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생각이 든 일상의 사고에 대하여
친한 동생이 뉴스 기사를 보내며 언니는 괜찮냐고 물었다.
이 사고로 다리를 건너고 있던 30대 여성이 숨졌고 또 다른 20대 남성은 크게 다쳤다.
황망하게 숨진 여성의 동생이 남긴 인터뷰를 읽었다. 동생은 처음 사고소식을 들었을 때 보이스피싱이라고 생각했단다. 출근길 다리가 무너져 누나가 죽었다는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 뉴스를 보고 나서야 믿게 되었단다. 누나는 헤어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영국 유학까지 다녀올 정도로 일에 진심이었고, 당일에는 예약 손님을 받기 위해 서둘러 자신의 미용실로 향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토요일, 친한 동생의 결혼식에 가기 위해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건너갔을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보이는 다리는 전면 폐쇄되어 있었고 사고 지점에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검은 현수막이 달려 있었다. 아무리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사고라지만 누구는 귀한 목숨을 잃었는데 추모 글귀 하나 달려있는 것이 허망했다. (그래도 비보를 접한 주변 상인들과 고객들이 미용실 앞에 여러 꽃다발을 두고 고인을 추모했다고 한다.)
만약 출근 시간에 사고가 일어났다면 100명 이상 다쳤을 수도 있을, 나를 포함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다리였다. 살아가는 이상 크고 작은 사고는 맞닥뜨리기 마련이지만 어쩌면 내가 다쳤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몇 번 가려고 고민하던 미용실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서였는지 기분이 참 묘하다.
당근에서 사람들이 이제 슬슬 다리를 돌아가는 것이 불편하다는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초등학생일 때 서른 되기 전에는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도 늙어가는 나 자신을 보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묘비에는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죽었노라 새기고 싶었다.
나는 어린 염세주의자였다.
어려서 서른이 꽤 어른처럼 보였던 것 같은데 지금 만약 서른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 모든 걸 내놓겠다.
사실 지금도 늙어가는 게 두렵다. 언제 생겼는지 모르는 기미와 색소침착이 고민되어 피코토닝도 받아보았다. 오징어 타는 냄새를 동반하며 까끌까끌 기분 나쁘게 훑어지나가는 레이저를 참느라 힘들었다. 무턱대고 10회를 끊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가끔 어른(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까라는 생각을 한다. 자신의 외모- 주름살, 울퉁불퉁한 군살과 늘어진 살, 기미와 주근깨 등-와 형편-경제적, 인간관계적, 명예, 사회적 입지 등- 등을 복합적으로 생각했을 때 삶에 진짜 만족하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하다.
적당히 만족할 수 있겠지만, 진짜 순도 100% 만족하는 사람이 있을까?
에에올(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엄마 에블린처럼 오랜만에 보는 건데도 매번 살쪘다는 평가를 내리는 엄마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나는 나 자신을 100% 사랑하는 게 힘들다.
친구들을 만나 같이 사진을 찍을 때도 보정 어플로만 찍었으면 좋겠고, 인생 네 컷을 찍었을 때 너무 사실적으로 나온 필름은 앨범에 보관하기 조차 싫다.
1) 내가 할 수 있는 건 크게 없다고 생각하며 그냥 살아지는 것을 선택하거나,
2) 매 순간의 유한함을 즐기거나.
요즘 티비에 장항준 감독이 자주 나와 종종 보았는데 유쾌한 사람 같다. 영화 리바운드에서도 장항준 감독 특유의 밝은 에너지가 느껴져서 좋았다. 그 사람 고유의 성격일 수도 있지만 최근 가족들에게 특히 예의를 지키려 하고 친절하게 대하려고 한다는 인터뷰를 보니 꽤 노력형이신 것 같다.
나는 천성적으로 마냥 밝은 사람은 아니지만 가급적 즐거운 것을 선택(노력)하고 싶다.
친절한 것을 선택(노력)하고 싶고, 공감하는 것을 선택(노력)하고 싶고, 선함을 선택(노력)하고 싶다.
그래서 나이가 듦에 슬퍼하고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 나이만이 느낄 수 있는, 추구할 수 있는 어떤 가치를 찾아 순간순간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른 사람의 시야에서 다소 황망하거나, 슬픈 죽음을 어느 날 맞이한다 해도 나를 잘 아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