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마르크스는 1818년 독일 트리어에서 태어났다. 그는 변호사 집안 출신이었지만 일찍부터 사회의 모순과 불평등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산업혁명이 가져온 생산력의 증대는 눈부셨지만 그 이면에는 빈곤과 아동노동, 실업이 도사리고 있었다. 마르크스가 평생 던졌던 질문은 단순했다. 왜 노동자는 가난한가, 그 구조는 어떻게 유지되는가였다.
마르크스 이전에도 사회주의를 주창한 이들은 많았다. 푸리에, 생시몽 등은 평등한 공동체를 꿈꿨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들을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비판했다. 그들의 주장이 도덕적 호소에 머물렀을 뿐 현실의 구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주의가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역사적 필연이라고 봤다. 인류의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계급 간의 투쟁이며,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속에서 체제가 바뀐다고 확신했다.
마르크스의 분석은 리카도의 노동가치론을 계승하며 출발했다. 그는 상품의 가치가 노동에서 나온다면 자본가의 이윤은 어디서 오는가를 파고들었다. 노동자가 하루 12시간을 일해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가치를 6시간 만에 창출했다면 나머지 6시간의 노동은 고스란히 자본가의 몫이 된다. 이것이 바로 ‘잉여가치’이며 자본주의 착취의 본질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끊임없이 운동하는 체제로 보았다. 자본은 축적을 멈출 수 없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동을 대체하는 기계를 끊임없이 도입한다. 그러나 노동만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전제하에서 기계의 비중이 커질수록 전체 자본 대비 이윤의 비율은 장기적으로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윤율 저하 경향은 주기적인 경제공황을 낳고, 자본은 점점 더 소수에게 집중된다.
이 과정에서 실업은 예외가 아니라 필연이다. 마르크스는 이들을 ‘산업예비군’이라 불렀다. 실업자 집단은 임금을 억누르고 노동자를 통제하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자본주의는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없으며, 노동자의 삶은 구조적으로 궁핍해지고 인간의 존엄성은 위협받는다. 그는 자본주의가 노동자를 노동 과정과 생산물로부터 분리시켜 인간성을 파괴하는 ‘소외’를 낳는다고 비판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을 뒤집어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관념이 아니라 물질적 생산관계라는 ‘역사 유물론’을 세웠다. 그는 사회의 경제적 토대가 법, 정치, 이념 등 상부구조를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생산력이 발전해 기존의 생산관계와 충돌하고, 낡은 시스템이 더 이상 새로운 생산력을 감당할 수 없을 때 사회 혁명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1848년 마르크스는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을 발표했다. 그는 “부르주아는 100년 남짓한 지배 기간 동안 이전의 모든 세대보다 더 크고 더 많은 생산력을 창출했다”며 봉건제를 무너뜨린 가장 혁명적인 계급이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막강한 생산력이 바로 자신들을 파멸시킨다고 선언했다.
1867년 출간된 자본론은 마르크스 사상의 집대성이었다. 상품 분석에서 출발해 잉여가치, 자본 축적, 공황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시스템을 해부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붕괴는 그의 이론의 한계를 드러냈다. 자본주의는 예상보다 훨씬 강한 적응력과 생산성을 보여줬다.
마르크스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불평등, 금융위기라는 자본주의의 그림자가 짙어질 때마다 다시 등장한다. 마르크스를 무조건 찬양하거나 낡은 유물로 치부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의 질문들이다. 마르크스를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혁명가를 기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을 성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