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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영이아빠 May 08. 2023

가족의 빈자리

멈추지 않는 기억의 소환

 수영이가 떠나간지 보름이 지날 때 즈음 그 전까지는 커다란 충격에서 오는 자정되지 않는 고통에 몸부림을 쳤었다. 이 고통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파악도 못한채 수영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그 단순한 사실이 내 온몸을 괴롭게 하였으며, 하염없는 눈물이 흐르도록 만들었었다. 이 때까지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수영이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도 힘들었고, 막연히 어딘가에 여행을 갔다거나, 코로나로 인해 친척집에 잠시 가 있다거나 하는 잠시의 부재와 거의 동일한 만나지 못하는 시간 정도로 여겨졌을 수 있을 것이다.


 보름 정도가 지날무렵 서서히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수영이가 세상을 떠난 것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 앞으로 어떨 것인지, 어머니를 포함한 5인 가족에서 4인가족으로 변경되는 행정적인 사항에서, 우리 가족의 아침, 저녁 식탁이 3명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정서적인 것까지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 아마 수영이의 사망신고를 아내와 함께가서 작성했던 것 같다. 수영이가 떠나간 초반의 고통은 자극에서 오는 극심한 아픔이었다면, 보름이 지난 후의 고통은 정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내가 죽을 수도 없고, 살아가기에는 너무 아픈 어쩔줄 모르는 고통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고통이 초반처럼 하루종일 지속되지는 않았다. TV를 보면서 웃기는 장면이 나올 땐 피식 웃기도 하고, 아내와 딸과 농담도 한번씩 건네기도 하는 등 수영이의 부재가 조금씩 생각이 안나는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수영이가 생각이 나지 않고 다른 일을 하다가, 문득 수영이가 생각났을 땐, 지속적으로 수영이를 생각할 때 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시간, 마르지 않는 눈물로 계속 수영이를 그리워 하는 시간이 뒤를 따랐다. 어찌보면 수영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원초적인 고통보다 훨씬 더 고통으로 몸부림 치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 중에도 잠시 수영이가 생각나지 않을 땐, 나! 괜찮아졌나? 이렇게 빨리? 정말 괜찮아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가끔씩 들곤 했다. 그 당시엔 정말 괜찮아지는줄 알았다. 그게 아니란건 생각보다 빨리 깨달았지만...


 49재가 지나고 컨디션이 최악이었는지 대상포진으로 보름 정도 앓아누운 후에 일상으로 복귀하면서 평상심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되었지만 천성이 진중하지 못한건지 스스로 보호기재가 작용하는 건지 그냥 평소대로 회사생활을 영위한 것 같았다. 수영이 생각이 났다가, 회사생활 했다가, 한 동안은 또 멍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업무를 수행하고...이런 나날들이 지속되면서 이렇게 살아가 지는가보다 했다.


 수영이가 떠나간지 5개월이 다되어가는 요즘엔 날씨도 좋고, 기념일들이 도처에 있는지라 마음 깊은 곳에서 수영이에 대한 그리움과 어린이 시절만 살다간 수영이에 대한 안타까움, 부재로 인한 상실감이 미친듯이 소용돌이치면서 나의 삶 전반을 삼키고 있는 것 같다. 처 조카의 생일, 어린이날 등을 지나오면서 우리 아들의 생일, 어린이날 사달라고 했던 선물들, 유치원을 다니면서 가족과 함께했던 기억들이 고스란이 소환되고 있다. 만2살 때의 생일부터 5-6살의 어린이날과 생일, 어린이 날에 받았단 선물들, 생일날 오롯이 수영이만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들, 그리고 수영이가 떠나기 20여일 전 마지막 13살 생일에 생일을 만끽하던 그 모습. 곰곰이 생각했을 때 어떤 날을 특정했을 경우 생각나지 않는 날이 없다. 100일 때 셀프 스튜디오 가서 사진을 찍었던 것 까지...이런 기억들이 멈추지 않는다. TV장 위에 놓아둔 돌 사진 액자들도 그 구도가 잡힐때까지 나와 아내가 수영아를 외치면서 시선을 끌었던 장면들. 그 후엔 눈물로 흐려진 장면들만 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차라리 이런 기억들이 없는 게 나았을까? 라는 원망이 가득한 생각을 해 본다. 물론 그러면 그런대로 또 가슴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 추측이 된다. 나의 이런 마음과 생각들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내 어린 아들의 측은함이 무뎌질 수 있을까? 아들을 잃은 아빠와 엄마, 오빠를 잃은 여동생. 우리 가족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아들이 존재함을 바탕으로 계획했던 모든 것들이 틀어져 버렸다. 다시 곱씹어 보자면 그게 도대체 뭐라고 그런 계획을 세워서 이런 아픔을 초래했을까? 라는 스스로에 대한 원망도 뿌리칠 수가 없다.


 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은 첫번째로는 나 스스로, 그리고 우리 가족들이 현명하게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 있다. 수영이에 대한 생각으로 온통 젖어있을 때, 세상 누구보다 이쁜 딸이 그나마 그 슬픔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해준다. 딸의 슬픔을 부모가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나를 사로 잡는 멈추지 않는 기억들을 고마워할 때가 올 것인가? 아니 결론은 나도 알 것 같다. 절대로 추억이 고맙진 않을 것이다. 추억한다면 눈물만이 나를 휘감을 기억들일 것이다. 이렇듯 답을 내리니 나는 그냥 살아가질 뿐인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든다. 잠시 살아가지는 것도 괜찮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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