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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투덜이 Jun 23. 2024

게임 아니야, 아파서 앉은 거야

- 마음 편히 아플 수도 없는 내 신세야

 지난해 가을이었나,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더니 1교시가 되자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평소 아플 때 미련하게 몸으로 견디지만 일터에서는 즉시 진통제나 해열제를 찾는다. 일단 학교에 왔으면 교사는 마음 편히 아플 수가 없다. 수업은 끝내고 조퇴하는 게 ‘국룰’이기에 임시방편으로라도 괜찮아져야 한다. 그날도 보건실에서 진통제 한 알 얻어 복용하고 교실로 돌아오는데 세상에, 한 걸음 떼기도 어려울 만큼 배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 중간 복도에 있는 의자에 몸을 구부리고 걸터앉았다. 이 와중에 학생들의 인사성은 왜 이리 밝은지, “안녕하세요?” 차마 대답을 못하고 있으니 코앞까지 와서 다시 한번 말을 붙인다. 더 크고 또박또박한 소리로.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하다 안녕해.      

 

 간신히 맞장구 쳐주자 할 일을 끝냈다는 듯 제 갈 길을 가버린다. 가끔 “선생님, 여기서 뭐 하세요?” 물어보는 친구도 있지만 누가 봐도 정확한 대답을 원하는 건 아니다. 분명히 보건실이 1m 앞에 있는데 되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핸드폰 가지고 올걸. 일단 앉아 있어 보자. 그래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으면 오가는 학생에게 보건선생님 불러달라고 할 밖에. 앗, 쉬는 시간 끝났네. 보건실 가는 친구라도 있겠지. 오늘따라 학습지 한 장 복사한 게 없네. 받아쓰기 시험 본다고 했는데 나 없으면 좋아하겠네.’

식은땀이 줄줄 났지만 머릿속은 몹시 바빴다.     


 시간이 흐르니 뒤틀림이 조금 가라앉았다. 무슨 정신으로 교실에 갔는지 모르겠다. 자리에 앉자마자 어미닭 찾는 병아리들인 양 학생들이 모여든다. “선생님 S가 계속 뛰어다녔어요.” “받아쓰기 시험 공책이 없어요.” “제가 1일 반장인데 A가 칠판글씨 지웠어요.” “내가 먼저 그런 거 아니거든. D가 지우라고 했거든.”

삐악삐악 쉴 새 없이 쏟아붓는 민원을 듣다보니 신기하게도 아픔이 사라졌다. 그래, 너희를 누가 이기겠니. 수업이 시작됐으니 교사에게 통증은 사치지. 예정됐던 받아쓰기 시험을 준비하라고 했다. 몇 문제 불러주다 보니 다시 배가 뒤틀렸다. 도저히 서 있을 수 없어 털썩 쭈그리고 앉았다.

 눈만 끔뻑끔뻑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숫자를 세며 의자에서 바닥으로 앉기 시작했다.

“하나!” “둘!”

“야, 너네 뭐 해?”

“선생님 눈치 게임 시작했어!”     


 받아쓰기 시험은 관심에서 사라진 지 오래. “내가 먼저 앉았어” “너희 둘은 같이 앉았으니 모두 탈락이야” 자기들끼리 떠들어대느라 나의 가냘픈 외침은 임자를 잃은 채 허공에서 맴돌 뿐이었다.

“얘, 얘들아 게임 아니야. 선생님 아파서 앉은 거야.”     


 한 반을 온전히 책임지는 초등교사. 특히 1, 2학년 담임을 맡았다면 교과서 밖 가르침과 돌봄도 수업 못지않게 중요하다. 제시간에 등교했는지, 과제 습관은 제대로 갖춰지고 있는지, 얼굴색이 좋지 않은데 열이 나는 건 아닌지, 급식은 골고루 먹는지 총체적으로 그들을 파악하고 돌보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교실을 비우는 일만큼은 될 수 있는 한 피하게 된다. 부모가 집을 비우면 컵라면으로 끼니 때우고 온종일 게임한 흔적이 역력한 집안 꼴과 마찬가지로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교실의 시간은 그만큼의 어수선함이 존재한다. 어렸을 때 “아파도 학교에 가서 아파”라며 고등학교까지 결석 한 번 허락하지 않은 어머니를 원망했는데, 미워하며 닮아버린 걸까. 수술로 휴직한 적은 있지만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결근한 일은 20년 교사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교사들이 아프다는 이유로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학생들은 독감이며 결막염 같은 전염성 질병에 걸리면 당연히 학교를 결석하는데 교사는 격리기간을 온전히 채우기 쉽지 않았다. 대체 강사가 확보되지 않았다면 동료교사의 부담일 수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고, 관리자 중에는 대놓고 “자기 관리를 어떻게 해서 교사가 병에 걸리느냐”는 몰상식한 지적을 하는 이도 있었으니 두 발을 움직일 수 있다면 학교에 가서 쉬는 게 차라리 속 편했다.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옆 반 선생님이 어느 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출근했다. 유행성 결막염에 걸렸다고 교감선생님에게 말하니 “한쪽 눈은 뜨고 있고 말은 할 수 있으니 수업은 끝내고 조퇴하시라”라고 했단다. 당시 결막염은 엄청난 전염력을 자랑하여 학생들에게는 눈만 빨개져도 학교 나오지 말라며 연신 가정통신문을 보내던 때였다. 그 선생님은 학생들이 곁에 올까 노심초사하며 수업을 이어갔고 급식실도 못 가고 교실에서 빵으로 끼니를 대신했다. 결국 남들보다 훨씬 장기간 눈병을 앓았고 부작용도 심해 꽤 오랫동안 고생해야 했다.    

 

 교사도 사람이다. 아프면 제 몸 챙기기가 우선임은 당연지사. 교실을 책임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음 놓고 아플 수도 없었던 경직되고 편협한 시각은 많이 사라졌다. 몸이 좋지 않거나 사정이 있으면 눈치보지 않고  연가를 사용하는 추세라 다행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학생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폼생폼사’ 선생님. 못 하는 건 못 한다, 힘든 건 힘들다고 말하며 지내자 결심하면서도 요 작은 친구들 앞에 서면 언제나 힘세고 든든한 버팀목 같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뒤 돌아 입에 주먹을 틀어넣고 눈물을 삼킬지언정 약한 모습은 들키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프다는 이유로 학교를 쉴 마음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너무 애쓰지 말자. 다방면에 유능한 완벽한 교사, 감기 한 번 걸린 적 없는 강철 같은 교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조금은 시들 거리고 구멍이 났다고, 몸이 좀 아프다고 나의 마음까지 낡은 것은 아니니 불끈 쥔 주먹 힘은 조금 풀어도 되지 않을까.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교직 생활, 선생님이 아플 수도 있다는 짐작조차 못하는 친구들 앞에 늘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설 수 있으면 좋겠다. 주저앉은 채 눈치 게임을 이어가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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