고요할 때에도 갑자기 숨이 막히고 이 평온한 순간이 금세 깨지며 무언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매일매일 울며 회사를 다니고 심리상담과 정신과 치료를 알아보던 중, 결국 퇴사를 선택했다. 가장 명료한 해답이었기 때문이다.
퇴사 의사를 밝히자 대표와 면담을 하게 되었다. 그는 갑자기 내 1호 팬인 것 마냥 나에 대해 궁금해하며, 부모님도 안 할 걱정과 조언을 한동안 늘어놓기 시작했다.
“SKY도 안 나왔는데 밖에 나가서 무슨 일 하려고 그래? 이것도 못 버티면 밖에서 연봉 3000도 못 받아. 책임감 없는 일하려면 편의점 캐셔밖에 없어.”
당시 나는 제대로 된 인수인계와 사수 없이 해외 출원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한 건에 적으면 몇 백, 많게는 몇 억까지 왔다 갔다 하는 막중한 일이었다.
제 딴엔 날 붙잡고 회유하겠다고 하는 말이다. ‘지는 S대 나오면 뭐 해.. 입으로 똥 싸면서.’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입밖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제 고작 사회생활 1년 차인 나에겐 이 막말이 화살처럼 심장에 마구마구 꽂혀서 빠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24살의 나는 또 상처를 가슴에 묻어 둔 채 두 번째 퇴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