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주마다 가는 광명에서 당진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2년 전 떠난 신평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오봉천 길이 걷고 싶었다.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어. 이렇게 살다 가는 거지 기운 내 봐야 뭐 하겠냐.”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은 아버지 목소리가 지워지지 않아서였나 보다.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신평으로 향했다. 반가운 옛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설렜다.
지난해 가을인가, 불현듯 이곳이 그리워져 한 바퀴 돌고 갔으니 8개월 만에 다시 찾은 셈이다. 계절에 따른 풍경이 바뀌었을 뿐, 신평은 달라진 게 없었다. 7년 살았던 아파트도 어제 본 듯 눈에 익었다. 후문으로 조금만 나오면 바로 논과 밭이 펼쳐진다. 초입에는 그리 넓지 않은 밭과 을씨년스러운 폐가가 있었는데 지금도 그대로였다. 주인 없이 헝클어진 땅 주변에는 중년 여인이 가끔 출몰하곤 했었다.
“혹시 최 00 씨 아세요? 이 집주인인데요. 내가 막내딸이에요. 10년 만에 와보니 아무도 없네. 어디 갔는지 몰라요?” 눈이라도 마주치면 땅 임자의 행방을 묻는 질문을 퍼부어대던 정체 모를 여인. 세상에, 오늘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심지어 질문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 무슨 사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건지. 보탬이 될 수 없는 나는 산책길을 조금 더 서두른다.
오봉천변 들어서기 직전, 다섯 평쯤 되는 텃밭이 있다. 비어 있을 새 없이 온갖 작물을 챙겨 심던 할아버지 모습이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고, 주인 잃은 고춧대만 녹슬어가니 나는 애가 탔다. ‘이분도 우리 아버지처럼 쓰러지셨나 보다. 혹시 잘못됐나? 몸이 아프니 밭 따위에 신경 쓸 틈 없는 거지 돌아가시기야 했겠어. 말랐지만 강단 있어 보였는걸.’ 의미 없는 자문자답과 함께 주인의 귀환을 기다렸지만 떠날 때까지 땅은 텅 비어 있었다.
오랜만에 임자를 찾은 텃밭 풍경에 뜬금없이 목이 멘다
다시 찾은 그곳은 누가 봐도 임자 있는 밭, 빼곡하게 심긴 채소를 보며 괜히 목이 멘다. 할아버지가 돌아왔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어쩌겠는가. 삶은 또 이렇게 이어지는 거지. 가꾸는 사람은 달라져도 땅을 일구고 씨를 뿌려야지.
오봉천은 당진시 송악읍에서 시작되어 신평면을 거쳐 삽교천과 합류하는 지방 하천이다. 합덕초에 근무하게 된 2014년 겨울, 천안에서 신평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생각보다 큼직큼직한 논밭에 깜짝 놀랐다. 오봉천은 그 넓디넓은 평야에 물줄기를 대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단다. 하천을 따라 양쪽으로 쭉 길이 이어지는데 그중 7km가량 콘크리트를 깔고 가장자리에 매실나무를 심어 산책로로 꾸몄다. 고작 1년 반 거닐었을 뿐이지만 언제나 그리운 오봉천 산책로. 그만큼 이 길에 배인 내 시간의 농도가 짙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2021년, 틈만 나면 천변을 걸었다. 생전 처음 해보는 병간호, 치료방법에 대한 결정, 경제적인 문제 등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는 시간이었다. 연달아 어머니마저 허리가 부러졌고 학교는 코로나가 끝나지 않은 채 새 학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새로움은 무슨, 나는 이미 정신적, 육체적으로 바닥이었다. 손가락만 대도 푹 쓰러질 지경이었지만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기를 쓰고 오봉천으로 향했다. 길이 아름다워서는 아니었다. 어떤 풍경이 눈에 들어왔겠는가. 다만,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머리를 비우고 싶은데 꼬리에 꼬리를 물며 답도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대니 살 수가 없었다.
‘돌아가시면 어쩌지? 지금이라도 수술해 달라고 졸라야 하나? 엄마는 또 어쩌고. 안 그래도 힘든데 올해 애들은 또 왜 이리 유별난지. 차라리 휴직하는 게 나을까?’
쭉 뻗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신기하게 어지러운 생각들이 ‘일시 정지’되며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느낄 수 있었다. 모심기를 앞두고 물을 댄 논에 일렁이는 물결, 길가에 정성스레 심어진 봄꽃의 향기, 한가로이 날고 있는 백로와 오리들, 바람에 살랑거리는 신록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마음이 평온해지고 사념이 사라졌다. 그렇게 내일을 살아갈 힘을 채웠다.
다시 그 길을 걸어본다. 널찍널찍한 논마다 모가 심겼거나 준비 중인 모판이 가득하다. 자세히 보니 중간중간 잡초가 잔뜩 자란 땅도 눈에 띈다. 힘에 부쳐 농작을 포기하거나 주인 잃은 논밭이겠지. 계속 걷는다. 마을 쪽 방향으로 이어진 뽕나무 길, 설익은 오디가 나무마다 가득하다. ‘조금 만 더 있다 올 걸. 그럼 떨어진 오디 주워 먹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정말 여기는 그대로네’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여기저기 꺾어지고 쓰러진 뽕나무들이 있는 게 아닌가. 얼마 전 강풍으로 부러진 듯하다. 신평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겼는데 아니었다. 여기라고 부침(浮沈)이 없겠는가. 모든 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겠지. 그래도 이곳만은 그 속도가 너무 가파르지 않기를 소망하며 걸음을 이어갔다.
모심기가 한창인 논, 임자 잃은 땅, 한가로이 거니는 백로, 부러진 뽕나무. 오봉천 길은 기승전결을 모두 품고 있다
4년째 입원 중인 아버지는 최근 집에 다녀 간 뒤로 눈에 띄게 기력을 잃었다. 당신 스스로 이동이 불가능해 딸들이 끙끙대며 소파로 옮긴 것이 큰 상처가 되신 듯했다. 다리에 힘만 붙으면 퇴원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사라진 아버지는 눈에 빛을 잃었다. 힘을 낼 이유도, 의지도 놓았다. 어떤 위로도 떠오르지 않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아버지가 곧 종착역에 도착할 것만 같아 겁이 났다. 그래서 간절히 신평을 찾고 싶었나 보다.
산책길에 만난 모든 존재가 위안이 되었다. 얼굴을 빼꼼 내민 새싹과 설익은 열매, 쑥쑥 자라나는 나무와 날아가는 새들, 심지어는 잡초 투성이 땅과 쓰러진 뽕나무까지. 기승전결을 모두 품고 있는 오봉천 길은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그게 자연의 이치니까. 그 당연함이 온몸, 온 마음으로 흡수되는 느낌이었다. 두려움으로 가득 찬 마음을 모든 풍경이 괜찮다고 쓰다듬어주는 것 같았다.
오봉천 산책길. 마음을 담고 거닌 시간은 불과 2년 남짓이다. 그럼에도 몸이 지치고 마음이 낡았다고 느낄 때마다, 영혼의 쉼이 필요할 때면 두말할 것 없이 이곳이 떠오른다. 굳이 캐묻지 않고 따뜻한 눈길로 위로해 주는 정겨운 친구 같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속마음 나눌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요즘, 반백 넘어 알게 된 오봉천이 주는 충만한 위로가 더욱 마음에 닿는다.(표지사진 출처:당진시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