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인현 Aug 07. 2023

참새

건물에 갇힌 새



  오랜만에 카페를 갔다. 바쁜 일들로 바쁘지도 않게 걱정만 하며 사는 요즘, 카페 가는 것도 사치 같아서 가질 못했다. 이 카페를 처음 알게 된 건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면담을 위해 왔다가 시간이 남아 잠시 들렀는데 너무 예뻐서 이사 온 뒤로도 몇 번 왔었다. 


 앞에는 작은 인공연못이 수영장처럼 있었고, 안에도 크고 작은 열대 나무들이 여러 곳에서 멋지게 배경이 되어주고 있었다. 맞붙은 벽의 두 면은 창으로 되어있어 하얗게 페인트칠한 다른 벽들과 잘 어울렸다. 3층까지 이어져 창이 있는 한쪽은 천장까지 뚫려있었는데, 한 번도 루프탑은 가보질 못했지만 2층도 넓고 예뻤었다.


 이번에 갔을 때는 약속 도중에 짬 내서 간 거라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다. 후다닥 커피만 마시고 나와서 이동해야 했던 터라, 커피만 시켜서 어디에 앉을지 물색하는데 1층 유리창 앞에 사람들이 없어 앉으려고 하니 근처에 있던 나무에 낙엽 같은 게 떨어졌다. 본능적으로 새라고 짐작하고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 열대우림에 있을 듯한 잎이 길고 촘촘한 식물이어서 그런지 잘 숨겨졌지만, 부리가 틈새로 요리조리 움직이는 걸 보니 참새였다. 확대해서 찍어 남편한테 보여주면서 조용히 참새가 들어왔다고 말해주고는 어떻게 구조할지 머리를 굴렸다. 사실 작은 참새다 보니 얇은 손수건 정도만 있어도 될 텐데 우린 가진 게 없어 남편에게 티를 벗으라고 장난으로 말했다.



열대 나무에 가려서 얌전히만 있으면 정말 아무도 새가 있는 줄 모르겠다


 정말 구조해줄 생각에 카페에 있는 담요를 이용해서 잡아보려고 카운터에 갔다. 사장님인 것 같은 직원에게 참새가 카페에 들어와 있는데 혹시 아시냐고 물어보니 알고 있다고 하셨다. 꽤 안에 있었던 모양이다. 제가 카페 담요를 이용해서 구조해도 되는지 물어보니 직접 하시겠다며 괜찮다고 하셨다. 아마도 내가 손님이어서 신경 쓰시는 듯했다. 오지랖일 수도 있겠지만 순간 아, 이대로 쟤는 오늘 하루종일 여기 갇혀있겠다 싶었다. 이 카페에서 나가는 문은 손님이 드나드는 문 하나뿐이었으니까. 그래서 저 그런 일 하는 사람이었다고 하니 눈빛이 달라지며 그럼 해주실 수 있냐며 반가워하셨다. 


 지난 5월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글램핑으로 엠티같은 걸 가게 되어 글램핑장의 매점 겸 인포데스크가 있는 건물에 들어갔는데 거기서는 문을 열어놓고 있으시다가 참새 두 마리가 들어와 버렸고, 그 참새들은 한쪽 벽이 유리창으로 되어있어서 그쪽으로만 나가려고 시도했다. 보통 센터에서 근무했으면 워낙 높은 천장이 있던 곳이라 여러 직원을 동원해서 장비를 들고 여기저기 날뛰어야 했을 건데(그렇게 해도 포획이 어렵다. 특히나 천장이 높고 구조물이 많을수록 새는 날아서 숨어있기 때문에.) 그땐 달랐다. 그저 나 혼자 느긋한 사장님의 허락으로 조심이 손님들 모르게 잡으면 됐었기에, 어쩌다 보니 의자와 잠자리채 하나로 두 마리 다 바깥에 풀어줄 수 있었다. 아마 마음가짐부터가 부담이 덜했던 것 같다. 


 담요를 비장하게 들고 와서 그 잎사귀 사이에 숨은 참새를 잡으려고 했지만 식물은 나보다 키가 컸고, 참새는 얌전한 것 같더니만 바로 2층으로 날아 올라갔다. 쉽지 않은 구조 작업이 될 걸 예상하면서, 남편에게는 1층을 지켜 보라 하고 2층으로 올라와서 창문 쪽 난간을 봤지만 역시 보이지 않았다. 난간 깊숙이 들어가서 안 보이나 싶어 3층 루프탑쪽 계단으로 올라가 봐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올라오는 사이에 내려갔는지 다시 1층으로 내려오니 역시 남편이 말하길 참새가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식물들 사이로 들어갔다고 했다. 날아갈까 봐 보기만 하고 있던 남편의 반대편으로 돌아가서 담요를 펴 들어 식물 위로 담요를 덮었다. 참새가 있던 식물은 바닥에 있던 작은 화분이었는데 그런데도 틈이 있어 고새 또 날아올라 갔다. 이러는 동안에도 손님들은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었는데, 참새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창밖을 구경하던 손님이 참새를 찾은 모양이었다. 새가 있다며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있던(아마도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손님에게 참새가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 2층의 한가운데 우뚝 선 큰 나뭇가지에 있다고 손가락으로 알려주셨다. 나뭇가지를 톡톡 건드리니 다른 나뭇가지로 옮겨갔고, 또 톡톡 쳐서 다른 곳으로 날아가다가 카페 안쪽으로 날아버리는 바람에 어떤 손님이 앉은 테이블 뒤 구석으로 내려앉았고, 나는 얼른 담요로 덮어 잡았다.


 참새가 사람을 경계하면 그 작은 부리로 손가락에 살을 물어 비틀기도 하는데, 얘는 도망갈 줄만 알지 공격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올해 태어난 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게, 얘를 구조하려고 유리 창문 앞을 지나다니는 동안 바깥에서 다른 참새가 카페 앞 나무로 날아와 앉은 게 꼭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뭐, 아닐 수도 있지만 참새는 무리 지어 사니까 근처에 동종이 있다는 건 얘가 바깥에 나가도 바로 같이 날아갈 수도 있을 테니 나에겐 다행이었다.



부리의 시작 부분이 노란 게 아직은 어린 새인 것 같다


 순간 내 손에 있는 참새에게 물을 줄까 했다가 바깥에 참새가 사라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됐고, 카페 앞 인공연못에 물이 있으니 필요하면 와서 먹겠지 싶어서 도와주신 손님에게 인사하고 바로 나왔다. 혹여라도 그 안에서 무슨 조치를 취하려다가 다시 놓쳐버리면 큰 낭패이자 나에겐 실수를 범하는 것이기에 무리하지 말고 그냥 바로 놔주는 게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도망을 다니느라 무리한 이 작은 참새에게 물 먹인다고 했다가 기도로 넘어가 버리면(개구호흡-코가 아닌 입으로 숨을 쉬어서 입을 열고 하는 호흡이라 함-이라는 걸 해버릴 수도 있다) 위험해질 수 있다.


 카페 밖으로 나와 물 근처에서 놔주었는데 하필 참새가 카페 유리창으로 날아갔다. 살짝이지만 유리창에 부딪혀 바닥에 앉은 참새가 다음엔 더 심하게 박을까 봐 얼른 뒤로 다가가서 다른 참새가 보였던 곳으로 날아가도록 유도해주었다. 내가 뒤에서 다가옴을 느끼고 조금씩 날더니 건물 앞으로 쭉 날아가서 카페 앞에 접혀있던 마른 야자수 같은 파라솔 뒤로 날아갔다. 이젠 참새가 이 더위를 견디면서 잘 살길 바라는 일만 남았다.



창가로 날아갔다가 내려앉은 참새가 내 걸음소리에 앞으로 총총 가기 시작한다


 카페에 들어와서 마저 커피를 마시며 땀을 식히던 우리 말고는 다들 너무 평화로웠다. 나갈 길을 잃어 불안했을 참새와 그걸 내보내려고 돌아다닌 우리만의 술래잡기가 너무 조용했나 보다. 아무래도 센터에서 신고받아 구조하러 온 것도 아니었고, 또 시끄럽게 군다고 잘 잡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조용히 잡은 건데, 그래서인지 손님 대부분은 참새가 있었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직원에게 참새를 날려 보내고 담요를 돌려드리며 세탁하셔야 한다고 당부드렸다. 아까 얘기 나눴던 사장님 같은 분은 안 계셨고, 아르바이트 같던 젊은 직원은 주문받고 커피 만드느라 바빴다. 더 말 걸기 미안해서 창문에 점을 찍는 조치를 해보시라고 권유하는 건 할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정말로 새가 여러 번 와서 부딪혀도 모르는 통유리 건물도 많을 텐데 내가 여기서 또 오지랖인 것 같아서. 그래도 다음에 가면 사장님한테 얘기해봐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새끼 집비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