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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Aug 03. 2023

오늘만큼은 토마토 할게

감자 : 둥그러면 토마토지 뭐 ㅋ

[웃음은 참 가볍다.]

저녁에 운동을 하러 보통 20분 정도 걸어갑니다. 집 근처에 가까운 헬스장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지만, 다행히도 운동을 하러 가는 길은 꽤나 볼만한 것들이 많아 재밌는 편입니다. 걸어가며 가장 먼저 하늘을 한 번 봅니다. 오늘은 구름이 꽤나 많구나, 세상에 노을이 저런 색깔도 나오는구나. 때때로, 하늘 색깔이 오묘하거나, 신기하면 사진을 한 방 찍고 다시 걷곤 합니다. 찍힌 사진을 슬그머니 들여다보면 썩 맘에 들지 않습니다. 역시 눈으로 보는 것만큼 아름다운 게 없구나 다시 한번 느낍니다. 이렇게 카메라와 투닥거리며 5분쯤 걷다 보면 고깃집이 몇 개 있습니다. 가게 안에서 술을 드시는 분들이 꽤나 많습니다. 또, 얼굴은 조금 붉을지 몰라도 꽤나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꽤나 고생하셨는데, 좋은 분들과 술을 한잔 하시니 기분이 좋은가 봅니다. 젊은 사람, 나이 든 사람, 남, 여 따질 것 없이 시끌벅적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지나갑니다. 행복한 모습입니다.


아, 그런데 과연 나는 오늘 하루 얼마나 웃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 얼굴을 찡그리고, 샤워를 했고, 땀을 뻘뻘 흘리며 출근을 했습니다. 무미건조한 표정을 한채 조용히 업무를 하고, 슬그머니 퇴근을 했습니다. 밖은 여전히 덥고, 땀냄새를 풀풀 풍기며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집에 들어와 턱 하니 앉았습니다. 뜨거운 열을 식히며 저녁을 먹고, 화려한 빛을 내는 패드 속 유튜브 세상을 조금 보다 나온 게 바로 지금이었습니다. 오늘 하루는 웃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내 삶엔 왜 웃을 일이 많지 않을까.

조금은 재미없는 듯한 삶에 조금은 염증이 나는 것만 같습니다. 누구보다도 화려한, 재밌는 삶을 살고 싶은 나인데. 그 간단한 것이 어찌 그리도 힘든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미간 사이를 슬며시 찌푸리며 다시 걸음을 마구 옮기려던 찰나, 바로 옆에 있던 조그마한 가판을 보고 세상 바보처럼 실실 대며 웃었습니다.


아니 나 토마토라니까?


주변 사람들도 토마토라 애써 우기는 감자를 보며 수군대며 웃고 지나갑니다. 저도 웃음이 도저히 멈추질 않아서,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주변인들에게 사진을 보내지 않고는 못 배기겠더군요. 이 사진을 보내며 '토마토 탄탄하게 생겼네;'라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친구들의 격렬한 반응이 쏟아지니 괜히 짜릿하고, 웃겼습니다. 아까 인상을 찌푸리려던 저는 사라지고, 괜히 길거리에 웃음을 흘리고 다니는 덤벙이가 되었습니다.


한참을 웃다 보니 결국 헬스장에 도착했고, 여느 때와 같이 운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하며 천천히 생각해 보니 참, 사람이라는 게 단순한 것만 같았습니다. 토마토라고 우기는 감자에도 가볍게 웃는데, 너무 웃음이라는 걸 어렵게 생각하고 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삶에 크나 큰 웃음과, 다양한 일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웃을 수 있는 일은 수백만 가지가 넘겠구나 느꼈습니다. 오히려 '사소하지만 재밌는 것들을 애써 보지 않으려 한 건 나 아닐까?'라는 의문까지도 들었습니다. 일과, 삶이 바쁘고 힘들다는 변명을 하면서 말입니다.


이날 이후로 억지로 무게 잡고 있지 않으려고 하는 중입니다. 세상사 뭐든 웃긴 일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면서요. 아쉽게도 저 날 이후로 감자도 정신을 차렸습니다. <감자 5000원>이라는 팻말로 바뀌었거든요. 참 웃기는 자식입니다. 제 삶도 나름 웃긴 삶인 것 같습니다. 뚜껑이 열린 멋진 차를 끌고, 수 억을 벌지는 않지만 뭐 어떻습니까. 감자가 웃겨주는 세상인데, 저는 웃을 준비만 하고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고맙다 감자야, 내 삶을 웃기게 만들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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