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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영 Jun 03. 2023

나에게 안 미안한가?

자책하지 않기


1. 죄의식 (이승우 『오래된 일기』, 창비)



규의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간암에 걸린 규가 오늘내일 하니 병원에 한번 와달라고 했다. 규와는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다.  


유년기의 나는 잘못이나 실수를 하고 벌을 받을까 봐 항상 겁이 났다. 벌에 대한 지나친 공포는 벌을 내릴 대상이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어졌다. 숙제를 하지 않은 날 아침, 나는 담임선생님이 아파서 학교에 나오지 않는 상상을 했다. 학교 앞 가게에서 구슬을 훔친 적이 있는데, 같은 반 친구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을 때도 마찬가지 상상을 했다. 물론 내 상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느 여름날 나는 얼음과자를 사 먹기 위해 아버지의 지갑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훔쳤다. 막대를 빨고 있는 내 모습을 본 친척 누나가 돈이 어디서 났냐고 물었다. 그 순간 아버지가 알게 될까 봐 겁이 났다. 그러자 학교 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에게 했던 것처럼 아버지가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 그날 큰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옮겨진 아버지는 의식을 잃은 채 일주일을 살았고, 돌아가셨다.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큰아버지 집에서 지냈다. 같은 날 태어난 큰아버지의 아들인 규와 나는 친구처럼 지냈고, 같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나는 9년 내내 우등생이었고 규는 아니었다. 나는 대학을 가고 규는 가지 못했다. 대학생이 된 나는 고향을 떠났다. 나는 의식적으로 고향에 가지 않았다.  


대학 4학년을 마친 내가 방위병으로 근무하기 위해 주소지인 고향집에 내려갔을 때, 규는 막 전역을 한 상태였다. 규는 자기 방에 틀어 박혀 소설을 썼다. 그는 간혹 자기가 쓴 원고를 보여주었고 나는 느낀 바를 이야기해 줬다. 그는 소질이 있다며 소설을 써보라고 권했지만 나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소설을 써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그 무렵 내가 읽은 어떤 소설, 그 소설에서 소설가는 자신의 글쓰기의 기원인 복수심과 지배욕에 대해 집요하게 이야기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얻어냈을 효과에 나는 관심이 갔다. 그 순간 나는 소설을 왜 쓰는지 이해했고, 문득 소설을 한 권의 일기장처럼 인식했다. 나는 새 일기장을 가지고 싶어졌다. 나는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숙제를 하지 않아 담임선생님이 학교에 나오지 않길 상상했던 것과 학교 앞 가게에서 구슬 몇 개를 훔치는 이야기, 그것을 본 친구가 학교에 오지 않았으면 했던 상상, 그때의 불안과 두려움에 대해서 썼다.


나는 매일 밤마다 글을 썼다. 어느 날, 술에 취해 내 방으로 들어온 규가 말했다. "너는 대학 갔지. 나는 못 갔다. 나에게 안 미안한가?"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매일 나의 소설을 몰래 읽은 그는 소설 쓰기를 포기했다고 했다. 다음날 근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규는 집에 없었다. 돈을 벌겠다며 규는 집을 나갔고, 내 노트도 없어졌다. 그 후 20여 년이 지나 간암으로 죽어가는 규를 만난 것이다.


다 죽어가는 규의 얼굴을 보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이 일 저 일을 하며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녔던 규.'나에게 안 미안한가?'라는 규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규가 나의 소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보고 모았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문학잡지로부터 당선 통지를 받은 것은 방위병 복무기간이 열흘쯤 남은 스물다섯 살 봄이었다. 응모하지도 않은 소설이 그 잡지의 신인상에 당선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규가 집을 나간 날 내 노트도 사라졌다. 규가 잡지사에 보냈을 것이다. 그렇게 엉겁결에 나는 소설가가 되었다.


세 번째 찾아갔을 때, 규의 상태는 많이 안 좋았다. 규는 침대 밑 상자를 가리켰고 빛바랜 서류봉투 속에 오래된 노트 한 권이 있었다. 예전에 규가 가지고 나갔던 나의 글이었다. 나는 그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았고, 노트를 펴 들고 나의 첫 문장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의 입도 함께 움직였다. 그는 그 문장들을 거의 외우고 있었다. 문득 내가 읽는 문장들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어느 순간, 그는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잠들어 있는 그를 위해 내 문장들을 읽었다. 눈물이 나왔다. 나는 계속해서 끝까지 읽었다. 나는 끝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2. 너의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



주인공 '나'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줄곧 죄의식에 시달린다.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지만 소용이 없다. 그의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죄의식의 근원인 아버지.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용서를 구하고 싶지만 아버지는 이 세상에 없다. 영원히 용서를 구할 수가 없는 '나'. 영원히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유년시절의 주인공은 벌을 내리는 대상이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벌 받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잘못을 하거나 실수를 하는 것에 예민했다. 누군가 없어졌으면 하는 상상은 다행히도 항상 상상으로 그쳤지만 언제든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가 밝혀질 수 있다는 생각에 늘 불안하고 두려웠다.


하지만 어느 날 그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아버지의 돈을 훔쳐 얼음과자를 사 먹었던 주인공은 아버지가 알게 될까 봐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아버지에게 벌 받는 것이 두려워진 주인공은 아버지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 그날 큰 사고를 당한 아버지는 영영 집에 돌아올 수 없었다. 주인공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평생을 죄의식에 시달린다.


주인공은 죄의식을 덜어내기 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주인공의 삶을 짓눌렀던 죄의식을 꺼내 소설 속에 옮겨놓음으로써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싶었다. 그렇게 된 줄 알았다. 그런데 소설가가 되고 싶어 했던 규가 주인공이 쓴 소설을 읽고 소설가가 되려는 꿈을 포기하며  주인공에게 한마디 한다.  "나에게 안 미안한가?"


주인공은 규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무엇을 미안해해야 한다는 건지. 규가 없어지길 바란 적 없고,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도대체 무엇을 미안해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말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나에게 안 미안한가!'


규의 그 말은 다시 주인공의 죄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소설 속에 옮겨놓았다고 생각했던 그 죄의식이 다시 고개를 든 것이다.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 '나에게 안 미안한가?' 이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아 그를 힘들게 한다. 주인공에게 그 말속 '나에게'는 규의 입을 빌어 나온 아버지였던 것이다.


죄의식이 깊은 사람은 사과할 대상을 찾으려고 한다. 본인이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과할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죄의식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 된다. 주인공은 그 대상이 존재하지 않음에 괴로워하고 있다. 누군가 주인공에게 말해줘야 한다. '나에게 안 미안한가'가 아니라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라고. '너의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라고. 지금 주인공에겐 이렇게 말해 줄 이가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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